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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Oct 19. 2023

하카타는 나랑 안 맞는데

아기와 함께하는 후쿠오카 4

후쿠오카에 올 때마다 숙소는 항상 텐진이었다. 원래 FM대로의 내 성격이라면 후쿠오카의 정석, 하카타에 숙소를 잡는 게 맞다. 하카타는 후쿠오카의 FM이다. 코어다. 후쿠오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게 다 하카타에 있다. 맛집도 하카타, 쇼핑도 하카타, 교통도 하카타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니까 원래의 내 성격도 벗어나볼까. 그러면서 텐진을 고집해 왔다. 텐진의 골목을 돌아다니고, 소담한 밥집에서 가정식을 먹고, 아기자기 편집숍에서 예쁜 쓰레기를 샀다. 그런데 이번엔 나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니 팀 후쿠오카의 의견도 중요했다. 비가 잠시 그친 그때, 남편은 하카타를 가보자 했다.


하카타까지는 버스를 탄다. 한국에서는 유모차를 들고 버스를 탄 적이 없다. 한 번도 버스에서 유모차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일본은 생각보다 아이에 관대한 분위기라고. 점심 쿠시카츠 식당에서의 환대가 생각났다. 아기 물컵에 담긴 쪼꼬미 아기 빨대가 인상적이었다(그 이후 방문했던 모든 식당에서 아기 물컵에 아기 빨대를 꽂아줬음). 버스가 왔다. 반신반의하며 영차. 어라. 이미 동지가 있네. 젊은 일본 여성과 아기가 유모차에 타 있다. 우리는 조심조심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옆쪽으로 비켜 세웠다. 아기는 처음으로 시내버스를 탔다. 네 코스 정도라 짧기도 했다.


가히 웅장하도다. 큰 건물 옆에 또 큰 건물, 또 큰 건물이 있다. 누가 후쿠오카 보고 촌이라데. 나는 항상 하카타에 오면 길을 잃는다. 그래서 안 왔나 보다. 텐진의 골목에서 길을 잃으면 또 다른 골목으로 구경 가면 되지만, 하카타의 빅 쇼핑몰에서 길을 잃으면 마치 엄마 잃은 추피처럼 엉엉 울고 싶다. 도무지 어디로 가야 입구가 나오는 건가. 델리만쥬보다 더 하다는 그 고소한 향기, 일 포르노 델 미뇽도 13년 전인가 겨우 먹었었다. 그것도 하카타에 빠삭한 준 일본인 차장님이 내가 안 먹어 봤다고 하니 슉슉 가서 사 오셔서 말이다. 이후 크루아상의 향기를 맡으려 나 혼자 돌아다녀봐도 결국 찾지 못했다. 그래서 못 먹었다.


남편은 '스시사카바'에 가고 싶다 했다. 하카타에만 지점이 두 개인데 쇼핑몰 지하를 돌고 돌아도 안 나온다. 결국 찾은 곳은 원래 가려던 마잉구점이 아니라 킷테하카타점이다. 체인이니 맛은 똑같겠지. 우린 딱 봐도 일본인이 아닌 것같이 보이나 보다. 그림이 있는 메뉴판을 준다. 스미마셍. 코코까라 코코마데 젠부 쿠다사이. 스시 플렉스. 그래도 품질에 비해 저렴하다. 늦은 낮잠을 자던 아기도 깼다. 혹시 몰라 보온통에 챙겨 온 볶음밥은 찬밥 신세다. 우리가 먹는 스시에 손을 뻗는다. 스미마셍. 타마고 스시 쿠다사이. 너도 먹고 나도 먹자.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스시, 아기는 22개월에 데뷔다.

야무지게 계란 스시 흡입!!! 두개 흡입!!!


너무 어른만을 위한 시간이었나. 하카타역 뒤쪽에 요도바시 카메라가 있다. 카메라만 파는 곳이 아니다. 아기는 중장비에 환장한다. 포코(포크레인) 크리스(레미콘) 맥스(덤프트럭) 조합의 토미카를 보여주마!! 눈앞에 펼쳐진 토미카의 향연에 아기는 거의 혼절이다. 상상할 수 있는 중장비의 모든 것이 망라됐다.


이 곳은 천국인가


그래도 두 개만 사는 거야(왜냐면 내일 또 사줄게 흐흐흐) 두 개만 사서 가는 거야. 내심 고민한 듯 포크레인과 레미콘을 고른다. 아기가 없었다면 층층이 구경하는 쇼핑타임이었겠지만 이젠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버스를 타러 가는 길. 하카타역 안과 밖을 을 빙빙 돌아 겨우 정류장을 찾았다. 남편은 심하게 돌아온 것 같은데라고 꼽을 준다. 내가 돌 판이니 셧업 앤 렛잇고라 맞받아친다. 살짝의 싸울 위기가 있었지만 내 아량으로 품어준다. 남편은 본인의 아량이라 생각했을걸. 아기를 재우고 호로요이 밀키스맛을 한 모금 쭈욱. 이제야 첫날밤이다.


야식으로 먹은 야끼소바. 이거 사러 간 20분이 유일한 자유시간이었네
원래는 이런 갬성샷 찍으며 돌아다녔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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