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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Aug 04. 2020

한 여름밤의 살생

어젯밤 딱 세시간 잤다. 호우로 물난리가 난 윗지방과 달리 내가 사는 부산은 그야말로 찜통더위였다. 만두를 쪄도 잘 익을만한 더위였다. 회사는 시원하다. 에어컨도 빵빵하고 선풍기도 빵빵하고 얼음도 빵빵하고. 문제는 집이었다. 나의 룸메이트 옥련씨는 88살이다. 힘이 없고 더위도 쉬이 느끼지 않는다. 문을 꼭꼭 닫고 사는 습관이 있다. 에어컨이 있지만 켜질 않는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추워서다. 선풍기 약풍에도 옥련씨는 무릎이 시리다. 뭐든지 나에게 맞춰주는 옥련씨에게 미안해 나 좋자고 에어컨 틀자는 말을 못한다. 


그래서 아예 나갔다. KBS 일일연속극에 옥련씨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샤샤샥 나가버렸다. 집 앞 온천천은 시원했다. 뺨에 스치는 여름밤 바람이 상쾌했다. 뛰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도시의 밤 같네. 이 사람들은 이 시간에 운동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네. 멋지다. 에어팟을 양쪽 귀에 꼽고 천변을 걷다 문득 보폭을 넓게 하면 운동효과가 확실하다던 인터넷 게시글이 생각났다. 집중해서 보폭을 크게 크게 걸었다. 학창시절 수학시간 콤파스마냥 쫘악쫘악 다리를 벌려 저벅저벅 걸었다. 


돌아오니 한시간이 지났다. 땀이 흥건했다. 좀체 땀을 흘리지 않는 나지만, 여름밤 바람이 솔솔 불었지만, 만두를 쪄낼 더위에는 못당했다.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하니 정신이 또렷해졌다. 바디로션도 바르고 머리도 말리고 곧장 침대에 누웠다. 잘 잘 수 있겠지? 이제부터 퇴근하고 운동해야지. 뭔가 건강한 도시인의 루틴같잖아. 불 끄고 할머니 잘자 하고 누웠다. 근데 잠이 안온다. 팔뚝이 가렵더니 갑자기 종아리도 가렵고. 이불 안덮고 까벗은 배도 가렵고. 뭐야 이거. 


모기다. 한마리가 잽싸게 내 눈앞을 지나간다. 살생도구를 챙긴다. 다이소 5000원 전기모기채. 생긴건 테니스 채 같이 생겼는데 역할은 어마무시하다. 모기를 발견하는 순간 손잡이 양쪽의 버튼을 누르고 휘익 라켓을 휘두르면 타타탁 하는 소리와 전기가 번쩍 하는 모양으로 모기가 작살난다. 어쩔땐 흔적도 안남는다. 공중분해란 말이지. 나 안그래도 빈혈인데 모기한테 내 소듕한 피를 빼앗길 수 없지. 마구 휘둘렀다. 살생 성공. 다시 자자.


아, 안바르던 바디로션이 원인인가. 한마리가 더있다. 또 잡았다. 맥없이 타타닥. 그러길래 잠자는 소디의 콧털을 건드리냐. 아니 다리털을 건드리냐. 두마리를 저세상에 보내고 의기양양 다시 침대에 누웟을때 불현듯 드는 생각. 아니 근데 얘네들, 왜 혈흔이 없니?


고렇다. 이 두마리는 내 피 한번 쪽 빨아보지도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아니 전기모기채의 파편으로 사라진 것이다. 응당 네 방 물린 스케일로 봣을때 한 방이라도 내 몸을 물었다면 피가 튀어야 할 터인디 그게 없었던 것이다. 이 방엔 아직 한 마리의 침입자가 남아있다. 각 잡고 일어나 앉았다. 손 근거리에 모기채를 두고 모기향을 틀고 침입자의 동태를 살폈다. 휙 지나가는 침입자의 스피드. 잡았다 요놈!


바닥에 떨어진 침입자가 꿈틀댄다. 뭐야, 전기 공격도 안먹힌거니. 그렇담 확인사살. 그런데 꿈틀댄다. 뭐지 이 강한놈은. 한놈만 팬다. 두번을 더 모기채로 지졌다. 두번 더 지질때는 좀 미안하기도 했지만 디 엔드 모습을 봐야 마음 편히 잘 것 같아서. 그런데 토탈 네번의 전기 공격에도 계속 비 그친 후 도로의 갈 곳 없는 지렁이마냥 꿈틀댄다. 아니 다른 모기들은 분해까지 되던데 이놈 참 세네. 안되것다. 잘가라 요 녀석. 물티슈로 꾹 눌러 쓰레기통으로 직행. 반가웠고 다시는 보지말자.


이 난리를 피우고 나니 새벽 세시였다. 잘 수 있는 시간은 네 시간. 정신은 더 또렷해져 한시간여 멀뚱거리다 옥련씨의 기상시간에 맞춰 잠이 스르륵 들었다. 아침에 팅팅 부은 나를 본 옥련씨가 어제 못 잤냐며 갈치조림을 해줬다. 우물우물 씹으며 생각했다. 이겼는데 진 것 같은 기분은 뭐지. 모기 세 마리와 맞바꾼 나의 여름밤. 한 여름밤의 살생. 

어제의 NRC. 2.82키로를 걸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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