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계단

집으로 가는 마지막 길에서

by 호세

진해만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태양조선소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2024년 1월 18일 새벽 1시, 거대한 조선소는 마치 잠들지 않는 도시처럼 곳곳에서 용접 불꽃이 튀고 있었다. 높이 200미터가 넘는 골리앗 크레인들이 어둠 속에서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위압적이었다.

김태민(48)은 15년째 이곳 안전관리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경상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조선업계에서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해온 그는, 이 일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인한 예산 삭감과 인력 감축은 그를 점점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또 야간 순찰이군." 태민은 안전모를 쓰며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 1시부터 3시까지의 야간 순찰은 그의 일상이었다. 이 시간대가 가장 위험했기 때문이다. 낮 근무의 피로가 누적된 야간 근무자들, 시야가 제한되는 어둠, 그리고 무엇보다 새벽 시간대의 방심과 졸음이 크고 작은 사고의 원인이 되곤 했다.

태양조선소는 본사 직원 3,500명에 40여 개 협력업체 직원 12,000명이 일하는 거대한 산업단지였다. 길이 400미터, 폭 80미터의 초대형 선박들이 동시에 5척씩 건조되고 있었고, 24시간 3교대로 돌아가는 현장에서는 언제나 크고 작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특히 협력업체 직원들의 안전사고율이 본사 직원보다 3배나 높다는 통계는 태민을 항상 불안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3번 도크부터 시작해야겠어." 태민은 순찰 계획을 세우며 사무실을 나섰다. 겨울 바닷바람이 그의 얼굴을 매섭게 할퀴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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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20분, 태민이 1번 도크 점검을 마치고 2번 도크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무전기에서 급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전팀장님! 긴급상황입니다! 3번 도크 A동 계단에서 추락사고 발생! 한성산업 소속 박성호 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습니다!"

태민의 혈액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식었다. 박성호.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얼굴이 떠올랐다. 40대 초반의 성실한 배관공으로,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작년 안전교육 때 "가족을 위해서라도 안전사고만은 절대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사람이었다.

"지금 즉시 갑니다! 119 신고는 했나요?" 태민은 전력으로 3번 도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네, 신고 완료했습니다! 구급차 도착까지 5분 예상됩니다!"

3번 도크까지는 평소 걸어서 7분 거리였지만, 태민은 3분 만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이미 동료 작업자들과 현장 감독관이 몰려 있었다. 그들 사이로 보이는 박성호의 모습에 태민은 아찔함을 느꼈다.

성호는 높이 4미터의 강철 계단 아래 콘크리트 바닥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왼쪽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창백한 얼굴색이 태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성호 씨! 성호 씨!" 태민이 다급히 부르며 무릎을 꿇었지만, 성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언제 발견했습니까?" 태민이 옆에 있던 동료 작업자에게 물었다.

"10분 전쯤입니다. 윤석이가 화장실 다녀오다가 발견했어요. 성호 형이 계단을 내려가다가..." 젊은 작업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태민은 즉시 계단을 살펴봤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계단 중간 지점의 안전난간이 부식으로 인해 심하게 약해져 있었고, 한쪽 부분은 아예 떨어져 나가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계단 조명이었다. 총 4개의 LED 조명 중 2개가 고장 나 있어서 계단이 매우 어두웠다.

"이런..." 태민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 문제들은 분명히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지난 11월 정기 안전점검에서 지적된 사항들이었다. 당시 수리 예산이 부족해서 "다음 분기로 연기"라고 결정된 바로 그 항목들이었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성호는 응급실로 이송됐다. 태민도 구급차를 따라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 대기실에서 성호의 아내 김미영 씨와 마주쳤을 때, 태민은 차마 눈을 맞추지 못했다.

"우리 남편이... 우리 남편이 어떻게 됐나요?" 미영의 눈은 이미 눈물로 붓기 시작했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뇌출혈이 심각합니다. 지금 수술을 준비하고 있지만... 솔직히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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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는 72시간 동안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다. 태민은 그 3일 동안 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미영과 성호의 두 아이, 8살 딸 지우와 5살 아들 민준을 돌보며 기다렸다.

"아빠는 언제 깨어나요?" 지우가 태민에게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태민은 자신의 15년 안전관리자 생활을 되돌아봤다. 그는 과연 진짜로 안전을 지켰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서류 작업과 형식적인 점검만 해왔던 것일까?

3일째 되는 날 새벽 4시, 의료진은 가족들을 중환자실로 불렀다. 성호의 뇌압이 더 이상 조절되지 않았다. 한 시간 후, 성호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뒀다.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으며 서 있던 미영이 태민을 보자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팀장님... 제발... 제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주세요. 우리 성호만 집에 무사히 왔으면... 그냥 집에만 왔으면..." 미영의 절규 같은 울음소리가 장례식장 전체에 울려 퍼졔다.

태민은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소주를 한 병째 마시고 있었다. 아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지난 15년간의 안전점검 보고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경미한 사항", "추후 보완 예정", "예산 확보 후 시행"... 이런 문구들로 가득한 보고서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위험 요소들.

"나는... 나는 지금까지 뭘 한 거지?" 태민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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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부터 태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경영진에게 긴급 안전예산 승인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올렸다. 예상대로 "예산 사정상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태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건 예산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의 문제입니다." 태민은 임원회의에서 강하게 주장했다. "박성호 씨의 죽음은 우리가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습니다. 11월에 지적된 문제를 제때 해결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의 변화는 현장에서도 드러났다. 이전에는 작업 효율을 고려해서 "주의해서 작업하라"는 정도로 넘어갔던 상황들을 이제는 무조건 작업 중단시켰다. 현장 관리자들과의 충돌도 잦아졌다.

"태민 팀장,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이 정도 가지고 작업을 멈추면 납기를 어떻게 맞춰?" 한 현장소장이 항의했다.

"납기보다 생명이 먼저입니다." 태민의 대답은 단호했다. "앞으로 안전상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작업 중단입니다. 이것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성호의 죽음은 태양조선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고용노동청의 특별 감독이 실시되었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회사는 거액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회사 내부의 변화였다.

성호의 49재가 지난 후, 경영진은 마침내 대대적인 안전시설 개선 계획을 승인했다. 5억 원의 예산이 배정되었고, 3개월간의 집중 공사가 시작되었다.

태민은 매일 공사 현장을 점검했다. 3번 도크의 모든 계단에는 새로운 스테인리스 스틸 난간이 설치되었다. 기존의 낡은 강철 난간과 달리 부식에 강하고 더욱 견고했다. 또한 모든 계단과 통로에 고성능 LED 조명이 설치되어 밤에도 낮처럼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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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후, 개선 공사가 완료되었다. 태민은 성호가 추락했던 바로 그 계단을 다시 올라가 보았다. 이제 그곳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밝은 조명이 계단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튼튼한 난간이 든든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변화는 시설뿐만이 아니었다. 회사 전체의 안전 문화가 바뀌었다. 이제 누구든지 "안전상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즉시 작업이 중단되었다. 관리자들도 더 이상 안전 문제를 예산이나 일정 핵계로 미루지 않았다.

매월 첫째 주 월요일마다 열리는 '안전의 날' 행사에서는 박성호의 사진이 추모 코너에 놓여 있었다. 그 아래에는 "안전은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1년 후, 태민은 성호의 1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미영은 많이 야위었지만 의연한 모습이었다. 지우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민준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팀장님, 감사합니다." 미영이 태민에게 말했다. "우리 성호가... 우리 성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주셔서."

"죄송합니다. 제가 더 일찍 행동했어야 했는데..." 태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에요. 이제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거잖아요. 우리 성호도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거예요."

태민은 지금도 매일 새벽 순찰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순찰은 단순한 점검이 아니라 사명감에 기반한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다짐한다. 오늘도 모든 사람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어느 날 새벽, 순찰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태민은 다시 한 번 3번 도크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밝은 LED 조명이 새벽 어둠을 밝히고 있었고, 스테인리스 난간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태민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성호 형, 이제 여기는 안전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

겨울 바닷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태민은 기억한다. 안전이란 단 한 번의 방심, 단 하나의 '나중에'로도 무너질 수 있는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안전을 지키는 것이 바로 자신 같은 사람들의 책임이자 사명이라는 것을.

태양조선소의 새벽은 이제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 성호의 희생이 만들어낸 새로운 안전 문화가 이곳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민은 안다. 진정한 안전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오늘도 새벽 순찰을 나선다.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이 소설은 국내에서 발생한 실제 뉴스와 사회적 이슈들에서 영감을 받아 AI의 도움을 받아 창작한 허구의 작품입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 기관명, 지명, 사건의 구체적 경위 등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것이며, 실존하는 인물이나 단체와는 일체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본 작품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문학적 시각으로 조명하고,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사회적 쟁점이나 개인의 견해는 작가 개인의 문학적 표현일 뿐, 특정 입장을 대변하거나 현실의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모든 독자들이 이 작품을 순수한 문학작품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라며, 혹시라도 실제 상황과 유사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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