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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Jan 07. 2021

엄마로 산다는 것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나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서 저녁식사로 생선구이가 나와도 생선 하나 잘 발라먹지 못했었는데, 어쩌다 왕건이 살코기 하나 얻어걸리면 밥 한 숟가락 크게 떠서 한입 가득 넣어 맛있게 먹었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우리 엄마는 생선 대가리를 제일 좋아해."라는 웃픈 얘기처럼 나도 어느새 생선 뼈 발라내기 달인이 되어 두툼한 살코기는 아이들 입으로, 나는 뼈에 붙어있는 살만 먹게 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어쩌다 내 입에서 떨어진 음식물도 다시 입속으로 가져가기가 께름칙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주워 먹는 건 기본이고, 아이들이 뱉어내려는 음식도 본능적으로 나도 모르게 재빨리 내 입속으로 가져가게 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냉장고에 과일 떨어진 날이 없을 정도로 자칭 과일 킬러였는데, 딸기 방울토마토 자두 수박 참외 포도 감 사과 등 과일이면 모조리 다 가리지 않고 좋아라 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비싸디 비싼 딸기 한팩 사서 아이들 앞에 내놓으면 양손 가득 손에 쥐고, 게 눈 감추듯 허겁지겁 먹는 아이들 모습에 맛이나 볼까 하고 집어 든 남은 딸기 하나도 손에서 슬그머니 내려놓게 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비싼 화장품은 아니더라도 스킨 로션 수분크림 영양크림 구분 지어 순서대로 얼굴에 톡톡 발라줬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화장대에는 화장품 대신 사진액자만 즐비하고, 스킨 로션 크림 다 건너뛰고 아이들하고 똑같이 베이비로션만 대충대충 바르게 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잠귀가 어두워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새벽에 뜬금없이 눈이 떠져 잘 자고 있는 아이 기저귀 갈아주다 잠만 깨워 대성통곡하게 만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알람을 맞춰놔도 알람 소리 못 들을 정도로 잠귀도 어둡고 아침잠도 많아 지각도 여러 번 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아침 7시가 되면 더 자고 싶어도 기가 막히게 눈이 떠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패셔니스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옷 잘 맞춰 입는다는 소리 들었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내 옷은 항상 트레이닝복에 색깔은 고민할 필요 없는 올 블랙. 어쩌다 차려입은 날에도 감 떨어져 철 지나고 유행 지난 옷 걸치곤 10년도 더 된 옷이 맞다며 혼자서 껄껄거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공 공포증이 너무 심해 날아오는 공만 봐도 움찔했는데, 그래서 공이 있는 데는 다 피해 다녔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아들하고 공놀이 하다가 눈퉁이에 맞아도 성질낼 수도, 마음껏 아파할 수도 없다. 그렇게 어느새 공과 한 몸이 되어 아들과 축구도 하게 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엄마로 산다는 ,

짠내 폴폴 풍기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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