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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Dec 18. 2020

김미김미 겨울노래 탁짱

오랜만의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맛있는 유부된장국과 전복술찜과 역대급 계란찜 한 상을 차려왔다. 식탁에서 고상하게 먹을 수 없는 밥상이었다. 이럴 땐 넷플릭스지. TV가 있어도 TV를 안 보는 시대.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돌리고 돌리다 갑자기 TV가 보고 싶어 졌다. 나도 주말에 남들처럼 제시간에 하는 예능 좀 볼까 하는 생각에 리모컨을 들었다. TV에는 유재석이 저지와 카고 바지를 입고 겨울 노래를 찾아 떠나고 있었다. 또 토토가냐. 또 울궈먹냐. 이러니까 사람들이 TV를 안 보지. 틀었다 하면 트롯 아님 옛날 노래냐 하고 끄려는 순간 나왔다. 나와버렸다. 탁재훈이. 탁사마가. 나의 탁짱이.


여중생이라면 응당 소녀 마음 두근거리게 만들던 오빠들이 한 명씩은 있었다. HOT와 젝스키스가 지나간 자리에 지오디와 신화가 들어왔다. 나는 그 세대였다. 반 아이들 열 명 중 7명은 지오디 아니면 신화를 좋아하고 사모하고 흠모했다. 클릭비, 조성모, 백스트리트보이즈를 좋아하는 여중생은 소수였다. 소수였지만 당당히 그들의 팬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소수라고 꿀리지 않았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씨디플레이어 모서리가 닳아 코팅이 벗겨질 때까지 오빠들의 노래를 들었다.


나는 소수 중에도 너무 소수였다. 나의 오빠, 아니 오빠라고도 부르기 힘든. 컨츄리 꼬꼬의 팬이었다. 그것도 완전한 광팬. 그런데 마음으로만 광팬. 왜 말을 못 해. 저 사람이 내 최애다, 저 가수가 내 원티어다 왜 말을 못 하냐고. 어떻게 말해요. 서른 넘은 아재가 좋다고 어떻게 말해요. 신화창조, 팬지오디 같은 멋진 팬클럽들 사이에서 내가 바로 닭장이다, 내가 바로 꼬꼬 팬이다 어떻게 그러냐구요. 노래방에서는 신나게 부르지만 교실 뒤에선 아무도 안 부르는 노래, 신곡이 나왔는데 음악중심에서보다는 예능에서 들리는 노래, 아이돌 잡지 신드롬, 파스텔에는 실리지 않아서 다른 애들과 사진도 교환 못하는 가수라구요.


그래도 좋았다. 바람머리 휘날리며 고음 척척 해내던 선글라스 낀 탁재훈과 옆에서 노래는 안 불러도 뼈가 부서져라 어깨를 파닥거리던 신정환. 특히 난 탁재훈을 좋아했다. 얼굴 귀티 나지, 노래 잘 부르지, 집도 부자지, 거기다가 너무 웃기잖아. 본업 잘하면서 부업도 너무 잘하는 거지. 왜 개그맨들이 결혼을 잘하는지 그때 알았다. 내 이상형도 그때 정해졌다. 일단 웃겨야 돼. 남자는 웃겨야 된다고. 유우머가 최고야!!


하지만 15살 내 친구들은 내 마음을 알아줄 리가 없고, 나는 원만한 학교생활을 위해 대외적으로는 신화 이민우를 좋아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내 방에 박혀 신곡 콩가의 가사를 손수 적은 가사집을 만드는 소녀팬이었다. 그랬던 나의 아재들이 계속 쭉 잘 나갔으면 좋았겠지만 그들은 악마의 재능을 썩히며 사고 치고 도박하고 지각하고 거짓말하고 물의 빚고 하면서 점점 내 마음에서 지워나갔다. 그렇게 잊고 살았는데, TV에 나온 탁짱을 보니 내 마음이 싱숭생숭한 것이다.


해피 크리스마스부터 시작해 김미김미 오마이줄리아 키쓰 히트곡 메들리를 부르는데  우리 탁짱 아직 죽지 않았네. 고음 OK  OK 그리고  천부적인 유우머 인타이얼리 OK.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보며 남편은  놀란 듯했지만, 그때  시절 나의 '숨듣명' 한껏 취한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도 늙고 나도 늙어서 이제는 안쓰럽기만  탁짱. 완전히 재기할 수는 없어. 왜냐면 많은 잘못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가  겨울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유재석 버프를 받아서. 그래서 신곡 하나 내줬으면 좋겠다. 나는 닭장이니까. 나는 꼬꼬팬이니까. 탁짱의 겨울 노래로 나도 행복해지게.


쥭지않앗다 탁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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