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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Oct 14. 2021

수제비

엄마 생각


오늘 우리 집 저녁 메뉴는 수제비다.


밀가루 한 봉지 뜯어, 스텐 소쿠리 세 개에다가 나눠 쏟아부은 뒤, 배스킨라빈스 분홍 스푼으로 첫 번째 소쿠리에는 비트 가루, 두 번째 소쿠리에는 새싹보리가루, 세 번째 소쿠리에는 강황가루(강황은 향이 강해서 아주 소량만 넣음) 한 스푼씩 털어 넣는다. 숟가락으로 휘휘 골고루 섞어준 뒤, 소금은 한 번만 탈탈, 카놀라유 한 바퀴 휙 두르고, 생수 조금씩 부어가며 반죽한다.


손에 안 묻을 정도로만 기본 반죽을  뒤, 아이들을 거실로 부른다. 애들한테 손 깨끗이 씻고 오라고 한 후, 한 소쿠리씩 나눠준다.


초록색 반죽은 아들이 차지하고 노란색 반죽은 딸이, 나는 빨간색 반죽이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알록달록 색깔 때문에 아이들은 클레이 만지듯 신나게 조몰락조몰락거리며 기분 좋게 반죽한다.

그렇게 여러 번 주물러 말랑말랑한 상태가 되면, 비닐랩에 하나씩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다.


낮에 미리 끓여놨던 멸치육수를 냄비에 붓고 불을 켠다.

그리고는 대파도 미리 썰어둔다.

육수가 팔팔 끓으면,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내 한주먹 뚝 뜯어서, 최대한 얇게 뜯어 넣는다.

세 가지 반죽을 냄비 꽉 차게  뜯어 넣고 나면, 한소끔 끓게 내버려 둔다. 육수 간이 싱겁다 싶으면 참치액 반 숟가락으로 간을 맞춘다.

반죽이 익어서 부들부들한 상태가 되면, 미리 썰어놨던 대파를 넣고, 후추로 마무리한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부르지 않았는데도 미리 밥상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집 전용 스텐 국그릇에 한 그릇씩 가득 담아 밥상 위에 올려놓으니 아이들은 김이 모락모락 뜨거운데도 연신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다.

자신들이 반죽한 수제비가 더 맛있다며 큰아이는 초록 수제비만, 작은아이는 노란 수제비만 먼저 쏙쏙 골라먹는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 나도 그제야 한 숟가락 뜬다.


내가 만들었지만 참 맛있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시던  그 수제비 맛이다.

어릴 때 먹던 수제비보다는 한층 고급스러워졌지만, 부들부들 쫄깃쫄깃 얇은 반죽이 엄마가 해주시던 맛 그대로다.

수제비 반죽이 되어서 기분 좋고, 맛있어서 기분 좋고,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 좋다.

뿌듯한 마음에 수제비 음식 사진 한 장, 아이들 먹는 사진 한 장 찍어 엄마께 보내드리니 오늘은 어쩐 일인지 바로 연락이 온다.

엄마는 잘 만들었다며 나보다 더 기분이 좋으신지, 별 거 아닌 얘기에도 연신 껄껄거리며 웃으신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주신 멸치로 육수 내고,

엄마가 주신 밀가루에,

엄마가 주신 비트 가루, 새싹보리가루로 반죽하고,

엄마가 주신 후춧가루로 마무리한 수제비.

내가 산 거라고는 대파뿐.


우리 엄마는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안 하는데, 어쩜 이리도 끊임없이 먹을 것을 보내주시는지.

엄마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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