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재설정
인간관계는 그 관계가 재설정되는 순간, 따라야 하는 룰이 자동적으로 생긴다.
그냥 알던 사람이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또 애인이 가족이 되는 것처럼 어떤 타이틀이 부여되냐에 따라 그에 타당한 역할과 책임이 따른다. 관계의 재설정이다.
관계가 재설정되고 나면 서로 간에 기대하는 것들이 생겨버린다. 그전에 아무렇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이 문제가 되고 신경 쓰이고 나중에는 응어리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관계가 더 깊어질수록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떠한 관계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날은 우리의 관계가 재설정되는 날이었다.
정식으로 명료하게 관계를 정하고 이어갔던 건 그 겨울이 처음이었다.
다들 어디론가 바쁘게 이동하는 어느 기차역에서 조심스레 그가 건넨 말은 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한켠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용기를 냈다. 언제까지 피하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믿음을 갖고 시작해 보자고 결심하니 그 이후부터는 마음이 편했다.
아마 그때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 건 서로를 향한 믿음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이 그렇게 금방 감정이 믿음이 생길 수 있나 라는 의문이 사실 계속 들었었다. 당시에 난 마음의 문을 쉽게 여는 편이 아니었기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게 너무 조심스러웠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애틋한 감정 문구가 담긴 쪽지 하나, 한적한 동네로 떠난 드라이브, 동네 놀이터 산책까지 하나 둘 쌓여가는 나날은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푸르게 시린 계절의 따뜻한 추억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날 배려하고 아껴주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렇게 쉽게 끝나버린 관계가 아직까지도 아쉬움이 남는 건 그 따스함 때문일 것이다.
뭔가를 매우 좋아하고 매우 신나 하고 무엇이든지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다 보니 인간관계에서도 그게 가장 걸림돌이었다. 내 감정에 서투르다 보니 상대의 감정을 공감하고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도 항상 어색했다.
그 이후에는 미팅도 하고 소개팅도 하고 했으나 그리 깊은 관계를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하릴없이 시간 보내던 게 낙이었다. 학교를 어영부영 졸업하고 입사 후에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데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서 만난 단조로운 관계들이 아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좀 더 다채로웠다. 다양한 관계가 존재했다. 회식하다가 슬쩍 던져진 얘기에 한번 만나보기도 하고, 팀 사람한테 후배 소개받기도 하고, 다른 팀 사람과 친해져 보려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등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심심찮게 있었는데, 이런 모든 것들은 내가 좀 더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로부터 배워 성장해 나가는 재료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는 참 어렵다.
사회생활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관계는 언제나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동시에 기대감이 함께한다. 나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의 관계도 잘 다듬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