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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Jan 01. 2021

나와 부산 사투리


"저기 혹시 조선족이세요?"

"아니, 공기업에서 전화받는 사람이 사투리를 써도 되는 거예요?"


 서울에서 첫 사회생활시작했다.

너무나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에 운 좋게 인턴으로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그래도 꿈에 그리던 직장에서 근무할 생각에 엄청 들떠 었다. 합격소식 듣고, 난 서둘러 짐을 챙겨 가족들과 같이 오래 살았던 정든 부산을 떠나 나 홀로 상경했다.


회사 근처 가까운 고시원에서 지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디좁은 고시원에서 생활 녹록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말 행복했다. 서울 하늘 아래 내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공간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했다.


그렇게 회사, 고시원, 회사, 고시원 생활만 반복하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사회초년생이라 일하는 게 전부 다 어설프고 서투르다 보니 실수도 종종 했지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배우며 일해나갔다. 모든 게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난 밝고 씩씩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이 길어지길어질수록 그동안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일들이 생겨났다.

일이 힘들어서도 아니고,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서 지내는 외로움도 아니었다. 바로 나의 부산 사투리 때문이었다.

나를 만난 사람들은 다들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했다.


"왜 사투리 안 고쳐요? 서울말 왜 안 써요?"


그때는 어려서, 때가 안 묻어서 제대로 대답조차 못했었다.


'왜 부산 사투리가 어때서?'

'사투리가 고친다고 쉽게 고쳐질 수 있는 건가?'

'자기들은 부산에서 살면 부산 사투리 금방 쓸 수 있나?'


속에서는 따발총처럼 말을 쏟아냈지만 정작 사람들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를 제대로 못하고 혼자 삭혔다.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나의 사투리에 대해 지적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고 초라해졌다.


'부산 사투리 쓰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


그렇다고 사투리를 고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부산 사는 사람들은 알 거다. 서울말을 한답시고 말 끝을 올리면 세상 낯간지럽다는 걸.(잘못 썼다간 목소리도 변하고 꼭 마치 가면 쓴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서울말을 구사하지 못해 서울말도 아니고 부산말도 아닌 '서산 말'이 되는 난감한 상황이 될 바에는 안 쓰는 게 낫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투리를 쓰는 내가 부끄럽지 않았다.

거의 30년 넘게 부산에서 살았고 그렇기 때문에 부산 사투리를 쓰는  당연한 것이고 부산 사투리가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었다.


그렇게 낯선 사람들에게서 사투리 지적을 받을 때마다 그 순간 나는 초라해지만, 그래도 꿋꿋이 사투리를 고수해 왔다. 지금까지.


한 번은 오랫동안 봐왔던 남편 친구들조차 나에게 조심스레 사투리에 대해 한마디 했다.

왜 고치지 않느냐고.

시작인가 싶어 씁쓸했지만 나는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당당하게 했다.


"이게 나예요. 사투리 쓰는 모습이 나예요. 굳이 잘 쓰지도 못하는 서울말을 어색하게 할 필요 없잖아요? 그리고 사투리를 왜 고쳐야 하죠?"


너무나 당당하고 단호한 내 모습에 남편과 그의 친구들은 얼떨떨해하는 표정이었다.




작년에 우연히 <말모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우리말 사용금지를 시키는 일제에 대항해 조선어학회 사람들이 목숨 바쳐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우리말 사전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인데, 그중에서 내가 인상에 남았던 것은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국 팔도의 사투리를 수집하는 장면이었다. 조선어학회가 발행하는 잡지에 전국 사투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올리자 너나 할 것 없이 편지를 보냈고 조선어학회로 물밀듯이 편지가 몰려왔다. 그렇게 전국에서 모인 우리말들을 모아 모아 어렵게 만든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우리말 사전 '말모이'가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몰입도 높았지만 무엇보다 일제 탄압 속에서도 우리말을 지키려고 한 그들의 헌신과 희생에 가슴이 벅차기까지 했다. 전국 팔도 사투리도 어쩌면 그들의 노력 덕분에 있는 것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작은 나라에 이렇게 다양한 사투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이제는 누가 나의 사투리를 지적하고 비난해도 결코 초라해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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