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고 다시 피는 그 순간
어린 시절 10m달리기를 할 때 난 늘 3등이였다. “땅”소리와 함께 열심히 달렸지만 3등이였다. 그때는 고작 10년도 살지 않았지만 내 인생이 뒤쳐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1등부터 5등까지는 차등의 선물이 있었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속상했던기억이 난다. 그때는 아무도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조금만 연습하면 1등할 수 있다고만 말할 뿐 이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 고등학생이 되니 장거리 달리기를 하게 됐다. 장거리 달리기는 단거리 달리기와 다르게 “땅”소리가 들려도 아무도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았다. 각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묵묵히 운동장을 달릴 뿐 이였다. 달리다가 지치면 한 템포 늦춰서 걷기도 하고, 옆에 지나가는 친구들과 사소한 수다를 떨기도 했다. 점점 숨이 찰때 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 바퀴 남았다. 힘내라”
나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마지막 남은 한바퀴에 온 에너지를 쏟아냈다. 물론 장거리 달리기에도 순위는 존재한다.그러나 순위는 의미가 없다. 우리는 아무도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해냈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서로를 다독여준다.
대학시절, 수능이 끝나면 담임선생님께서 시험을 마친 우리를 꼭 안아주셨다. 우리는 그렇게 고생한 1년을 보상받았다. 누군가는 대학 합격의 기쁨을, 다른 누군가는 다시 1년을 고생해야 했다. 나도 남들보다 1년 늦게 대학에 들어갔다. 나의 재수 생활은 우울함의 연속 이였다. 대학에 합격하지 못할 수 도 있다는 불안감에 젖어 있었고, 더 잘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억눌려 있었다. 또 다시 수능에 대한 압박을 견뎌야 했고, 또 다시 대학 합격을 기다리는 순간을 버텨내야 했다. 대학을 못가면 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 후, 대학에 입학했고, 다른신입생들과 같이 캠퍼스 생활을 만끽했다. 하지만 늘 마음속에는 남들보다 1년이 뒤쳐졌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그 흔한 휴학도 한 번 하지않고 4년 동안 쉴 틈 없이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 좋게, 안정된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참 운이좋았다. 그리고 취업만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직장은 또 다른 달리기의 연속 이였다. 직장에서의 달리기는 어린 시절 달리기와는 다르다. 나의 속도를 알 수 없고 이 달리기가 장거리인지 단거리인지도 알 수 없어 갈팡질팡 길을 헤맨다. 그리고 나는 또 불안하고 초조하고 뒤쳐진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렇게 인생은 엎치락뒤치락 하며 흘러가나보다. 열심히 해도 뒤쳐질 때도 있고, 열심히 하지 않아도 운 좋게 앞설 때도 있다. 내가 남들 보다 조금 늦는다고 해서 내가 남들보다 부족한 게 아니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앞선다고 해서 내가 뛰어난 건 아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각자의 꽃이 피고 지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가 되야 비로소 꽃이 피고 지며, 열매를 맺는다. 우린 아직 그 시기가 아닐 뿐이다.
꽃이 피고 지는 순간 너무 들뜨지도, 좌절하지도 우울해 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꽃이 피면 지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나의 꽃이 아름답게 필 것이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꽃이 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순간도 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서로가 지치지 않게 잘 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다독여줬으면 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 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괜찮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