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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Sep 26. 2023

결재를 바랍니다

아침마다 죄책감이 든다. 아기는 우리 집 1층 어린이집에 다닌다. 등원시간은 무조건 9시 30분이다. 여기서 더 늦지도, 더 빨라지지도 않는다. 내 출근이 10시기에 등원 맥시멈 시간은 9시 30분이지만 그보다 더 빨리 등원할 재간이 없다. 아기는 대체로 시무룩하다. 시무룩은 다행이다. 아기는 한 달 전까지 매일 아침마다 울었다. 6개월을 다녔는데도 어린이집 앞에서 엄마를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질질 끌려 들어갔다. 그렇게 돌아서면 나도 울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걸으면서, 택시에서, 회사 입구에서 눈물을 훔쳤다.


등원 전엔 보통 3시간의 지지고 볶고 타임이 있다. 아기는 보통 6시 언저리에 일어난다. 항상 무언갈 외치며 일어난다. 포코-! 책끼-! 물-! 등이다. 제일 좋아하는 포크레인, 어제 읽다 만 책, 목이 말라 물. 그래도 제일 빈도가 높은 건 엄마-!다. 아빠가 있을 땐 아빠 가-!다. 주말밖에 못 보는 아빠를 도대체 어디로 가라고 하는 건지. 망나니 머리를 한 채 아기를 번쩍 안는다. 나에게 굿모닝은 언제쯤 올까. 아기는 왜 울까. 해사하게 방긋 웃을 때 제일 예쁜데, 그걸 안 보여준다.


우는 아기를 달래서 물을 맥이고 샤워를 시키고 같이 내 샤워도 하고 닦이고 바르고 입힌다. 내 머리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아기는 뽀송뽀송하다. 아침은 대부분 계란찜이다. 전날밤 아기를 재운 후 반찬을 만들어야 했는데 나는 만날 잠이 든다. 나는 솔로 봐야 하는데 생각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다음날 아침이다. 거실이고 식탁이고 개수대고 원산폭격이다. 아기는 내 허벅지에 코알라처럼 대롱이다. 나는 진짜 타요를 틀어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째. 아기야, 타요 3개 볼까? 딱 3개만 보는 거야. 아기는 4분짜리 타요 씽씽나라송에 거의 빨려 들어간다. 후딱 식기세척기를 돌린다. 나도 찍어 바른다. 자 이제 끄고 어린이집 가자 하면 으아아앙이 되는 것이다.


그 으아아앙에 콧물이 찍 하는 순간. 고난의 행군이다. 항생제로 키우는 면역. 그 항생제를 받기 위한 오픈런. 9시 땡 하자마자 진료를 봐야 나는 출근할 수 있다. 회사 선배가 그랬는데. 워킹맘은 분 단위로 뇌를 쪼개서 쓴다고. 촥촥촥촥 쪼개 놔야 에브리띵 오케바리라고. 나는 출근하기 위해 8시 20분에는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간호사보다 먼저 도착해 1등 찍었던 그날, 내 또래의 엄마와 아기 또래의 아기가 2등으로 들어왔다. 그 엄마의 가방을 보자마자 빵 터졌다. 웃음도 터졌는데 눈물도 터질라 했다. 어린이집 가방에 포개진 엄마의 가방, 삐쭉 튀어나온 결재판. ‘결재를 바랍니다’라는 문구는 어찌 그리 비장한가. 슬프면서도 감정을 억눌러 씩씩하고 장한, 비장한 엄마. 너도, 나도, 우리 다 비장한 엄마.


전장에 나가는 워킹맘 동지의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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