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 있으면 서른다섯 살이다. 닷새 전 생일에 갓 서른네 살이 되었는데, 일주일 만에 한 살을 더 먹는 이 기분이란. 빼도 박도 못하게 서른 중반이 되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몸이 무겁다. 떡볶이 때문일까, 짜빠게티 때문일까. 넓적 당면 많이 넣은 찜닭 때문일 거야. 흑.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을 버려야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을 계속해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래도 묵을라면 끊어야제. 암. 그렇게 곡기를 끊었다. 밥, 빵, 면, 고기. 나의 반쪽을 넘어선 나의 모든 것들. 그리고 얼떨결에 채식주의자가 되어버렸다.
할 만은 하다. 가지를 굽고 버섯을 볶고 계란을 찐다. 달달을 넘어 이런 맛이 나도 될까 하는 스테비아 토마토도 먹고, 오이랑 당근이랑 브로콜리를 넣은 월남쌈도 먹는다. 라이스페이퍼는 눈감아주세요, 찡긋. 제일 좋아하는 건 두부! 두부를 으깨 오독오독 톳이랑 섞어서도 먹고, 유부 피에 넣어서도 먹고. 유부 피도 눈감아주세요, 찡긋. 하지만 먹으면서도 평생 삼시 세 끼로는 못 할 일이다, 매번 생각한다.
채식주의자를 실제로 만난 건 대학교 3학년 때다. 그는 내가 인턴으로 일했던 회사의 외국인 직원이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후쿠오카 출장길, 비행기에서 우연히 그의 옆자리에 내가 앉았다. 나는 우유도, 계란도, 생선도 먹지 않는 찐 채식주의자인 그가 신기했다. 그는 "쏘우디이, 난 10살 때부터 고기 안먹었쒀요. 어느 날 갑자기 핫도그 위에 올려진 기다란 소시지가 내 손가락처럼 보였쒀요. 그 길로 딱 끊었쒀요. 그래도 보는 것처럼 키도 크고 건강해. 한국에서 고기 안 먹기 쉽지 않아요우."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아니, 어떻게 고기를 안 먹어? 외국인이라서 그런가? 우리의 이야기는 마무리됐지만 그 뒤로 난 코스트코 핫도그를 볼 때마다 그를 떠올렸다.
취직 후 회사에 입사해서도 채식주의자를 한 명 더 만났다. 40대 남자인 땡 차장은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고 홀로 채식을 영위하던 외국인과 달랐다. 땡 차장이 참여하는 부서 회식에 삼겹살 곱창 보쌈 족발은 제외였다. 땡 차장과 같이 점심이라도 먹을라치면 무조건 비빔밥이었다.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만이라도 먹으라고 할 법도 한데 전혀 그럴 의사가 없어 보였다. 땡 차장과도 출장을 함께한 적이 있다. 오키나와였는데, 가이드가 찾아온 스테이크 집 앞에 20명을 세워놓고 왜 본인을 배려하지 않았냐며 갑질 했다. 내가 단체로 주문한 김밥 10줄을 보고는 왜 햄을 빼지 않았냐며 소리쳤다. 그 뒤로 나는 절대 땡 차장과 밥 먹을 일을 만들지 않았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혐오마저 생겼다.
요즘은 채식이 흔해졌다. 어떤 사람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어떤 사람은 종교적 이유로, 또 어떤 사람은 건강 때문에 채식을 한다.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채식에서 힙의 기운이 느껴진다. 탄수화물과 고기를 못 먹다 보니 자연스레 풀때기만 먹게 된 나도 하루 한 끼 정도는 채식해도 괜찮겠네,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채식하기 어렵다던 그 외국인 직원은 이제 도처에 깔린 샐러드 가게로 향하겠지. 채식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못돼 처먹은 땡 차장은 아직도 본인 의사만 강조하겠지. 나는 절대 삼시세끼 채식주의자는 되지 못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