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디짱 Aug 08. 2020

서른 넷에 만난 열일곱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이었다. 다른 지역이라 얼굴만 비추고 올 심산이었다. 역병의 전염보다는 어색함의 전염이 더 걱정됐다. 사실 그 친구가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았더라면, 나도 오지 않았을 그런 경조사였다. 그래도 신부대기실에서 친구를 마주하니 반가웠다. 오랜만에 본 친구는 부끄러웠는지 "20대 신부는 울고, 30대 신부는 웃는다더라"며 농을 쳤다. “나도 29살에 가면서 마이 웃었다” 다시 농을 받으며 친한 것도 안 친한 것도 아닌 사진을 찍었다.      


나는 고2때 창원에서 부산으로 전학했다. 결혼한 친구는 창원 고등학교 친구다. 곧이어 신부대기실에 다른 친구들도 들이닥쳤다. "소디야 오랜만이다 잘 살았나 " "아직 그대로네 우째 하나도 변한게 없노" "지금은 어디서 지내는데" "아, 다들 서울에서 지낸다고? 그래 나도 서울에 있는데 다음에 얼굴 한 번 보자".     


그런데 진짜 얼굴을 보게 됐다. 결혼식이 끝나고 일주일쯤 지나 단톡방에 초대됐다. 시간을 내어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나를 제외한 네 명은 평소 자주 만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우리가 친했던 건 열일곱 살 때였다. 딱 1년이었다. 그로부터 17년이 더 흘렀다. 대학을 가고, 취업 준비를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그동안의 세월이 공유되지 않았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괜히 얼굴 보자는 말을 했던 건 아닌지. 걱정에 걱정을 하며 약속장소로 향했다. 


아이들은 먼저 와있었다. "소디야 니 술 마시나?" 상대가 술을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도 모르는 다섯 명이 불금의 북적이는 사당의 핫한 횟집에 모여있다. "응 당연하지, 저기요~ 카스랑 좋은데이 주세요" “야야 소디야 서울엔 좋은데이 없다. 죄송한데 테라랑 참이슬 주세요”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우리에겐 통성명이 필요했다. 다들 고향을 떠나 열심히 살고 있었다. 공차 밀크티 당도까지 지정해 몇 시까지 대령하라고 주문하는 클라이언트가 있고, 힘들게 낳아놨는데 남편만 쏙 빼닮은 아이를 키우느라 현타가 오기도 하고, 코로나로 회사가 어려워 월급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다들 잘 살고 있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서울땅에서 이정도면 잘 사는 거 아니냐고, 나는 다들 대단하다며 박수쳤다.       


근황토크는 흘러흘러 우리가 함께 놀았던 고등학교 1학년 시간까지 역주행했다. 핫한 횟집에서 핫한 전집으로 자리도 옮겼다. 그 당시 우리 모임의 이름은 '돼군'이었다. 돼지군단. 학교 앞 분식집에 파는 500원 자리 컵뽂이를 하나 사서 7명이 나눠먹으며 생긴 이름이다. "그때 우리 돈 없었나. 왜 하나 사서 궁상맞게 나눠먹었노" "기억 안나나. 맨날 100원씩 모아서 사먹었잖아. 뒷문 담치기 해서 컵뽂이 하나 누가 사오면 그거 뒷뜰에서 모여서 갈라먹었다 아이가" "점심시간에도 빨리 먹으려고 급식소 전력질주해서 갔는데 2학년에 좋아하는 오빠 있는거 확인하면 일부러 밥 남기고 그랬잖아. 그래서 컵뽂이 사먹은 듯." 더듬더듬 기억나는 길다란 종이컵과 길다란 꼬챙이. 떡 하나 더 먹겠다며 머리를 들이민 아이들. 삼선 쓰레빠와 교복치마. 밑에 걸쳐입은 체육복 바지까지. 회식 분위기 낭창한 와이셔츠 부대에 끼어서 모듬전과 막걸리를 먹으며 그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학주라는 단어가 뭘 줄인건지 기억도 안나는 서른넷에, 학주에게 밀대자루로 엉덩이 맞은 그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디야, 우리 또 만나자. 서울 오면 꼭 연락해라" "응 너무 반갑고 재밌었다. 고맙다 얘들아. 나 불러줘서" 지하철로 향하는 길에 단톡방이 울린다. 아직 무음 설정을 하지 못한 신생 단톡방에 오래된 친구들의 굿바이 인사가 쏟아진다. 무음 설정을 하며 이 아이들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여러 관계를 맺은 사람들만 만나기도 벅찬 시간에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 스스로 되물어본다. 그래도 좋다. 나를 00회사 00팀 박소디가 아닌, 말썽꾸러기 모범생으로 기억해줄 이 아이들이 좋다. 오래된 나의 친구들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자탕 시래기가 익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