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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Mar 27. 2023

곰돌이와 코끼리

정신없이 뛰어간 병원의 접수처에서 간호사는 내게 말했다. 곰돌이 방으로 하실 거예요, 코끼리 방으로 하실 거예요?


그랬다. 이 아동병원에는 두 개의 방이 있다. 진료실이 두 개다. 두 명의 소아과 전문의가 밀려드는 이 동네의 아픈 아이들을 본다. 엘리베이터에 의사 당직표가 붙어있었는데, 살벌했다. 주주야야비비 뺨치는 당직표였다.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병원이다. 이 동네에선 거의 유일하게. 난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돈독이 올랐다했다. 그런 사람은 아마 아이를 안 키워본 사람일 게다.


얼핏 검색에서 “꼭 곰돌이 방으로 가세요”란 문장을 봤던 게 기억이 났다. 간호사에게 곰돌이 방으로 간다고 했다. 곰돌이 방은 환자가 많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그럼요. 곰돌이 같이 푸근한 의사가 우리를 맞이했다. 아기는 의사만 보면 자지러져서 보통 정신없이 진료를 보고 나오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의사는 달랐다. 아기가 콧물 쏟고 눈물 쏟는 와중에도 굉장히 침착했다.


어머니. 지금 아기는 폐렴의 문 앞에 서 있어요. 보통 감기, 기관지염, 폐렴으로 나뉘어 있는 건 아시죠? 골목길에서 노는 게 감기라면 집 대문을 두드리는 게 기관지염, 그리고 그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게 폐렴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아기는 까딱하면 폐렴이다~ 이 말인 거죠. 무조건 입원해야 되고요. 못해도 일주일 걸릴 거예요. 입원 굉장히 힘들어요. 그래도 저희가 하루종일 케어하니 그게 훨씬 빨리 병이 잡힙니다.


감동 먹어버렸다. 이토록 친절한 의사라니. 정말로 감동 먹어버렸다. 이토록 섬세하고 상냥한 의사라니.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의사를 본 적이 없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걱정 많은 보호자에게 무성의하고 퉁명스럽고 귀찮다는 듯이 설명하는 의사가 아닌 의사를 말이다. 진상 많은 소아과에서 어떻게 이런 의사가 있을 수 있나. 감기를 골목길에 비유해 설명하는 이런 의사가 있을 수 있나. 홀린 듯 네네 하며 아기를 안고 진료를 마쳤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코끼리 방은 추천하지 않은 걸까. 입원 중에 그 의문은 풀렸다. 살인적인 당직 속에서 곰돌이 방 의사의 휴일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곰돌이 방 환자들 회진까지 싹 다 코끼리 방 의사가 봤다. 코끼리 방 의사도 코끼리처럼 듬직했다. (네이밍 센스 찰떡) 아기는 역시나 의사를 보며 자지러졌다. 코끼리 방 의사는 냉철했다. 아기를 달래거나 하지 않고 딱! 진료하고 딱! 노티하고 딱! 끝. 어영부영 질문은 패스한다. 딱! 끝. 진료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맘카페에서의 평이 박할만했다.


사흘 아침저녁으로 코끼리 의사를 마주했지만 뭘 물어보거나 하진 않았다. 물어봐도 답 해줄 것 같지도 않고.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곰돌이 선생님은 언제 오시나요?”였을 것이다. 그렇게 또 아기는 울고 코끼리 의사는 회진을 봤다. 우는 아기를 안고 달래는데 코끼리 의사가 한 마디 했다. 마지막까지 우네. 웃는걸 한번 안보여주네. 빨리 나아라. 츤데레야 뭐야. 역시 인간은 나쁜 남자 나쁜 여자에게 끌리는 게 맞다. 툭 던진 한마디에 마음이 소로록 두둥실 해졌다. 아기를 신경 쓰고 있었구나. 고맙구나. 고맙습니다.


의사들이 소아과 전공을 기피하는 시대다. 전공의 지원이 아예 없는 대학병원이 부지기수라 한다. 돈도 안되고 어렵고 미래도 없고 진상만 많은 과라고. 동네마다 성업하던 소아과도 점점 사라진다. 그래서 남은 소아과에 더 아이들이 몰리고 입원이라도 할라치면 병실이 없어서 대기한다. 갈수록 더 심해질 날만 남았다. 수십 년 뒤엔 소아과가 사라진 자리에 생긴 요양병원에 들어간 내가 “할미가 어렸을 적엔 소아과라는 병원이 있었단다 얘들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전국의 곰돌이 방, 코끼리 방 선생님들이 지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동병원 탈출을 꿈꾸는 윤섕크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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