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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Jun 20. 2021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남편은 모른다.

내가 글을 쓰는지.


지극히 현실주의자인 남편은 생산적인 일, 즉 돈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다.

반면에 지극히 이상주의자인 나는 늘 생각이 많고 공상하기를 좋아한다.


예전에 연애할 때나, 신혼초에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면 혼자 들떠서 남편에게 막 얘기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비록 큰 리액션은 없었지만 그래도 묵묵히 얘기하나는 잘 들어줬었다.


하지만, 같이 함께한 세월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내가 조금만 현실에서 벗어난 얘기를 하면, 항상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를 보며 웃으면서 한마디 하기 시작했다.


"참 허무맹랑한 소리만 한다니까.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


남편이 생각했을 때 나의 얘기들이 현실성은 제로인 데다가 돈과 연결 지어지는 결과물이 없다 보니, 이제는 내가 하는 얘기들은 다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해 버리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나 보다.

더 이상 남편에게 나의 얘기, 나의 생각, 나의 아이디어를 같이 공유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 사이가 나빠지거나 안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냥 남편 성격을 너무나 잘 알기에, 현실주의자인 남편을 생각하고 배려해서 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이렇다 보니 의도치 않게 나에게 비밀이 생겼다.

브런치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밤에 애들 재우고 거실로 나와 남편과 영화를 보든,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든 항상 함께 했을 텐데, 요즘은 같이 영화도 보지 않고 나 홀로 식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니, 남편도 이제는 혼자서 휴대폰을 보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한다.


오늘도 나 혼자 식탁에 앉아 몇 시간째 휴대폰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검지 손가락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니, 남편은 이제는 내가 뭐하나 궁금한가 보다.


남편이 휴대폰을 충전한다며 식탁에 앉아있는 내 쪽으로 다가오는데 뭔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싸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올려다보니 남편은 멋쩍은 미소를 지은 채 내 휴대폰에 시선이 고정되어있다.


 마음속으로는 화들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재빨리 다른 화면으로 바꿔버렸다.

그렇게 남편은 오늘도 내가 뭘 하는지 모른 채 넘어간다.




함께한 세월이 길어도 남편은 나에 대해 알려면 한참 멀었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내가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거다.


언젠가 남편이 나의 브런치 글을 읽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내 기분도 내 기분이지만 남편 반응이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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