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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Aug 08. 2020

감자탕 시래기가 익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한 달 휴직이 끝났다. 일찍 일어나 곱게 화장을 하고 셔츠를 챙겨입었다. 단정한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절로 백스텝을 밟았다.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웃는 얼굴로 들어왔는데 출입문과 마주보고 있는 창립기념 거대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이 구리다. 역시 일과 회사는 멀리할수록 좋다. 학창시절 꿈을 이룬 나지만 회사는 365일 다니기 싫다. 여하튼 한 달의 공백에도 내 책상은 그대로다. 아니 사무실이 그대로다. 소름돋을만큼 똑같다. 아휴 한 달 동안 고생 많으셧죠. 응 잘 지냈지. 재밌게 잘 놀았어? 선배 얼굴이 좋아요. 


한 달 만에 돌아온 점심시간엔 짜장면을 먹었다. 선배 둘과 인턴 셋과 함께 먹었다. 우리 팀은 총 18명인데 인턴이 셋 있다. 지역 대학을 갓 졸업한 취준생들이다. 회사와 학교가 산학협력해 어린 친구들에게 현장서 일 할 기회를 줬다고 한다. 내 옆자리에도 27살 인턴이 앉아있는데 싹싹하고 착하다. 일을 잘하는 것과는 별개다. 인턴들은 항상 해맑다. 근데 딱히 말이 많거나 하진 않다. 언행을 조심하는 걸까. 결국 대화를 이끄는 건 나나 선배다. 


"땡땡이 여자친구는 잘 만나고 있나" 

궁금하지 않다. 근데 할 말이 없다. 내가 물으면서도 내 스스로 꼰대같다. 아니 사생활을 왜 물어봐. 어쩜 좋니. 나 꼰대니? 


"얼마전에 헤어졌어요" 


이유까지 물어보면 진짜 꼰꼰대 인증인데. 하지마 하지마. 나새끼 하지마. 


"어머나, 왜 헤어졌는데?" 


결국 또 물어보고 말았다. 밥먹으면서 아무 이야기 안 하면 어때서. 왜 나는 그 마를 못 참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걸까. 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조용한 순간을 참지 못할까. 아무말 대잔치보다 침묵이 좋은거라고, 실없는 농담보다 과묵한 게 실속있다고 수천번 수만번 생각하면서도 왜 고치지못할까. 


나도 인턴생활을 했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친 뒤 휴학을 하고 스펙을 쌓았다. 그 당시 갓 개국한 영어방송의 한 프로그램에 소속해 일했다. 내가 지금 인턴들을 보는것처럼, 그때의 내 옆에도 실무를 담당하는 차장님이 있었다. 나이는 40대 초중반 정도였는데 굉장히 프로같이 느껴졌었다. 밑에서 배운 것이 많아 지금까지도 잘 써먹고 있다. 문제는 식사시간이었다. 나 말고는 따로 인턴이 없어서 항상 나를 챙겨주셨다. 단 둘이 마주앉아 먹는 매일의 30분 점심이 너무 어색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두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럴때면 차장님이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책은 뭘 읽노? 졸업하면 앞으로 뭘 할거고? 느그 아부지 무하시노? 까지. 생글생글 웃으며 잘 대답하면서도 이런걸 왜묻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이다. 


다시 출근한 둘째날에는 선배 셋과 점심을 먹었다. 감자탕이었다. 아직 시래기가 익지 않아 보글대는 순간부터 내가 부러 이야기하지 않아도 오만때만 이야기가 나왔다. 회사 돌아가는 꼬라지, 그 밑에 돌아가는 상사들 꼬라지, 그래서 영향받는 우리들의 월급 꼬라지까지. 감자탕이 다 익었을땐 암말 않고 먹는것에 집중했다. 편했다. 역시 밥은 편하게 먹어야 하는구나. 나는 차장님도, 인턴도 불편했구나. 그래서 입이 방정이었구나. 어렸을땐 인턴처럼 몰라서 말을 못해 불편했고, 커선 차장님처럼 알아서 말을 해 불편했구나. 어느쪽이던 다 말썽이었구나. 굳이 들추어내 꺼내지 않아도 될 서로의 말들이 서로를 어색하게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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