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옥탑방고양이에서 정다빈은 맨날 마늘을 까고 있었다. 전문대를 졸업해 취준생이었던 그녀의 알바거리였다. 마늘 한다라이를 쌓아놓고 김래원과 매번 티격태격하는 걸 보며 고딩이었던 나도 엄마와 티격태격했다. 엄마 나 마늘이나 까면서 살래. 취직은 안 하고? 전업주부 하면 마늘 까면서 살 수 있는 거 아녀? 전업주부 할래. 언젠 또 특파원한다매. 아 그냥 전업주부가 짱인거같어. 엄마처럼 살래. 현모양처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쉽냐. 그냥 교사나 공무원 해라. 전업주부는 무슨.
그랬던 나는 내가 바랬던 것처럼 특파원도 아니 되고 엄마가 바랬던 것처럼 교사나 공무원도 아니 됐다. 열 시에 출근해서 일곱 시 반에 퇴근하는 그저 그런 회사원이다. 그리고 지금은 6개월째 휴직 중이다. 육아휴직이다. 합법적으로 1년 3개월을 쉴 수 있다. 쉬는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전업주부 간접체험 중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 되뇐다. 현모양처 개나 줘버려.
이미 양처는 물 건너갔는데 현모도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다. 오늘 나는 아기의 손톱을 깎아주다 그 연하디 연한 살을 찝었다. 아기는 으엥 울었다. 피도 났다. 우는 아기를 달래주기 위해 그림책을 들었다. 소울을 담아 곰 세 마리를 부르는 중이었다. 그림책에 붙어있는 튤립 모양의 동요 기계가 아기의 얼굴에 퍽 떨어졌다. 아기는 으에에에에에에에엥 울었다. 나는 몇 번이나 내 얼굴에 시뮬레이션을 했다. 많이 아프네. 미안하다 이런 애미라. 그러다 재채기가 나왔다. 찰나에 참지 못했다. 참고로 아기가 가장 싫어하는 게 재채기 소리다. 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아기는 내 엄마의 품에 안겨 나를 계속 야렸다. 마음이 쓰렸다.
오늘의 쓰리콤보는 전업주부로서 내 할 일을 제대로 못한 거나 진배없다. 현재 내가 가장 잘 해내야 할 일이 바로 아기 키우기니까. 회사에서는 실수를 하면 시말서를 쓴다. 난 딱 한 번 써봤다. 심각한 오타였다. 월급이 깎이거나 하진 않았지만 일하는 마음에 스크라치가 났다. 오늘도 그랬다. 앓았다. 아기야 미안해. 이럴 땐 시말서를 누구에게 써야 하나. 육아도 노동이다. 아기의 꺄르르 웃음을 월급으로 받는 노동. 그렇게 일하는 마음과 앓는 마음을 겪으며 신간 '일하는 마음과 앓는 마음'을 펼쳤다.
6명의 작가가 각각 일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일 때문에 좋은 날도 있고 한없이 좌절하는 날도 있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였다. 사실 일은 돈 때문에 한다. 하지만 돈 만으로 일을 할 순 없다. 나는솔로 7기 송강호 닮은 아재도 연봉 2억따리 일을 때려치고 사회복지사를 한다하지 않느냐. 일이란 그런 것이다. 마음이, 품이 드는 것이다. 특히 글 쓰는 용접공 천현우 작가의 부분이 좋았다. 그가 생각하는 일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나도 이 마음이 무언지 안다. 2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에도 더 더 더 잘하지 못해 안달난 수습사원의 모습이 10년 전의 나다. 돈은커녕 허리가 끊어질 거 같은 육체적 노동의 육아를 울지 않고 하는 나다.
종종 질문받는다. 복직할거야? 복직하게 되면 일도 해야 하고 육아도 해야 한다. 그것도 주말부부로 해야 한다. 나에겐 든든한 양 여사가 있지만 그래도 단단히 각오해야 할걸.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저이처럼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일이 가져오는 시시각각의 마음들에 육아까지 얹어 해낼 수 있을까. 언젠가는 정말로 마늘 까며 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은 굳혔다. 나 일하는 녀자야!! 돈 버는 녀자야!!! 앓게 되더라도 일하는 그 마음 다시 느껴 볼테다. 복직, 커커커 커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