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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Dec 14. 2021

할미넴의 육아 랩핑

아기는 갑자기 나왔다. 정기검진차 들른 산부인과에서였다. 36주 동안 정상이던 혈압이 치솟았다. 의사는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보쇼 의사 양반, 제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습니다.라고 하자 됐고!! 남편이나 빨리 오라고 하십쇼.라고 했다. 이보쇼 의사 양반, 남편도 서울에 있어서 당장 못 온다고요.라고 하자 됐고!! 제일 빠른 비행기 타라고 해요.라고 했다. 예상보다 4주 빨리 우리 곁에 온 앙꼬. 반가웠는데 걱정이 앞섰다. 우리에겐 앙꼬를 데리고 갈 집이 없다.


원래라면 남편 인사발령에 맞춰 집이 마련될 예정이었지만 앙꼬는 빨랐고 인사는 느렸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짱구를 아무리 굴려봐도 답은 하나였다. 엄마집. 하지만 망설였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지만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혼내는 사람. 나만 보면 잔소리를 끊임없이 하는 사람. 사이가 좋은 모녀도 육아방식이 달라 지지고 볶는다는데 잔소리 대마왕 양여사와 싹퉁바가지 내가 앙꼬를 두고 싸운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엄마집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옥련씨 집을 택하겠다며 뻗댕겼지만 89살 먹은 옥련씨에게 육아를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비빌 언덕은 엄마 집뿐이었고 나는 전장에 나서는 용사처럼 옆구리에 앙꼬를 끼고 엄마집에 입성했다.


엄마에게 무조건 맞춘다. 절대 짜증 내지 않는다. 엄마 말에 말대답 않는다. 엄마와 싸우지 않기 위해 바짝 쫄아 들어간 엄마집은 내 예상과 너무 달랐다. 미역국 장어국 소고기국 동태국 매끼마다 새로 끓인 국이 올라왔다. 온갖 나물과 고기와 반찬이 식탁을 점령했다. 간식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먹고, 아기를 먹이고, 잠만 자면 됐다. 그러고 일어나면 아기 빨래도 설거지도 끝나 있었다. 아기 트림도 아기 잠투정도 놀아주기도 엄마가 다 했다.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지상낙원이 엄마집이었다. 엄마는 온화한 얼굴로 아기만 바라보았다. 잔소리나 짜증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내가 왜 여길 안 오려했지? 조리원이 천국이 아니고, 엄마집이 파라다이스다!


복병은 난데없이 들이닥쳤다. 코로나 때문에 보고 싶은걸 꾹꾹 참고 또 참다 결국 참지 못한 옥련씨가 아기를 보러 왔다. 문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할미넴의 육아 랩핑. 애 있는 집이 왜 이리 춥냐 보일러 더 돌려라. 애는 오뉴월이 없는데 왜 이리 애를 풀어헤쳐놨냐. 옛날에는 광목천에 애를 싸서 아랫목에 애를 놔뒀는데 애 춥다 싸매라. 애 옹구리니까 쿠션 위에 애 두지 마라. 시계 보지 말고 애 울면 바로 젖 물려라. 날 추운데 머한다고 목욕 매일 시키냐. 당황한 내가 "할머니 요즘은..." 입 떼자마자 할미넴 요 비트 주세요 다시 시작된 육아 랩핑. 애 목 훤하다 목수건 해줘라. 기저귀 채울 때는 꼬츄를 위로 올려줘라. 젖 잘 돌게 미역국 국물까지 다 먹어라. 이런 건 다 어른들 말대로 해야 하는 거다.


엄마에게 들으리라 생각했던 잔소리를 엄마의 엄마인 옥련씨에게 계속 듣는 나날들. 영상통화에서까지 라떼는 시전 하는 옥련씨에게 온도는 24 습도는 60% 살짝 서늘해야  태열이 올라오지 않는답니다 운도  떼고 웃는 낯으로 네네 하며 귀에서 피만 흘리는 요즘. 엄마도, 옥련씨도 앙꼬를 사랑하는 마음뿐이라 그런다는  이제는 아는 . 남동생은 말한다. 엄마 누나  낳더니 굉장히 온순해졌어.  낳으면 철든다는 말이 이런 건가. 그럼  쪼금 철든  같은데. 앙꼬 고마워. 니가 엄마를 사람 만드는구나.


앙꼬야 왕할머니말 들을까 말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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