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쇄기의 울림

한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만든 변화의 이야기

by 호세

콜롬보 공항, 2022년 3월.

라빈은 아내 샤니카의 손을 꽉 잡았다. 10살 아들 카말과 7살 딸 니루샤가 아빠의 다리에 매달렸다.

"2년만, 딱 2년만 기다려줘. 카말이 대학 갈 돈, 니루샤 피아노 레슨비, 다 벌어올게."

샤니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가가 젖어있었다. 라빈은 가방에서 작은 십자가 목걸이를 꺼내 카말에게 건넸다.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엄마랑 동생 잘 돌봐. 너는 이제 가장이야."

출국 게이트를 지나며 라빈은 뒤돌아봤다. 가족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꼭 성공해서 돌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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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2024년 9월 15일. 그날도 안개가 자욱했다.

폐기물 처리업체 '그린코어 환경'의 아스팔트 위에 이슬이 촉촉히 내려앉아 있었다. 공장 주변으로 몇 대의 트럭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고, 멀리서 지게차 소리가 들려왔다.

오전 6시 30분, 라빈(가명, 42세)은 습관처럼 파쇄기실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1시간 반을 달려 이곳까지 오는 통근버스에서 졸다 깬 얼굴이 아직 부어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가족 사진을 한 번 훑어봤다. 어젯밤 화상통화에서 본 카말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빠, 수학 시험 100점 맞았어요!" 기뻐하던 아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헬멧을 쓰며 라빈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민 노동자로서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온 그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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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코어 환경은 하루 수백 톤의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중견기업이었다. 플라스틱, 금속, 목재 등 각종 폐기물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흘러들어와 거대한 파쇄기들을 통과했다.

라빈은 입사한 지 1년 8개월째였다. 파쇄기 2호기의 청소 및 유지보수를 담당했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성실하고 꼼꼼한 작업자로 통했다.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몸짓과 표정으로 의사소통했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라빈 형, 오늘 기계 상태 어때?"

같은 조의 지훈(35)이 다가왔다. 지훈은 라빈보다 6개월 늦게 입사했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파쇄기 조작을 담당하게 되었다.

"괜찮아요. 어제 청소 다 했어요." 라빈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젯밤 야간조에서 넘어온 인수인계서를 보니, 2호기 내부에 플라스틱 덩어리가 끼어있다고 적혀있었다.

"오늘 기계 안 들어가서 청소해야 해요." 라빈이 파쇄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라빈의 '기계 안', '청소'라는 단어들이 정확히 무슨 상황을 의미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회사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별도의 안전교육이나 의사소통 매뉴얼이 없었다.


오전 7시, 라빈은 2호기의 전원을 차단하고 내부로 들어갔다.

파쇄기 내부는 날카로운 칼날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미로 같았다. 높이 2미터, 폭 3미터의 공간 안에서 라빈은 손전등을 들고 끼어있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찾았다.

"아, 여기 있네."

굵은 PVC 파이프가 칼날 사이에 비스듬히 끼어있었다. 라빈은 지렛대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빼내기 시작했다. 이런 작업을 할 때는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가 걸렸다.

한편 지훈은 컨트롤 룸에서 다른 업무를 보고 있었다. 오전 일정을 확인하고, 폐기물 반입 현황을 체크했다. 시간이 흘러 오전 7시 20분이 되었다.

"라빈 형, 어떻게 돼가요?" 지훈이 파쇄기 쪽으로 소리쳤다.

기계 안에서 무언가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업 소리려니 생각했다.

"형, 거의 다 됐어요?" 다시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지훈은 시계를 봤다. 7시 25분.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오늘 처리해야 할 폐기물량이 많았다. 윤 사장이 "일정 지연되면 안 된다"고 계속 강조했던 말이 떠올랐다.

'청소 끝난 것 같은데?'

기계 안이 조용해졌다. 라빈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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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27분.

지훈이 파쇄기 가동 버튼에 손을 올렸다. 평소 같으면 한 번 더 확인했을 텐데, 그날따라 서둘렀다.

"형, 끝났어요?" 마지막으로 한 번 소리쳤다.

대답이 없었다. 기계는 조용했고, 지훈은 청소가 끝났다고 확신했다.

버튼을 눌렀다.

기계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음의 웅웅거리는 소리, 그다음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파쇄기의 거대한 칼날들이 회전하며 속도를 높여갔다.

3초 후.

기계 안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사람의 목소리였다.

"스탑! 스탑!"

지훈의 온몸에 전기가 통했다. 손이 떨렸다. 비상정지 버튼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컨트롤 패널에는 수십 개의 버튼과 스위치가 있었다.

"어디야, 어디 있어!" 지훈이 소리쳤다.

5초가 더 흘렀다. 기계 안의 소리가 멈췄다.

지훈은 전원 차단 스위치를 찾아 내렸다. 파쇄기가 서서히 멈췄다. 그리고 달려가서 기계 내부를 들여다봤다.

라빈이 있었다. 아니, 라빈이었던 것이 있었다.

지훈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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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35분, 119 신고.

"사람이... 사람이 기계에..." 지훈의 목소리는 거의 들릴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10분 후 구급차와 소방차가 도착했다.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확인한 후 곧바로 사망을 선언했다. 경찰이 도착했고,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출동했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표이사 윤 사장(58)은 급히 골프장에서 돌아왔다. 그는 현장을 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윤 사장은 20년째 이 사업을 해왔지만, 이런 대형 사고는 처음이었다. 아니, 사실 크고 작은 사고는 여러 번 있었다. 손가락 베임, 화상, 타박상. 하지만 모두 '경미한' 사고로 처리했다.

"사장님, 언론에서 연락 오고 있습니다." 총무과장이 다가왔다.

그날 오후, KBS 뉴스가 제일 먼저 보도했다.

"경기도 화성의 한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가 파쇄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작업하다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 다른 언론들도 기사를 쏟아냈다. "또 다른 외국인 노동자 참사", "3D 업종 안전불감증 여전", "값싼 노동력의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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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지훈은 출근하지 않았다.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내 미영이 밥을 차려줘도 먹지 않았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라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여보, 병원 가자. 상담받자." 미영이 간곡히 말했다.

"내가 죽였어." 지훈이 중얼거렸다. "내가 그 사람을 죽였어."

"사고였잖아. 당신 잘못이 아니야."

"아니야. 내가 확인했어야 했어.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 확인했다면..."

지훈은 그 순간을 수천 번 되돌렸다. 만약 파쇄기 옆으로 가서 직접 확인했다면? 만약 라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면? 만약 비상정지 버튼 위치를 알고 있었다면?

3주 후, 지훈은 처음으로 라빈의 SNS를 찾아봤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들을 하나씩 봤다.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스리랑카 음식 사진, 한국에서 찍은 일상 사진들.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린코어 환경 앞에서 찍은 셀카였다. 라빈이 엄지손가락을 들고 웃고 있었다. 댓글로 스리랑카어가 달려있었는데, 번역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새 직장 첫날!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에게 좋은 소식 전하겠습니다."

지훈은 그 자리에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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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콜롬보.

샤니카는 남편의 사고 소식을 한국 대사관을 통해 들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졌다.

"엄마, 왜 울어요?" 니루샤가 다가왔다.

"아빠가... 아빠가 아파서 병원에 있어."

샤니카는 아이들에게 당장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카말은 이미 눈치챘는지 아무 말 없이 동생을 품에 안았다.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라빈의 동료들 몇 명이 참석했다. 지훈도 왔다. 그는 관 앞에서 한참을 서있다가 무릎을 꿇고 절했다.

"형, 미안해. 정말 미안해."

통역사를 통해 샤니카와 대화했다.

"제가... 제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제 잘못입니다."

샤니카는 지훈을 바라봤다. 그의 눈이 라빈만큼이나 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라빈은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라빈은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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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후, 대전지방법원.

윤 사장과 안전관리자(라는 이름뿐이었던 총무과장)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다. 검찰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도 추가로 적용했다.

"피고인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했습니다." 검사가 기소장을 읽었다. "Lock-Out/Tag-Out 절차 미비, 비상정지장치 교육 부재, 외국인 근로자 대상 안전교육 실시 의무 위반..."

변호사는 "우발적 사고"라고 주장했지만, 증거는 명백했다.

파쇄기 작업 시 안전 절차 매뉴얼 없음


비상정지 버튼 위치 교육 실시하지 않음


외국인 근로자 대상 모국어 안전교육 미실시


위험 기계 점검 및 정비 시 작업자 간 의사소통 체계 부재


"피고인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합니다."

윤 사장은 고개를 숙였다. 벌금 5천만 원도 함께 부과되었다.


판결 이후 윤 사장은 달라졌다.

"이제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처음으로 전문 안전관리책임자를 채용했다. 김 과장(48)은 대기업에서 20년간 안전관리 업무를 해온 전문가였다.

"사장님, 전면적인 시스템 개편이 필요합니다." 김 과장이 보고서를 내밀었다.

먼저 모든 기계에 Lock-Out/Tag-Out 시스템을 도입했다. 위험 기계 정비 시에는 반드시 전원을 차단하고, 작업자가 직접 자물쇠를 채우고 태그를 다는 방식이었다. 다른 사람이 함부로 기계를 가동할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비상정지 버튼도 새로 설치했다. 빨간색으로 크게 만들어 어디서든 보이게 했다. 버튼 위에는 한국어, 영어, 베트남어, 스리랑카어로 '비상정지'라고 써넣었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안전교육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전문 번역업체에 의뢰해 안전수칙을 각국 언어로 번역했다. 그림과 동영상을 활용해 언어 장벽을 최소화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었다. 각 조에 외국인 근로자와 한국인 근로자가 함께 배치되되, 반드시 의사소통 교육을 받도록 했다. 간단한 안전 관련 외국어 교육도 실시했다.

변화에는 비용이 들었다. 한 달에 2천만 원씩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하지만 윤 사장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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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후, 지훈이 복직했다.

첫 출근날, 그는 새로 설치된 라빈 추모 표지판 앞에 섰다.

"형, 나 다시 왔어. 이제 제대로 할게."

지훈은 안전교육 담당자로 배치되었다. 새로 들어오는 근로자들에게 라빈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었다.

"이 분은 라빈이라는 분이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오셨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신 분이었어요."

지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제가 조심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절대 같은 실수를 하지 마세요."

그는 Lock-Out/Tag-Out 절차를 직접 시연했다. 비상정지 버튼 위치를 설명했다. 외국인 근로자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확실하지 않으면 묻고, 또 물으세요. 귀찮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한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교육을 받던 새 직원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그런데... 형님은 왜 그때 확인 안 하셨어요?"

다른 직원들이 "야, 그런 걸 왜 물어"라고 했지만, 지훈은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바빴어요. 일정에 쫓겼고, 빨리빨리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설마 했죠. 설마 형이 아직 안에 있을까, 설마 사고가 날까."

지훈이 고개를 숙였다.

"그 '설마'가 사람을 죽입니다. 절대로 '설마'하지 마세요."


어느 날, 지훈에게 국제우편이 도착했다. 스리랑카에서 온 편지였다.

보내는 사람은 카말, 라빈의 아들이었다. 서투른 영어로 쓰인 편지였다.

"지훈 아저씨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카말입니다. 아빠의 아들입니다.

엄마가 아저씨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아저씨가 많이 슬퍼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아저씨를 원망하지 않아요. 엄마도 그래요.

아빠는 항상 말씀하셨어요.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고. 중요한 건 그 다음이라고.

아저씨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빠 이야기를 해준다고 들었어요. 아빠가 기뻐하실 거예요.

아저씨,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빠는 아저씨를 용서할 거예요. 그리고 감사할 거예요. 아저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안전해졌으니까요.

저는 이제 12살이에요. 아빠처럼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저씨도 건강하세요.

카말 드림"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지훈은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답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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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5일, 라빈의 기일.

그린코어 환경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샤니카와 두 아이들이었다. 한국 정부와 회사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이었다.

공장 입구에는 새로운 표지판이 서있었다.

"안전 제일 - SAFETY FIRST 이곳에서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2024.9.15 라빈을 기리며"

샤니카는 안전모에 작은 연꽃을 달고 2호기 파쇄기 앞에 섰다. 잠시 기도를 올린 후, 아이들과 함께 꽃을 놓았다.

지훈이 다가왔다. 그는 샤니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샤니카는 지훈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라빈이 당신을 만났다면 친구가 되었을 거예요. 라빈은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카말이 지훈에게 다가와 안겼다.

"아저씨, 편지 고마웠어요. 아저씨도 우리 가족이에요."

그날 오후, 회사에서는 추모식을 열었다. 전 직원이 참석했다. 윤 사장이 먼저 말했다.

"라빈 씨의 희생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안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사람의 생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지훈이 단상에 올라갔다.

"라빈 형은 저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스승입니다. 안전의 중요성을, 소통의 필요성을, 그리고 책임감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단단했다.

"우리는 라빈 형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라빈 형처럼 희생되는 사람이 다시는 없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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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났다.

그린코어 환경은 업계 안전관리 모범사례로 선정되었다. 다른 업체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왔다. 지훈은 이제 안전관리 전문가가 되어 다른 회사들을 다니며 강의를 했다.

"안전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의 강의에는 항상 라빈의 이야기가 들어갔다. 실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떻게 시스템을 바꿨는지 생생하게 전했다.

어느 날, 한 청중이 질문했다.

"그런데 강사님, 그 외국인 분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세요?"

지훈이 미소를 지었다.

"카말이는 이제 중학생이 됐어요. 수학을 정말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니루샤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고요. 어머니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계세요. 내년에 다시 한국에 오신다고 합니다."

"그분들과 계속 연락하시는군요."

"네. 이제 가족이니까요."


스리랑카, 2026년.

카말은 이제 14살이 되었다. 아버지를 닮아 키가 훌쩍 컸다. 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장 좋아했다.

어느 날 작문 시간에 '나의 꿈'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나는 안전 엔지니어가 되고 싶습니다.

아빠는 한국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기계가 안전하지 않아서였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했고, 더 안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빠처럼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기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훈 아저씨가 보내준 편지에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네 아버지의 희생이 많은 사람을 구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빠의 꿈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언젠가 한국에 가서 공부하고, 아빠가 일했던 곳도 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훈 아저씨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빠 덕분에 세상이 더 안전해졌어요'라고."

선생님은 카말의 작문을 읽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반 친구들 앞에서 카말의 글을 읽어주었다.

"카말의 아버지는 진정한 영웅입니다. 그리고 카말도 영웅이 될 것입니다."


2026년 봄, 지훈은 전국 안전관리자 대회에서 특별강연을 했다.

"여러분, 저는 살인자였습니다."

청중들이 술렁였다.

"법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제 손으로 한 사람을 죽였습니다. 확인하지 않았고, 소통하지 않았고, 안전을 소홀히 했습니다."

그는 라빈의 사진을 스크린에 띄웠다.

"이 분은 라빈이라는 분입니다. 저보다 7살 많은 형이었어요. 스리랑카에서 오셨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분을 죽였습니다."

청중석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라빈 형의 가족은 저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죠. '중요한 건 그 다음이라고.' 라빈 형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훈은 가슴에서 작은 십자가 목걸이를 꺼냈다. 카말이 선물로 보내준 것이었다.

"이건 라빈 형이 아들에게 물려주려던 목걸이입니다. 카말이가 저에게 주었어요. '아저씨도 가족이니까'라고 하면서요."

그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여러분, 안전사고는 한순간입니다. 3초의 방심, 5초의 확인 부족이 평생의 후회가 됩니다. 그리고 한 가족의 인생을 바꿔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꿀 수 있습니다. 시스템을 만들고, 교육하고, 소통하면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안전의식을 가지면 됩니다."

강연이 끝난 후, 한 참석자가 다가왔다.

"강사님,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힘드시죠?"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꿈에 나타나세요. 하지만 이제는 원망하는 표정이 아니에요. 웃고 계세요. '잘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스리랑카의 한 어학원에서 샤니카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샤니카입니다."

"안전이 제일 중요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물었다. "샤니카 씨는 왜 한국어를 배우시나요?"

"남편이... 남편이 한국에서 일했어요. 그곳 사람들이 저희 가족을 많이 도와줬어요.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요."

샤니카는 지훈과 화상통화를 할 때마다 한국어로 인사했다.

"지훈 씨,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어때요?"

서툰 발음이었지만, 지훈은 매번 감동했다.

"누나, 한국어 정말 많이 늘었어요."

"카말이가 내년에 한국 가고 싶다고 해요. 교환학생으로요."

"정말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카말이는 정말 똑똑하니까 한국 대학교에서도 잘할 거예요."

"지훈 씨 덕분이에요. 라빈도 고마워할 거예요."


윤 사장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전 직원 조회에서 안전 점검을 직접 했다. 새로 들어오는 장비는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검토했다. 비용이 더 들어도 상관없었다.

"돈은 벌면 되지만, 생명은 잃으면 끝이야."

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어느 날, 비슷한 업종의 사장들 모임에서 누군가 말했다.

"윤 사장, 요즘 너무 안전에만 신경 쓰는 거 아냐? 비용도 많이 들고... 외국인들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윤 사장이 잠시 멈췄다.

"김 사장, 당신도 언젠가 알게 될 거야. 한 사람이 죽으면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그때는 늦어. 미리 해야 해."

그날 밤, 윤 사장은 라빈의 사진 앞에서 보고했다.

"라빈 씨, 올해도 무사고 달성했습니다. 직원들 모두 건강하게 집에 돌아갔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2027년 여름, 카말이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인천공항에서 지훈과 미영이 마중을 나왔다. 17살이 된 카말은 아버지를 닮아 훤칠한 청년으로 자라있었다.

"카말! 여기야!"

카말이 달려와 지훈을 껴안았다.

"지훈 아저씨! 정말 만나서 반가워요!"

유창한 한국어였다. 3년간 독학으로 배운 실력이었다.

"우와, 한국어 정말 잘한다. 아빠 닮아서 똑똑하구나."

카말의 첫 번째 목적지는 그린코어 환경이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을 보고 싶다고 했다.

공장 앞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3년 전보다 훨씬 깔끔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아빠가 여기서 일하셨구나."

윤 사장이 직접 카말을 맞았다.

"카말아, 잘 왔다. 아빠를 많이 닮았구나."

카말은 2호기 파쇄기 앞에서 잠시 묵념했다. 그리고 새로 설치된 안전장치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아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네요.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김 안전관리책임자가 설명했다.

"이 모든 게 너희 아버지 덕분이야. 라빈 씨가 우리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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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카말과 지훈은 한강에서 산책했다.

"아저씨, 저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안전공학을 전공하고 싶습니다."

"정말? 좋은 생각이야. 아빠가 정말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사람이요."

지훈이 카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카말아, 너는 이미 충분히 훌륭해. 아빠의 꿈을 이어가고 있잖아."

"아저씨도 아빠의 꿈을 이어가고 있어요. 아빠가 꿈꿨던 안전한 세상 말이에요."

둘은 한강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야경이 아름다웠다.

"아저씨, 약속해요. 우리 함께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요."

"약속한다."

그들의 약속은 한강 위로 퍼져나갔다.


2028년, 라빈 사고 4주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는 '라빈 안전상'을 제정했다. 외국인 근로자 안전보호에 기여한 개인이나 기업에 주는 상이었다.

첫 번째 수상자는 지훈이었다.

"이 상은 제가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지훈이 수상소감에서 말했다. "진짜 수상자는 라빈입니다. 라빈이 우리 모두를 변화시켰습니다."

카말이 한국 대학교 안전공학과에 입학했다. 수석 입학이었다. 입학식 날, 샤니카와 니루샤도 한국에 왔다.

"라빈, 보고 있어요? 우리 아들 정말 자랑스럽죠?" 샤니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니루샤는 이제 12살이 되어 피아노를 정말 잘 쳤다. 그날 저녁 환영회에서 '아리랑'을 연주했다. 아버지가 좋아했던 한국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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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년, 카말이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그는 '이주노동자 안전권익 보호 동아리'를 만들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언어 때문에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도와야 해요."

동아리에서는 안전교육 자료를 다양한 언어로 번역했다. 현장을 직접 방문해서 교육도 했다. 카말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 아버지는 한국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안전 시스템이 부족해서였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카말의 활동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도 했다. 제목은 '아버지의 꿈을 이어가는 아들'이었다.


2030년, 라빈 사고 6주기.

그린코어 환경은 이제 업계 최고의 안전관리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6년 연속 무사고를 달성했다. 다른 나라 기업들도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왔다.

지훈은 이제 전국적으로 유명한 안전교육 전문가가 되었다.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카말은 대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논문 주제는 '다문화 작업장의 안전 의사소통 시스템 개발'이었다.

샤니카는 스리랑카에서 한국어 강사가 되었다. 한국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한국어와 함께 안전의식을 가르쳤다.

니루샤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며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했던 한국 노래들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이 특기였다.

그날, 추모식에서 윤 사장이 말했다.

"라빈 씨, 6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었습니다. 280명의 직원이 모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입니다."

지훈이 단상에 올라갔다.

"라빈 형, 카말이가 이제 안전 전문가가 되려고 합니다. 형의 꿈을 이어받아서요. 형이 그토록 원했던 안전한 세상, 우리가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어요."

카말도 마이크를 잡았다.

"아빠, 저는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아빠의 희생이 이렇게 많은 변화를 만들었어요. 저도 아빠처럼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사람이 될 거예요."

그날 밤, 2호기 파쇄기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더 이상 죽음의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은 안전의 평화였다. 라빈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평화였다.

파쇄기의 울림은 이제 경고의 소리가 되었다. '안전하게, 조심스럽게, 서로를 배려하며' 일하라는 라빈의 마지막 당부였다.

그리고 그 울림은 계속될 것이다. 카말을 통해, 지훈을 통해, 그리고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통해.

라빈은 죽었지만, 그의 꿈은 살아있었다.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

그것이 라빈이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In memory of all workers who lost their lives in workplace accidents, and in hope of a safer tomorrow for all."

"모든 산업재해 희생자들을 기리며, 더 안전한 내일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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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국내에서 발생한 실제 뉴스와 사회적 이슈들에서 영감을 받아 AI의 도움을 받아 창작한 허구의 작품입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 기관명, 지명, 사건의 구체적 경위 등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것이며, 실존하는 인물이나 단체와는 일체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본 작품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문학적 시각으로 조명하고,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사회적 쟁점이나 개인의 견해는 작가 개인의 문학적 표현일 뿐, 특정 입장을 대변하거나 현실의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모든 독자들이 이 작품을 순수한 문학작품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라며, 혹시라도 실제 상황과 유사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