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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Apr 03. 2023

얼룩말과 서준맘

‘두 눈을 의심했다’라는 말이 딱 맞았다. 중화요리 辛짬뽕 앞 얼룩말. 너무 비현실적이면 사람은 멍하다. 얼룩말을 바라보는 아주머니 표정이 그렇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 도로를 꽉 메운 차들 사이로 두리번 거리는 얼룩말. 골목을 유유히 걸으며 배달기사를 빠쿠턴시킨 얼룩말. 실제 얼룩말을 본 이는 ‘내가 조현병인줄 알았다’고 했다. 마취총 여섯대를 맞고나서야 스러져버린 얼룩말 ‘세로’는 자신이 태어난 ‘집’ 어린이대공원으로 끌려갔다.


많은 뒷 이야기가 쏟아졌다. 엄마와 아빠가 차례로 죽고 홀로 남은 세로가 외로웠다, 외로움을 넘어 괴로워지자 옆집 캥거루와 한판 붙었다, 간식도 먹지 않고 삐졌다, 울타리를 부수고 반항했다 등이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태어나도 야생의 기운은 충만한건지, 아님 정말로 인간들이 말하는 스토리가 있는건지 모르겠다. 세로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얘기했을라나. “알빠노?”


아기를 좋아하지 않던 아가씨 박소디는 동물 또한 좋아하지 않았다. 아기 햄스터를 잡아먹는 엄마 햄스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기른 반려동물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선 완전히 변했다. 재윤맘 박소디는 동물 또한 사랑한다. 개와 고양이를 절대로 만지지 못하던 나는 이제 먼저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그랬나.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인줄 알면서도 얼룩말 세로의 이야기에 눈물을 찔끔 해버렸다. 왕년의 얼음겅듀 박소디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얼룩말의 수명은 평균 25년. 세로는 20년 넘게 엄빠 없이 살아야한다. 임시 여친은 붙여준다고 하는데, 그렇다해도 절대로 질주할 수 없는 어린이대공원에서 인간들만 바라봐야한다. 다시금 또 찔끔. 눈물의 근원은 아마도 대입이다. 내 아이를 생각해본다. 나 없이 이 아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엄빠가 있어도 없었을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4살에도 분유 탄 물만 먹어 7키로 밖에 안되던, 친모에게 맞아 죽은 아이. 16시간 넘게 의자에 묶여서도 계모의 팔을 잡으며 엄마 잘못했어요 싹싹 빌던 11살 아이의 마지막, 강원도 고성의 눈이 쌓인 바닷가 대나무숲에 버려진 탯줄도 자르지 않은 아이의 울음.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는건지,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나는건지.


항시적으로다가 배서준이만 생각하는 서준맘이 떠오른다. 얼레레레레 하면서 서준이를 깨운다. 기절이다 기절. 들이댄 얼굴이 웃기다며, 부릅뜬 눈이 웃기다며 단번에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오른다. 서준맘은 열이 나는 서준이에게 아파도 된다며, 이런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서준이 친구가 벌써 젓가락질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준이 넌 왜 못하니 가 아니라 걔는 왜 이렇게 빠르다니 라고 말해준다. 난 서준맘이 웃기지 않다. 세상을 구하는 것은 다정함. 정말로 다정함 뿐이다. 세로와 나의 아이와 죽은 아이들과 가까스로 살아남은 아이의 서준맘이 되고싶다. 나는.  


세로야 행복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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