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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Sep 25. 2021

우리 아들

케이장녀인 나는 두 명의 동생이 있다. 3살 터울의 여동생, 9살 터울의 남동생. 남매의 구성만 보아도 사람들은 지레짐작 나의 부모를 예견한다. 아들 낳으려고 셋째까지 낳았네. 맞다. 엄마는 딸 둘을 내리 낳고 늘그막에 아들을 낳았다. 아빠는 아들과 세 번 둘러 띠동갑이다. 25년 전엔 35살도 노산이었다. 엄마는 이미 배를 두 번 째고도 아들을 낳기 위해 또 쨌다. 제왕절개를 세 번 하면 산모가 죽을 수도 있다는데, 아들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사실 엄마는 남아선호사상자는 아니었다. 본인이 남아선호사상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나의 외할머니 옥련은 극심한 남아선호사상자다. 정확히 말하면 장남 선호사상자다. 장남에게 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배척했다. 그것이 딸일지라도 예외가 없었다. 눈물 나는 이야기라 글로 담기도 싫다. 장남 앞길을 막을 수도 있다는 말에 딸인 엄마의 인생은 바뀌었다. 아직도 이 부분은 옥련씨를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옥련씨는 지금도 매일 본인의 집을 찾아와 본인을 돌보는 딸보다 아들을 좋아한다. 이런 엄마 밑에서 우리 엄마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아들을 낳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앙꼬를 가졌던 초반에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아들이었음 좋겠어, 딸이었음 좋겠어? 힘들게 내게  아기 었던 만큼 나는 정말로 선호하는 성별이 없었다. 아들을 끔찍이 여기는 옥련씨를 가까이 두고 봐서 그런지 오히려 아들에 반감이 들기도 했다. 시부모님은 아들만 둘인데, 먼저 세상에 나온 조카가 아들이라 앙꼬는 딸이면  사랑받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은 너무나도 히딱 뒤집어져 딸이라서 울던 엄마 세대와 달리 아들이라서 우는 우리 세대가 됐다고도 했다. 정말로 아들,  상관없었지만  마음속에는 은근 딸을 바란  같기도 하다.


16주가 되던 날, 산부인과 의사는 초음파를 보며 성별을 가르쳐 주진 않았다. 대신 여기 뭐가 있네요.라고 했다. 있기는 뭐가 있다는 거죠 선생님? 당황한 내가 물었다. 두 번 물었다. 선생님 확실한 건가요. 밖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던 남편은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좋아서 웃는 건지 내 반응이 웃겨서 웃는 건지. 난 시원섭섭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감사했다. 건강해서 다행이었다. 아들을 어떻게 키우지 라는 걱정이 제일 컸는데, 이 험난한 세상 딸보다 아들이 낫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앙꼬의 성별이 나오고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시부모님 좋아하시지. 너무 잘됐다. 딸이 아니라서 아쉽다는 사람이 없었다. 옥련씨는 정점을 찍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꼬츄라니 진짜 잘했다. 아이고 잘했다.


어제 정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임신하고서는 운신의 폭을 확 줄여 정말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않았는데, 그녀는 나보다 6주 앞선 임산부라 꼭 만나고 싶었다. 친구도 아들을 가졌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은연중에 우리 아들, 우리 아들 그랬다. 내가 벌써부터 그 말이 입에 붙냐고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다고 한다. 나는 우리가 자동 시모가 될 사람들이기에 미리 아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눙쳤다. 친구는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아들들의 군대를 걱정했다. 돌아오는 길에 내 아들 앙꼬를 생각해보았다. 나도 옥련씨처럼 그런 엄마가 결국엔 되는 걸까. 아들 말 한마디에 껌뻑 죽는, 역시 아들뿐이라는 그런 엄마가 되는 걸까. 엄마 되기 두 달 남았다. 아우 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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