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디짱 Jun 25. 2021

내가 싫어했던 수많은 아가들에게

나는 아기를 싫어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첫째로 태어나 동생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되어서 그랬을까. 3살 때는 관심을 뺏기고 9살에는 똥기저귀를 갈아줘서 그랬을까. 햄 10개를 나 혼자 다 먹을 수 있는데 아기들이 생기면 그게 5개가 되고 3개가 돼서 그랬을까. 항상 외동이고 싶었고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심쟁이라 그랬을까. 아기가 싫었다.


유난히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길가다 아기만 봐도 콧소리를 내면서 어마마 어마마 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식당 같은 데서 모르는 아기가 치근댈 때 그들은 아이구 귀여워 예뻐 이랬지만 난 저리 가 방해하지 마 그랬다. 내가 아기를 극혐 하는 표정이 찍힌 사진도 싸이월드에 있다. 아기는 나를 보며 싱긋 웃고 있는데 난 그 아기를 보며 찡그리고 있다. 아기가 싫었다.


결혼  전에 이직을 하게 됐다.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력서에 결혼식 날짜를 적었다. 면접  회사의 높은 사람이 전화가 왔다. 박소디씨가 다른 지원자에 비해 월등한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두고 있는  저희 입장에서는 생각을   수도 없는 일이라.. 실례지만 결혼  당장 출산 계획이 있으신지요. 합격이라는 건지 불합격이라는 건지 알아듣지도 못할 전화에 기쁨보다 빡이 쳤다. 아기가 싫었다.


결혼을 하면 아기는 자동이었다. 왜냐면 난 학교도 취업도 결혼도 다 정해진 루트처럼 차곡차곡 밟아왔으니까. 그다음 스텝이 아기였다. 건조기나 식기세척기처럼 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세탁기 티비처럼 필수 옵션이었다. 그래도 차일피일 미뤘다. 난 젊고 놀고 싶고 일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기도 싫었으니까. 결혼 삼 년 차쯤 됐을까. 이제 때가 됐나. 아니야 아직 일러. 내 마음속 갈팡질팡을 남편이 한 마디로 정리했다. 소디야. 정말 모르고 있었니. 모두가, 그리고 내가 우리의 아기를 정말로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아침 막장드라마처럼 찐한 복수극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수없이 싫어한 아기들이 반격에 나섰다. 어쭈구리? 니가 그렇게 아기를 싫어했으면서 이젠 또 낳아보시겠다? 삼신할매도 내가 아기를 싫어한 걸 아는 것 같았다. 아기에게 따뜻한 표정 한 번 지어준 적 없는 니가 감히? 도둑놈의 심보 어림도 없지! 수없이 많은 임신테스트기와 배란테스트기와 한약과 양약과 고나리와 마음고생과 눈물이 이어졌다. 죄송합니다. 사죄합니다. 아기를 싫어한 저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만물을 사랑으로 감싸보께요. 역시 부처님은 나 같은 날라리 중생도 봐주신다. 옛다, 받아라. 니가 그토록 원하던 앙꼬이니라!


어렵게 온 아기를 잘 지켜내고 싶은 마음에 조용조용 경거망동하지 않고 쉬쉬 했다. 요란한 축하파티도, 뻑적지근한 임밍아웃도 없었다. 나 임신했어요! 나 아기 있어요! 동네방네 마구마구 자랑하고 싶은데 그러면 이 행복을 누가 질투할까 봐, 이 마음을 누가 시기할까 봐, 그래서 앙꼬에게 해가 될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 그런 마음으로 15주가 흘렀다. 바보 같은 나인데도, 그 뱃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는 앙꼬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아기를 싫어한 박소디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앙꼬 초등학교 학부모회 가서 설칠 생각만 하고 있는 박소디가 있다. 지나가는 아기를 보면 내적 돌고래 소리로 아이 귀여워하는 박소디가 있다. 세상 모든 아기를 사랑하는 박소디가 있다. 그렇게 앙꼬맘이 되어 가는 박소디가 있다.


앙꼬도 민국이처럼 건강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만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배달의민족 되기 거 참 어렵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