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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Nov 13. 2023

누가 여행가서 동물원 간다데

아기와 함께하는 후쿠오카 6

지금까지의 여행은 '맛'이었다. 새로운 곳의 새로운 맛. 한국에 같은 것이 있어도 본토는 다르다지. 풍경이나 체험이나 역사는 낫 마 스타일이었다. 왜 보통 유럽에 가면 박물관 미술관 투어를 하고 절경을 감상하는데 나는 젤라또와 빵과 술에 심취하는 그런 거. 우피치 미술관 예약을 잘못해 허탕을 쳐도 "그럼 파스타 먹으러 가자" 하는 그런거. 하루종일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는 바티칸 투어가 괴로운 그런거.


그래서 아기와의 여행이 어쩌면 더 새로왔는지도 모른다. '맛'이 배제된 첫 여행. 평소엔 안 하던 것들을 하는 첫 여행. 오늘은 동물원에 가기로 했다. 추피책에서 끼리- 악오- 아빠사자- 어흥 하는 아기에게 진짜 동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에겐 이 세상 모든 새로운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동물원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며 인간이 이리 잔인하냐며 떠들던 나였는데, 그저 내 욕심에 내 발로 동물원을 찾았다. 인간이 제일 나쁘다.


후쿠오카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동식물원이 있다. 면적이 어마어마해서 하루에 다 둘러보지 못 할 정도다. 부산엔 기업이 운영하는 동물원이 있었다. 지금은 망했다. 입장료는 비쌌는데 동물이 많이 없어서 운영이 잘 안됐나보다. 후쿠오카 시립 동물원의 입장료는 600엔이다. 내가 후쿠오카에 산다면 한 달에 한 번 쯤은 찾아 올 법 했다.


목이 길~~~~어요, 기린! 이라고 맨날 말하던 그 기린이 눈 앞에 있다. 와, 기린이 이렇게 컸었나. 5미터는 됨직하다. 아기는 긴장하거나 무서우면 몸을 다르르 떨면서 나에게 올라붙는다. 기린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가져간 추피책에 나오는 기린을 보여주며 "이 기린이 이 기린이야" 설명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까딱하다가 유모차를 끌며 애를 안고 다녀야 할 판인데 이거? 빠르게 퇴장.


까까를 하나 물려주고 펭귄 수조로 가자. 이건 좀 괜찮은건가. 유모차에 내려 유영하는 펭귄을 쫓아간다. 도도도도. 내가 뒤뚱뒤뚱 하니 아기도 뒤뚱뒤뚱. 옆으로는 소풍 온 일본 아이들이 우르르 내려온다. 영화에서처럼 초록색 면모자와 하얀티, 초록색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다. 여행지에서 아이들을 마주칠 일이 있었던가. 밥집, 술집, 핫플, 쇼핑가. 어른들의 공간만 다녔던 나다.


날이 더웠는데, 중간중간 실내 공간도 있었다. 끼끼끼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원숭이를 보고 이제사 신이 났다. 아빠와 함께 온 아기가 스윽 다가온다. 또래의 아기 둘은 서로를 따라다니며 수달도 구경하고 장난도 친다. 말 못하는 아기들인데 말 하는 어른들보다 더 잘 통하는 것 같네. 가다보니 식물원으로 통하는 미니 모노레일이 있다. 타는 사람이 눌러서 수동으로 작동하는 모노레일이다. 아기는 한 번 타보더니 계속 왔다갔다 하자 한다. 오르락, 내리락. 어떤 동물을 봤을때보다 더 함박웃음이다. 지척에 사자와 호랑이가 있는데, 이것만 탄다. 사자 보러 가자. 고개를 젓는다. 어흥! 호랑이다!!! 싫다 한다. 조금만 더 가면 대관람차도 있고 조그마한 놀이동산도 있는데, 그게 내 목표였는데 아기는 이제 흥미가 떨어진 모양이다. 어딜가던 뽕을 뽑아야 한다는 그 조바심을 아기는 단칼에 저지시킨다. 아쉬워서 몇번을 물어도 가자한다. 택시를 기다리는 10분여 만에 잠이 든다. 똥을 싼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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