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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Dec 24. 2020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코로나 시대의 어느 일상


오늘도 남편은 출장 중이다. 화요일 출장을 갔으니 남편 못 본 지도 벌써 삼일째다. 요즘 들어 부쩍 잦아진 남편 출장 때문에 하루 종일 우리 셋(아들, 딸, 나)만 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세명이 한 세트고 한 인 느낌이다.


요즘은 아들이 유치원도 안 가니 아침에 눈을 떠도 급할 게 없다. 매일매일이 주말인 것처럼 아이들은 일어나면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티브이를 켜 만화를 본다. 그리고 나는 전날 늦게 잠들었다는 핑계로 조금 더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해본다. (솔직히 아이 낳고 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상이다.) 남편이 있는 주말이었다면 세상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겠지만(사실 그렇지만도 않지만), 부모로서의 의무감 때문에 더 자는 건 포기하고 비몽사몽 몸을 일으켜 곧장 주방으로 향한다. 아들은 엄마 스타일을 잘 알아서인지 방에서 나온 나를 보자마자, "엄마, 나 물 마셨어!"라고 한다. 난 아들에게 잘했다고 칭찬 한번 해주고는, 나도 가득 채운 텀블러를 들고 벌컥벌컥 마신다.


주말에 신어보고 안 신었으니까 신발 한번 안 신은 지 벌써 4일째다. 겁이 유난히 많은 아들은 분리불안도 아닌데 잠깐 쓰레기 버리러 혼자 나갔다 오는 것도 허락을 안 해준다. 아이들 데리고 나가니 잠깐 5분 버리러 나가고 애들 양말 신기고 옷 입히고 패딩점퍼 입히고 마스크까지... 생각만 해도 번거롭고 귀찮아서 포기했다. 남편 오면 버리는 걸로 마음을 바꿨다. 이런 이유로 우리 집 현관 며칠째 쓰레기 가득 채워진 쓰레기봉투 하나가 떡 하니 놓여있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나를 향해, 아들은 배고프다고 노래를 부른다.

난 아침부터 고민이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데다가 움직임도 거의 없다 보니 요즘 들어 아들 배가 점점 나오고 있다. 한동안 유치원 다니고 활동할 때는 배가 쏙 들어가 있더니 유치원  간 지 며칠 만에 다시 배가 나왔다.


아이들에게 삼시세끼 다 먹이자니 집에만 있는데 살만 찌는 것 같고 그렇다고 삼시세끼 안 먹이자니 한창 크고 자라는 나이말이 안 되는 것 같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내가 고민에 빠진 사이, 아들은 시리얼 먹고 싶다, 시리얼 달라고 한다. 주말에 미리 사놓길 잘한 것 같다. 혹시 몰라 주말에 마트 갔을 때 시리얼 하나 카트에 담았었는데... 어찌 됐든 오늘 아침 걱정은 덜었다.


아침까지 먹고 나니 할 일이 없어진 아이들은 슬슬 내 주위로 몰려든다. 낮에 아이들과 많이 놀아줘야 하는데, 그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힘이 안 난다. 먹어도 기운이 안 난다. 집에만 있어도 매 끼니 챙겨야 되고, 그러려면 만들어야 되고 먹여야 되고 치워야 되고 씻어야 되니, 낮에는 마음적으로 여유가 없어(핑계이긴 하지만) 아이들과 거의 놀아주지 못는 것 같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면 아이들은 심심함이 극에 달해, 나에게 시위를 하듯 몸부림치고 포한다.

난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들어, 부랴부랴 바닥에 까는 두꺼운 매트를 방으로 가져가 미끄럼틀만들어준다. 침대에서 뛰면 매트리스 망가진다고 잔소리하는 아빠도 없으니 오늘만큼은 눈치 보지 말고 침대에서 신나게 뛰어도 된다얘기해준다. 놀이매트를 미끄럼틀 삼아 타고, 침대를 트램펄린 삼아 뛰고,  놀이매트와 이불로 텐트처럼 만들어 주면 아이들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놀이가 살짝 지겨워졌을 때, 나는 주방에서 밀가루 한 봉지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낮에 못 놀아줘서 미안했던 마음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생각으로, 나는 큰 대야에 밀가루 한 봉지를 탈탈 털어 넣는다. 아이들은 이게 다 무슨 일이냐는 듯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오래간만에 만지는 밀가루에 아이들 얼굴 표정이 환해진다. 모래 놀이할 때 쓰는 장난감으로 연신 퍼담기를 반복하며 즐거워한다.


아이들 미소에 '진작해줄걸'하는 생각과 '어떻게 치우지'하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대야에서만 놀아달라 신신당부했건만 바닥 여기저 떨어져 있는 밀가루를 보니, 치울 생각에 머리가 벌써부터 지끈지끈다.

아들은 물까지 넣어 온 손에 덕지덕지 붙은 밀가루 반죽덩어리를 내게 보여주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더 많이 물을 부어준다. 아들은 우유 같다며 즉석에서 상황극도 만들어 본다. 물을 많이 던 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밀가루 덩어리도 풀어지고 장난감 구석구석 달라붙어있던 밀가루도 떨어져 나갔다.


밀가루 놀이도 얼추 끝 것 같으면, 난 욕조에 물을 받는다. 그리고는 유통기한 지난 녹차 을 욕조 가득 쏟아붓는. 이왕 기분 좋게 해주는 김에 오늘은 풀코스다. 녹차 잎으로 놀기도 하면서 피부도 좋게 하고 일석이조다. 금세 커피색으로 변한 욕조에 아이들 눈은 휘둥그레지고 서로 먼저 들어가겠다며 아우성이다. 밀가루 묻은 채로 한 명씩 욕조에 집어넣고, 나는 밀가루  가득 들어있는 대야와 장난감들을 정리한다. 막상 욕조에 들어가니 둥둥 떠다니는 검은색 녹 잎이 거슬리고 불편한가보다. 몇 분 안되었는데 벌써 나가겠다고 또 아우성이다.


이번에는 밀가루보다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거름망에라도 넣어서 할걸, 생각 없이 기분 따라 그냥 덜컥 쏟아부었더니 녹차 잎은 퉁퉁 불어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일단 먼저 아이들부터 한 명씩 씻긴 뒤 수건으로 아주고 딸아이만 기저귀와 윗옷 대충 입혀서는 내보낸다. 그리고 아들에게는 스스로 입으라고 알려준다. 난 녹차 우려낸 물이 아까워 잠깐만이라도 욕조에 몸을 담가본다. 마음 같아서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대로 있고 싶지만, 아이들 때문에, 또 녹차 잎 건더기들을 처리해야 하니 부산히 몸을 일으켜 움직인다. 큰 건더기들은 손으로 대충 건져 내고 물 빠질 때 미리 받쳐놓은 거름망에 일일이 손으로 건더기들을 건져낸다. 여러 번 반복하니 물만 쏙 빠지고 욕조안에 작은 건더기들만 남았다. 나머지 찌꺼기 마저 다 정리하고는 서둘러 헹구고 나온다.


좀 더 놀자는 아들 성화에 다시 이불과 매트로 텐트만들고 다시 미끄럼틀 만들놀아 본다. 그제야 잠이 오는지 아이들 한 명씩 하품을 하기 시작한다. 자기 전 아들은 화장실에 가서 쉬하고 딸은 데워진 우유를 마신다. 그사이 나는 지저분해진 이불과 잠자리를 정리하고 책 한 권 꺼내 아이들 곁으로 가서는 읽어준다. 책을 읽자마자 아들은 재빠르게 불을 끄러 가고, 오빠 따라쟁이인 딸은 자기 불 끄겠다며 칭얼거린다. 겨우 누워있던 몸을 다시 일으켜 딸을 안아 불을 끄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침대에 눕는다.


딸은 내 배위로 다리 하나를 툭 올리고 아들은 좁은 내 베개 끄트머리에 자기 얼굴을 갖다 댄다. 까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금세 새근새근 잠이 든다.

입냄새 폴폴 풍기며 잠든 아이들 사이에 난 샌드위치처럼 끼어서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하지만 내 피부와는 다르게 촉촉하고 보드라운 살이  느낌이 좋아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진다.


아이들 재우고 거실로 나가려고 하니 엄마가 자기 계발하려는 걸 아는지, 마치 공부하지 말라는 듯 둘이서 나를 꽁꽁 워싸고는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도 자기 계발은 포기하고 거실로 나가서 책 읽는 대신에 이불 꽉 뒤집어쓰고는 휴대폰을 켜 글을 쓴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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