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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Dec 02. 2020

퇴근이 없는 삶

약 2년동안 퇴근이 없는 삶을 살았었다. 정확히 말하면 퇴근이 의미가 없는 생활이었다. 새벽 6시쯤 출근해 아침 점심 저녁을 다 밖에서 해결하고 저녁 8시쯤 퇴근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모든 신경은 핸드폰과 노트북. 영화를 보면서도 전화를 받으러 극장을 뛰쳐나갔고, 주말 여행을 가서도 핸드폰을 붙잡고 전전긍긍했다. 좀 일찍 퇴근한 날이면 그다음날 일을 위해 온 저녁을 다 할애했다. 좀 늦게 퇴근한 날이면 선배 혹은 일 관련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1차 2차 3차까지 달리고 4차로 새벽에 여는 진시황 짬뽕집에서 울면을 먹어야 마무리됐다. 그러고는 술냄새 풍겨가며 다시 새벽 6시에 출근했다. 워라밸이야 요즘 말이지 그때는 워라밸은 커녕 워워워만 있었다. 사실 내 스스로가 워워워에 갇혀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때부터 꿈꿔온 일을 직업으로 삼았기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주위에서 힘든 일이다, 공무원을 해라, 교사를 해라 할때에도 난 내가 가는 이 길이 내 길이다 생각하며 노력했다. 그리고 24살 봄, 생각보다 더 빨리 그 꿈을 이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이른 합격이었다. 내가 잘해서 합격한게 아니라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퇴근이 없는 삶'으로 요약되는 이 직업에 대해 꿈만 꿨지, 이렇게 빨리 현실로 다가오게 될줄은 생각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주말 아침, 조금 늦잠을 자고 느긋하게 샤워를 하는 도중 선배에게 온 전화를 놓쳤다. 중요한 일을 당장 해결하라는 지시였다. 고작 전화 한 통 놓쳤을 뿐인데 본분을 다하지 않은 게 돼버렸다. 이게 뭐지. 오늘은 휴일인데. 딱 20분 늦었을 뿐인데. 난리가 났네. 참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온전히 쉴수도 없는 나의 휴일. 그것도 하루. 내 업에 대해 처음으로 품게 된 회의였다. 


두번째 회의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만든 결과물이었다. 어쩌면 내 커리어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결과물. 그런데 그 것을 두고 내 얼굴을 모르는 어떤 사람이 나를 앞에 두고 내 욕을 했다. 사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서로마다 입장은 다르니까. 근데 나는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다. 회사에선 잘했다고 대견하다고 칭찬도 엄청 받았다. 그러니까 일을 잘해서 욕을 먹었다. 이게 뭐지. 이건 아니다. 확실해졌다. 이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인사 발령을 통해 내근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내가 본 조건은 딱 세개였다. 퇴근이 있는 삶, 하루 하루가 단절된 업무, 핸드폰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일. 그렇게 8년을 이 업무에 몰입하고 있다. 종종 야근도 하고 일도 많지만 예전처럼 새벽 4시까지 다리 주물러가며 24시간 감자탕집 미끌거리는 바닥에 앉아 먹고 싶지도 않은 소주를 먹지 않아도 됨에 감사하다.

 

오늘은 처음으로 집에서 일을 했다. 어디로 퍼질지 모르는 바이러스가 사무실까지 침투할수있으니 유사시에 대비해 재택근무를 연습해보자는 취지였다. 부장도 선배도 후배도 없는 나의 공간에 앉아 생각했다. 한때 유행이었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당연해진 이때에 내가 앉아있는 지금의 재택 근무 공간은 어떤 곳인지. 선배의 갈굼도, 잔을 돌려가던 회식도, 갑갑한 사무실도 없다. 2011년의 신입사원은 2020년 10년차 회사원이 됐다. 10년이면 변하는 강산, 참 많이도 변했네. 정말 천지개벽이야 아무렴. 


크리스마스 재즈 캐롤을 틀어놓고 열심히 재택근무!! 근무환경 지렷고 오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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