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함께하는 후쿠오카 여행 5
둘째 날부터는 각개전투다. 오늘은 남편과 교대로 오마카세를 예약했다. 나는 점심, 남편은 저녁이다. 나의 원활한 식사를 위해 오전엔 진 씨들을 위한 계획을 짰다. 남편은 자유시간을 주고, 아기는 키즈카페로 데려간다. 무려 호빵맨 박물관이다.
호빵맨 박물관은 나고야 요코하마 등 일본 곳곳마다 있는데, 난 이 박물관의 존재조차 처음 알았다. 아기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구나. 장사가 될까 했는데, 오픈런으로 줄 서야 한단다. 일단 후쿠오카에 애 있는 여행객은 무조건 필수코스였다.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유모차를 끌고 일단 밖으로 나갔다.
어제 비가 와서 날이 더 좋았다. 영화 기생충에서 조여정이 말한 그 하늘이었다. 미세먼지 제로. 아 일본까지는 미세먼지가 안 오나? 호빵맨 박물관 가는 길에 조그마한 공원과 빵집과 나카스 강이 있다. 아기와 나는 빵 2개를 사 오물오물 먹고 나카스 강을 구경했다(알고 보니 빵집은 역대급 유명한 빵집이었다. 후쿠오카 stock). 아기는 공원에서 빵을 물고 신이 난 나머지 자빠지긴 했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다.
살짝 걱정했다. 호빵맨을 본 적이 없는 아기다. 좋아할까? 좋아했다. 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호빵탈을 쓴 호빵맨이 나타나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살짝 겁먹는 듯했는데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성공이네. 빠르게 입장. 달려라, 온 세상이 호빵맨이다. 웃어라, 온 세상이 아기 친구들이다.
한 시간만 놀아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아기는 3시간을 죽쳤다. 모래놀이도 하고 미끄럼틀도 타고 공연도 보고 기차도 타고 방방도 뛰고 체험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말이다. 오히려 내가 지쳐 아기를 끌고 나왔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기는 하루종일 낮잠도 잊고 놀 기세였다. 1600엔의 입장료로 뽕을 뽑았다. 생각보다 한국인은 없었다. 아기를 키우는 일본인 엄마들을 간간히 경험하기도 했다. 아기라도 폐 끼치는걸 극혐 했다. 내 아기가 타고 있던 모형 기차에 다가온 본인 아기를 낚아채듯 데리고 간 뒤 스미마셍을 반복했다. 그 사과에 내가 더 미안할 지경이었다. 다이죠부데쓰 다이죠부데쓰 나도 모르게 연발했다.
박물관을 나와 남편과 터치했다. 아기는 유모차에서 세상천지를 모르고 잔다. 드디어 자유구나. 이제야 여행인가. 스시집은 입구부터 찾기 힘들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는데 직원분이 무릎을 꿇고 나를 맞이하네. 어이쿠 황송해라. 6명이 앉은 다찌에 4명이 한국인이다. 후쿠오카를 부산광역시 후쿠오카구라고 한다더니만. 실제로 다니면서 삼겹살집, 활어횟집, 치킨집, 순두부집을 종종 봤다. 호식이 두 마리 치킨도 보고 자갈치 아지매 집도 봤다. 서면 술집거리는 왜색 짙은 이자까야가 대부분이다. 한국엔 일식이, 일본엔 한식이 먹히는 세상이다.
식사는 맛있었다. 혼자 2시간 동안 호사롭게 조용히 먹었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애를 낳지 않았다면 당연한 시간이었겠지만 나는 결혼도 했고, 애도 낳았다. 그래서 더 행복하고 의미 있었다. 나는 나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 시간은 이렇게 잠깐이면 된다. 24시간 애에 얽매어있는 주부들을 본다. 남편은 애 못 봐요. 제가 다 해야 해요. 그냥 맡기라고 하고 싶다. 그렇게 숨통도 좀 트이라고 하고 싶다. 엄행아행.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저녁엔 남편이 같은 집에 스시를 먹으러 갔다. 아기와 나는 저녁의 나카스 강을 즐겼다. 야타이마다 사람들이 그득했다. 라멘 땡기네. 저 멀리 아장아장 귀여운 아기가 달려온다. 내 아기와 비슷한 월령으로 보인다. 깜찍해라. 아기의 엄마도 만난다. 알고 보니 한국 사람이다. 그쪽도 남편이 없다. 물어보니 아기와 둘이서 여행 왔다 한다. 존경. 남편이 있어도 힘든데 남편 없이 대단하다 했다. 어차피 하는 육아, 집에서 하는 것보다 여기서 하니 차라리 더 좋네요.라는 답변이 온다. 엄행아행. 정말로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반짝이는 나카스 강을 배경으로 서로를 찍어준다. 아기도, 엄마도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