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주말 한 낮, 놀이터에서 남편과 축구를 하던 아들은 공을 주우러 가다 말고 갑자기 망부석이 된 것처럼 가만히 서서는 꼼짝도 하지 않고 나무 위만 올려다보고 있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면 이따금 몸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허공에 대고 손뼉을 치는데, 그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다.
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아들에게 한마디 건넸다.
"아들, 뭐해?"
나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초집중모드로 계속 똑같은 동작만 반복했다.
그렇게한참을 고군분투하더니,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갑자기 멈춰 서서는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엄마! 이리로 와봐!"
곧장 아들에게로 다가가니, 아들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으려고 한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하니, 아들 말이 참 웃기면서 귀엽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손으로 잡아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이런 말은 또 어디서 본 건지 들은 건지, 7살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들 말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엄마도 해봐 봐."
함께하자는 아들의 말에 살짝 귀찮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떨어지는 나뭇잎 잡기에 진심인 아들을 보니, 내가 나서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성격이 하면 또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 안 했으면 몰라도 일단 시작했으니 반드시 나뭇잎을 잡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아들보다 더 열정적으로자리도 이리저리 옮겨가며 허공에 대고 손뼉을 마구마구 쳐댔다.
잡힐 듯 말 듯 잡히지 않는 나뭇잎 때문에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하나 생각이 들 때쯤, 그 순간 슬로 모션으로 노란 나뭇잎 하나가 웨이브를 그리며, 마치 자기를 잡으라고 속삭이듯 위에서 떨어졌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난 두 손 사이로 나뭇잎을 움켜쥐었다.
'앗싸!'
이게 뭐라고,혹여 나뭇잎을 놓칠세라 손에 꼭 움켜쥐고는 난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잠깐 숨을 고르면서 즐거워하고 있는데, 아들이 또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엄마! 빨리 소원 빌어!"
난 아들 말 잘 듣는 엄마답게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은채 생일 때 촛불 불며 소원 빌 때보다 더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손으로 잡았을 때, 아주 잠깐이었지만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설레고 벅차고 기대되는 그런 느낌.
그러고 보니, 순수하게 행운을 바라고 기대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까치를 본 날은 진짜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었고, 길 지나가다 토끼풀 군락만 보면 그 사이에 네 잎 클로버가 있지 않을까 하며 열정적으로 찾았었다. 그렇게 운 좋게 찾은 날은 귀한 네 잎 클로버 집으로 고이 모셔와 코팅지에 정성스레 붙이고선 소중하게 간직했었다.
그랬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느새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행운이라고 믿던 것들은 그저 다 미신이라고 치부해버리게 된 세상에 나도 점점 물들어있었다.
지금은 길가다가 하루에도 몇 번을 까치와 마주쳐도 아무런 감흥이, 감정이 없게 되어버렸고, 토끼풀 군락을 발견하면 혹여나 아들이 볼까, 그러면 또 네 잎 클로버 찾는다고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낼까 봐, 아들이 못 보게 시선을 돌리게 하는 나의 모습이 어린 시절과는 많이도 달라져있었다.
그렇게 현실에 순응하며, 행운을 기대하기보다는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지 말자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살았었는데,얼떨결에 아들 따라서시작했긴 했지만,오래간만에 소녀감성 모드가 되어 떨어지는 나뭇잎을 손에 움켜쥐고 소원까지 빌고 보니 순수했던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씩 아이들이 하는 말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삶의 지혜를 이미 다 아는 사람처럼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문득 내가 가르쳐야 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아이들에게서 내가 배워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아이들을 위해서 해야 될 일이라고는 그저 계속해서 이 아이들이 꿈을 꾸고,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한계는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지금 이 순수한 모습 그대로를 지켜주는 게 나의 할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