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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Jun 21. 2022

36살의 사랑니

월남쌈을 먹는데 입이 안 벌어졌다. 크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기만 싸서 말아도 입이 안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가 욱씬욱씬한다. 필시 썩었으리라. 이 닦고 잘라하다가 삔또 돌아 맥주 마시고 그냥 잔 지난날들이 얼마인가. 혀로 경박스럽게 스윽해보니 뭐가 만져진다. 오른쪽 윗잇몸 벽에 뭐가 만져져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뭐야. 사랑니야?


난 이미 사랑니 두 개를 뺐다. 그건 뺀 게 아니다. 어쩜 이보다도 지랄 맞을 수 없게 난 아랫 사랑니를 2주에 걸쳐 뽑았다. 종합병원에서 마취를 한 후 조각조각 부쉈다. 그 조각들도 어찌나 깊고 요상한 위치에 박혀있던지 의사가 장도리로 못을 빼듯 내 사랑니를 뺏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윗 사랑니는 안 났으니 다행이라고. 나게 될 사랑니가 다 이럴 거라고. 농담으로 이제 사랑하지 마세요~ 그랬다. 내 나이 26살, 차라리 사랑하겠어!!! 하며 아이스팩을 대고 생니를 뽑은 고통을 견뎠더랬다.


 의사 말이 맞았네.  지랄 맞게 났네. 언제  거야. 썩었나. 썩었으니 아프겠지.  이미 나있던 사랑니가 썩은 거라 확신하고 사랑니 뽑을 병원을 찾았다. 종합병원 대학병원은   뒤에 오랬다. 기다리기엔 너무 아프다. 찾다 보니 계속 눈에 띄는 치과가 있다. 황치과. 원래는 황경룡 치과인데 황치과로 통용되는 치과. 너무나도 유명해서 검색창에 마산   치면 바로 마산 황치과가 자동 완성되는 치과. 후기엔 덴티스트 황에 대한 간증이 가득하다. 찬양 수준이 마창진 사랑니계의 오은영 박사다. 궁금해지네. 전화하니   뒤에 뽑을  있단다. 윗니인데요? 그럼   와보세요.


마산역 앞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한 건물 3층에 올라가니 후기에서 많이 본 반가운 간판이 있다. 파리가 미끄러질 거 같은 대리석 바닥, 환하다 못해 눈부신 프론트는 없다. 체리색 몰딩 90년대 분위기의 우중충함이 나를 맞이한다. 대장 간호사로 보이는 분이 다짜고짜 내 이를 먼저 체크한다. 프론트에 어정쩡하게 서 입을 벌려본다. 흠. 심플? 일단 들어와 보세요. 심플이면 지금 뽑아요. 아 지랄 맞게 안 났단 말인가. 오 다행.


칠이 벗겨진 치과 의자에 눕는다. 이윽고 다가온 덴티스트 황. 입을 벌린 지 1초 만에 으음 심플 아니야 한 달 있다 와! 뭐여 왜 반말이여. 하지만 그 당당한 반말에 나는 욕쟁이 할망구 맛집에 온 듯한 신뢰를 느낀다. 선생님 사랑니가 썩었나요? 썩긴 뭐가 썩어! 이제 야금야금 나고 있구먼. 아니 36살이구만, 사랑니가 날 군번이 아니거든? 거 참 희한하네. 한 달 뒤에 와. 아니 선생님 제가 너무 아파서 왔거든요. 당연히 아프지!! 생살 찢고 뚫고 이가 나는 건데. 안 아프면 더 이상해!!


썩지 않아 다행이면서도 허무한 마음에 집에 돌아오니 아기가 또 울고 있다. 딸의 사랑니 때문에 아기를 보러 온 나의 엄마가 고군분투 중이다. 아기는 요즘 아예 잠을 잊은 사람처럼 굴고 있다. 낮에는 안겨서만 자고 밤에도 안겨서만 잔다. 눕히기만 하면 꼭 곗돈 떼먹고 시장에 퍼질러 앉아 악을 쓰는 아줌마처럼 소리를 지르며 꽥꽥 운다. 새벽 두시고 세시고 상관없다.


 내가  그걸 생각 못했을까. 부랴부랴 손을 씻고 아기의 잇몸을 만져본다. 뾰족한 무언가가 만져진다. 이가 났다. 아기의 니가 났다. 무지한 엄마는 매번 언제 이가 날까 생각만 하고 만져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기의 이는 벌써 올라와 쌜쭉 모양이 났다. 어른인 나도 생니가 난다고 이리 아파 병원부터 갔는데. 아기 너는 얼마나 아팠니. 연약한 잇몸을 뚫고 나는 첫니가 너무 아파서, 그걸 몰라주는 엄마가 너무 야속해서. 그렇게 그렇게 나라 잃은 백성처럼 울었었구나.


내 얼굴을 보며 오열하는 아기를 번쩍 안아 달랜다. 이제사 뒤늦게 사랑니가 난 이유가 있었네. 아기 너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거야. 그래서 사랑니가 난 거야. 그것도 36살에 난 거야. 아기야. 30대에는 잇몸이 딱딱해져서 20대보다 발치가 힘들대. 뽑을 때  너무 아프대. 그래서 10년 전 덴티스트가 이제 사랑하지 마세요~ 그런 거래. 그래도 괜찮아. 이 지독한 엄마의 사랑을 알아주겠니. 알아만 주겠니. 훗날 너의 유치가 하나씩 빠져 빙구웃음 지을 때까지만 엄마의 이 지독한 사랑을 반복해서 이야기해도 되겠니. 널 너무 사랑해서 사랑니까지 났다고 말이야!


잇몸 뚫고 그렇게 나고 잇는 나의 사랑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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