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까지 가려면 10분은 더 걸어야 되는데, 양 손 가득 무거운 짐들을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마트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손가락 마디가 끊어질 듯 통증이 몰려왔다.날씨가 추워지니 손은 감각이 떨어지고 내 몸의 움직임도 마음 같지 않게 더디어졌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는 잠깐 내려놓았다가도 또 언제 초록불로 바뀔지 모르는 긴장감에 금세 묵직한 채소들을 다시 들어 횡단보도 건널 준비를 했다.
그렇게 집으로 오는 내내, '한 번에 왜 이렇게 많이 샀을까? 아니야, 싸게 잘 샀어'라는 두 가지 마음이 내 머릿속을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싸고 질 좋고 양 많으면 무조건 사고 보는 근성이 있다. 또 손도 커서 한번 요리했다 하면 다들 허걱 할 정도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덕선 엄마가 딱 내 모습이다.
내가 손이 큰 이유는 전적으로 우리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그랬다. 손이 커도 너무 커, 어떤 요리든 항상 학교급식 수준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 집은 한번 김밥을 쌌다 하면 최소 60줄이었고, 해물 부추전은 늘 김장용 대형 스텐 대야 한가득이었으며, 카레는 늘 큰 국그릇 가득 채워 먹었다.
늘 그렇게 먹고 자랐기 때문에 한 번도 엄마가 손이 큰 지,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많이 먹는지 모르고 살다가, 크면서 우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연애시절, 남편과 대화 중에 우리 집 김밥은 늘 60줄 정도라 마치 김밥을 쌓아놓은 모습이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남편은 오버라며 거짓말하지 말라며 믿지 않았는데 결혼을 하고 우리 집에서 김밥으로 피라미드를 쌓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뒤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반대로 내가 놀랐던 경험은 성인이 되었을 때 일이다. 친구들과 해물파전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친구들은 메뉴판을 쓱 보고는 해물파전을 주문하는데 딱 한판만 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가격도 그 당시 한판에 만원이 넘었었다. 그 순간 우리 집에서 먹던 해물 부추전(경상도에서는 찌짐)이 생각났다. 우리 집에서는 해물 부추전 먹는 날은 늘 김장용 대형 스텐 대야 한가득 만들어 온종일 부치고 대야가 다 비워질 때까지 끊임없이 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날 이후로 해물파전을 사 먹지 않았다.
또 카레에 대한 일화를 얘기하자면, 예전에 오빠가 우리 집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온 적이 있다. 그날 요리가 카레여서 엄마는 늘 그렇듯, 큰 국그릇 가득 밥과 카레를 담아 상에 올렸고, 우리 식구들은 밥 한 톨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고 심지어 리필도 했었는데 왠지 모르게 오빠 여자 친구만 뭔가 꾸역꾸역 억지로 먹는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카레밥 양이 너무 많아 힘들어했고 결국 탈이 나 소화제까지 먹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우리가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기보단 오빠 여자 친구가 너무 적게 먹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큰 형부가 결혼해서 카레밥 양보고 많이 놀랐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때 알았다. 우리가 남보다 많이 먹는다는 사실을...
신혼 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모인 시댁 식구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어머님은 요리 담당, 나는 밑반찬 세팅과 밥을 담당했다. 나는 당연히 고봉밥을 식탁에 내놓았고, 그 모습에 아버님은 기함할 듯이 놀라 하셨다. 그렇게 많은 밥은 처음 본다며 경악하셨다. 알고 보니 아버님은 밥을 거의 안 드시고 드시더라도 새 모이처럼 아주 소량만 드시는 분이었던 것이다. 난 그렇게 밥 두 숟가락 양만 남겨놓고 다시 밥솥에 밥을 쏟아부었다. 아버님도 고봉밥에 놀라셨지만, 나 또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나도 태어나서 밥을 그렇게 적게 먹는 사람을 그날 처음 본 것이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아버님한테서 나의 이미지는 손 큰 며느리로 굳혀졌다.
이런저런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우리 엄마가 손이 크다는 것과 우리 집 식구들이 '위'대(大)하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의 '큰 손'은 나에게 그대로 유전되었다.
보고 자란 것이 무섭다고, 이런 쪽(?)에서는 엄마를 지나치게 빼닮아,때로는 나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손가락 마디의 통증을 견뎌가며 힘겹게 집에 도착하니,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다가 돌아온 시동생 부부가 와 있었다. 양 손 가득 장 봐온 것들을 들고 주방으로 향하는 내 모습에 시동생 부부도 놀라고, 어머님입도 떠억 벌어지셨다.
"거기까지 길이 어딘데, 이 무거운 걸 혼자서 들고 왔어?"
웃으시며 내 등을 슬쩍 치는 어머님께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이런 내가 싫어요~근데 안 살 수가 없잖아요~홍홍"
결국 나는 그날 새벽까지 찹쌀풀 쑤고 식히고, 또 절이고 씻고 물 빼고, 양념하고 버무려서 또 한 가지의 반찬을 완성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