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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Jun 29. 2022

스타벅스와의 손절을 선언한다

나는 오늘 스타벅스와의 손절을 선언한다. 이것은 나의 굳건한 다짐이자 이제는 참을 수 없는 스타벅스에 대한 빡침의 말로이다.


박소디에게 스타벅스란 무엇인가. 소스스소. 소디하면 스타벅스, 스타벅스 하면 소디아닌가. 부산대 앞 3층짜리 스타벅스가 전국에서 매출 최저 탑3에 들 때부터 스타벅스를 들락날락거린 대학교 1학년의 박소디다. 학교 앞 렁고의 넘쳐 찰랑거리는 딸바가 1000원이고 식빵 세장 들어가는 토스트의 가격이 1000원일 때다. 분명히 기억한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는 3300원이었다. 딸바에 토스트 먹고 친구 하나 사줘도 3000원인데, 친구 안 사주고 나 혼자 스타벅스 가서 커피 마셨다. 소스스소다.


한 번은 부대신문에서 된장녀에 대한 토론을 한다며 나를 불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에 대한 모욕이자 내가 좋아하는 스타벅스에 대한 치욕이라며 된장녀란 용어에 불을 뿜었다. 하지만 나도 안다. 용돈 받는 학생이 사 먹기엔 비싼 커피 한잔의 가격. 허영에 찬 여대생의 심벌. 그래도 보란 듯이 한 손엔 차이 티 라떼 벤티 사이즈를 들고 학교 앞을 누볐다. 후배는 말했다. 박소디 선배를 찾으려면 학교 앞 스타벅스 3층으로 가라. 소스스소다.


취업을 하기 전엔 스타벅스에 모여 스터디를 하고 취업을 하고 나선 스타벅스에 들러 출근 전 모닝커피를 샀다. 내가 기억하는 한 프리퀀시를 모아 다이어리를 주는 행사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으며 최근 몇 년은 여름에도 그 행사를 했기에 각종 아이템을 다 모았다. 하나로는 성이 안차서 두 개 세 개를 받고 새벽부터 줄을 서서 받고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며 받고 친구한테 부탁해서 받고 일부러 음료를 사 먹어 받고 그랬더랬다. 소스스소다.


3300원이던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가 4500원이 될 때까지 참으로 많은 날들을 스타벅스와 함께했다. 스타벅스에서 깔깔 웃은 날이 많았고 엉엉 운 날도 있다. 스타벅스의 모토가 고객이 집, 회사, 스타벅스라 느끼도록, 그저 벅며들도록 하는 게 목표라 했는데 내가 딱 그에 부합하는 고객이었다. 진해에 오기 전엔 집에서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1키로 반경 안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소스스소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 프리퀀시는 돌아왔고 나는 소스스소니까 최소 2개는 받아야겠다는 들뜸 스튜핏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는 차로 20분 거리이나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구려지는 아이템이 문제였다. 올해는 쪼매난 수납통, 여행가방, 수영 후드였는데 그나마 여행가방이 나아 보였다. 사실 나아 보였다는 거지 좋다는 것도 아니다. 여하튼 어찌저찌 프리퀀시 두 판을 모아 증정품 예약을 위해 스타벅스 앱을 켰다.


해마다 스타벅스 프리퀀시 증정품 수령을 두고 말들이 많자 스타벅스 코리아는 아예 앱으로 먼저 예약을 하고 그 날짜에 수령하도록 방침을 바꿨다. 새벽부터 고객들이 줄 서서 받는 걸 방지하기 위해 그랬다지만 앱으로 바뀌고 나서부턴 앱이 열리는 오전 7시부터 박이 터진다. 며칠을 시도해도 내가 원하는 가방 근처에는 갈 수도 없었다. 슬슬 빡이 쳤으나 나보다 더 한 스벅 빠수니들이 많았고 난 수영도 안 하는데 수영 후드 두 개를 받기로 타협했다. 과연 내가 이 물건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미뤘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소스스소였다.


예약 당일 스타벅스 디티에 늘어선 줄에 기함하며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온 김에 커피도 마시고 증정품도 받아야지. 한 십오 분 기다렸다가 바닐라콜드브루 2잔을 건네받으며 파트너에게 이것도 주세요 했다. 파트너는 나를 보며 손님 이건 디티에서 못 받습니다라고 했다. 아.... 왜죠? 이거 받으려고 십오 분 줄 서고 커피도 시켰는데요? 앱에 디티 수령 안된다고 적혀있습니다. 아.... 그냥 주시면 안 될까요? 네 안됩니다. 아.... 제가 주차를 잘 못해서 그러는데 안될까요? 네 안됩니다.


하필 진 씨 차를 몰고 와 긴장 백배였는데 이까지 왔는데 안 받고 갈 수도 없어 어기적 어기적 유턴을 하고 주차를 하고 매장으로 들어가 또 줄을 섰다. 원칙은 지켜야지. 앱에 쪼매난 글씨로 적혀있어 못 봤어도 지켜야지. 디티 입구에 적어라도 주지. 앱 유심히 안 본 죄가 크다. 하며 파트너에게 내꺼 달라고 했다. 아니란다. 자기네 매장이 아니란다. 맞는데요(뭔소리야). 아닙니다 고객님. 맞아요, 확인해보세요(뭐하는거고 도대체).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 맞습니다. 드리겠습니다.


내 손에 쥐어진 수영 후드 두 개. 너덜해진 멘탈을 부여잡고 생각한다. 내가 이 거지 같은 천 쪼가리 받으려고 아침부터 이 난리를 벌였나. 실물로 보니 더 구리네. 아니 나는 무엇을 위해 한 달 넘게 설레는 마음으로 빙그레 호구 짓을 했나. 아니지. 16년 소스스소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단호박 파트너의 원리원칙과 티미한 파트너의 노답 실수가 내 마음속 심지에 불씨를 댕겼다. 이래도 스타벅스 충성하는 흑우 소디 없제. 이래도 좋다고 빠수니짓 하는 소디 없제. 소스스소 디 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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