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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세 Jul 19. 2024

고요한 포옹

1. 번아웃은 ‘나 아닌 상태’로 무언가를 이루려 오랫동안 애쓸 때 일어난다. 누군가 내게 노력을 요구할 때 거부감이 드는 건 외부에서 요구하는 노력이 나를 상하게 할 위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 사랑을 받기 위해, 얻고 넘고 오르기 위해 노력했다.



2. 스스로 원해서 하는 노력은 나에게 성취감을 주고 삶의 의욕을 갖게 한다. 반면 남에게 보이기 위한 노력, 남들을 따라서 하는 노력은 나를 지운다. 이러한 노력은 인생을 무겁게 만든다. 의무감으로 살게 하고 삶을 버텨야 할 시간으로 느끼게 한다.



3. 나는 젊고 미숙한 부모를 위해 태어난 게 아니고, 나무나 태양을 위해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는 더욱 아니고 어쩌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게다.


내가 태어났다고 꽹과리를 치며 즐거우한 사람도 없었고, 키울 수 없으니 내다 버리자고 모의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세상에 돋아나 자랐고 머물렀다. 사람은 변할 수 있지만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본성이란 ‘본디부터 가진 성질’인데 갖고 태어난 걸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연’이다. 자기 본성에 맞는 삶을 살도록 태어난 사람이라는 얘기다.



4.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할 가능성은 없다. 행복은 체험이다. 많이 겪어본 사람이 더 자주, 쉽게 겪을 수 있다. 유년에 저금해 둔 행복을 한꺼번에 찾아 즐겁게 누리는 어른을 본 적이 없다. 참고 또 참은 아이는 욕구불만과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어른으로 자랄 뿐이다.



5. 미래의 행복을 위해 스펙을 쌓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종잣돈을 모으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적금을 붓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재테크에 뛰어들며, 미래의 행복을 위해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불합리한 일과 고된 노동을 참아야 한다. 나중이란 시간은 도착하면 멀어진다. 미래는 언제나 미래로 존재한다.


즐거움을 포기하는 게 만성이 되면 인생은 서바이벌이 된다. 살아남기. 나중을 위해 다만 살아남기.



6. 살면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 한다. 창작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잘하고 못할 수가 없다. 딱 자기만큼(정확히는 자기 안목과 성실함만큼)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연연해야 할 건 나, 내 삶, 내 생각이다. 너, 네 삶, 네 생각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문제다.



7. 책은 우리가 키우는 ‘반려사물’이나 마찬가지다. 책도 사람처럼 들고나면 움직일 수 있다. 책도 살고 죽을 수 있다. 책도 사람처럼 잊힐 수 있다. 존재감을 뽐내며 으스댈 수 있다. 책도(스스로) 집을 어지럽힐 수 있다. 숨거나 사라질 수 있다.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돌아올 수 있다. 필요할 때마다 매번 숨는 책도 있다. 말을 안 드는 책이 있다.!


사람만 집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다. 물건이나 가구, 책도 집의 주인이 된다. 웬만해선 집을 비우는 일도 없으니 그들이야말로 터줏대감, 진정한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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