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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Jul 31. 2020

1인 미용실

4년째 단발이다. 항상 같은 머리를 유지하는 건 항상 같은 미용실에 갔기 때문이다. 백화점 앞 브랜드 미용실이다. 단발 커트는 2만5000원인데 딱 2만 5000원만큼의 만족을 준다. 조금 비싼 거 같지만 머리도 감겨주고 드라이도 해준다. 무엇보다 돈 쓴 거 같은 느낌을 준다. 고객님 어떠세요, 고객님 이정 도면 될까요, 고객님 뭘 드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머리를 자르는 건 꿀꿀했던 기분도 자르는 거니까. 제일 쉬운게 돈을 써서 무언가를 환기시키는 거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그 2만5000원이 아까웠다. 아니 우리 할머니는 사거리 슈퍼 앞 체리헤어에서 8000원을 주고 자른다는데 내가 너무 과소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 가는 택시비까지 더하면 3만원이잖아. 머 리 자르고 나면 기분 좋아서 백화점에서 뭘 또 그렇게 사잖아. 그렇다고 내가 동네 사랑방인 체리헤어에서 자르긴 싫잖아. 투덜투덜 식빵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예쁘다’.


머리를 다듬어주는 곳인데도 00미용실이나 00헤어를 붙이지 않은 점이 맘에 들었다. 기대하며 들어갔다. 내 또래의 남자 미용사와 여자 미용사와 보조직원 두 명이 수다를 떨고 있다. 뻘쭘한 마음에 머리 자르려고요 하니 남자 미용사 가 재빨리 다가와 도포를 두른다. 다음 말은 없다. 그냥 자른다. 서걱서걱 손 놀림이 거침없다. 근데 과하게 거침이 없다. 내가 뭐라 말을 할 새도 없이 끝났다. 손님 드라이해드려~ 의자에 앉은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았다.


머리는 완벽히 망했다. 정면서 보면 대칭이 안맞고 측면서 보면 높낮이가 다 르다. 머리 층을 내지 않아 덥수룩하고 숱을 고르지 않아 답답해 보인다. 1만 원이라 그랬을까, 성의가 없었을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한 달 동안 길기 만을 기다렸다. 더 최악의 머리 상태가 되어 동생을 만났다. 언니야. 머리 왜 이런데. 머리에 돈 좀 써라 쫌. 내 머리 자르는데 3만5000원인데 엄청 잘 자름. 여기 예약하셈.


한 번 1만5000원을 아낀 죄로 한 달을 수구리고 산 게 억울했다. 머리에 돈 쓰고 살았는데 한 번의 실수로 돈 쫌 써라는 말을 들은 게 분했다. 동생이 잘 랐다는 미용실은 1인 미용실이라 했다. 체리헤어도 1인 미용실이긴 한데. 뭐 가 다른 거지. 바로 예약을 하고 그다음 날 찾았다. ‘시저시스터’. 가위 언니? 시부모가 찾아오지 못하도록 아파트 이름을 어렵게 짓는다는데, 여긴 아는 사 람만 오도록 미용실 이름을 어렵게 지은건가.


한 달 전처럼 남자 미용사가 나를 맞이했다. 10평도 안 되어 보이는 공간 한 가운데 큰 거울과 미용 의자가 있다. 재즈가 흐른다. 좋은 향기도 난다. 카페 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나는 또 뻘쭘하게 앉았다.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단발이요. 여름인데 시원하게 자르는 건 어떠세요. 요즘 이렇게 저 렇게 요렇게 블라블라. 머리의 형태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는데 10여 분이 흘렀 다. 저기, 선생님? 그냥 알아서 잘 잘라주세요. 방긋.


그런데 정말 알아서 잘 잘라주었다. 한 올 한 올 내 머리 가닥을 들어가며 사사사샥. 서걱서걱이 아니었다. 그렇게 50분을 잘랐다. 정성이었다. 돈을 낸 건 난데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거울 속 더벅머리 나는 사라지고 차가운 도시의 커리어워먼 같은 애가 앉아있다. 2만5000원을 더 썼을 뿐인데 기분이 25만원 정도는 더 좋다. 미용실을 나서며 오랜만에 셀카를 찍었다. 역시, 돈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환기시키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다.

나에게 아주아주 큰 만족도를 준 시저시스터 굿굿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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