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의 '안전하다는 착각'
1995년 2월 27일, 233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영국의 베어링스 은행이 하루 만에 무너졌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정부에 자금을 제공하고, 아르헨티나와 러시아의 국채를 인수하며 '여왕의 은행'이라 불리던 이 거대한 금 융제국의 몰락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 중심에 는 28세의 파생상품 트레이더 닉 리슨(Nick Leeson)이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금융 스캔들을 넘어선다. 이는 조직의 통제 시스템 실패, 개인의 심리적 함정, 그리고 위험을 은폐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어떻게 거대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교훈이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우리에게는 더 욱 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닉 리슨이 손실을 숨긴 심리와 현장 작업자가 안전수칙을 우회하는 심리 사이에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푸른 새벽 공기가 찬 빛을 띠던 1989년 어 느 날, 한 평범한 영국 청년이 낯선 도시의 은행 건물 앞에 섰다. 닉 리슨, 이제 막 스물두 살을 넘긴 그는 베어링 스 은행 직원 배지를 옷깃에 달았다. 200년 전통을 자랑하며 '여왕의 은행'이라 불리던 이 거대한 조직에서, 리 슨은 그저 톱니 하나였다. 리슨의 배경은 화려하지 않았다. 런던 외곽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겨우 마친 그는 대학 학위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숫자에 대한 직감과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베어링스 은행의 백오피스 (결제업무)에서 시작한 그는 점차 트레이딩 부서로 옮겨 갔다. 첫 출근부터 그는 눈에 띄었다. 동료들이 망설일 때 과 감히 전화기를 집어 들었고, 촘촘한 숫자 행 사이에서 기 회를 찾아냈다. 닛케이 지수 선물과 옵션 거래에서 작은 차익을 발견하면, 리슨은 주저하지 않고 포지션을 잡았다. 일본과 싱가포르 시장 간의 미세한 가격 차이를 이용 한 차익거래는 위험이 낮고 수익이 확실했다. 작은 차익 거래가 순식간에 이익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1992년까지 리슨의 거래 성과는 눈부셨다. 그는 베어 링스 은행 전체 수익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스타 트레 이더로 떠올랐다. 런던 본사는 그의 실적을 자랑스러워했고, 매년 거액의 보너스가 그의 계좌로 입금되었다. 동 묘들은 그를 부러워했고, 상사들은 그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그 누구도 젊은 그에게 치명적인 오점이 생 길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공 뒤에는 위험한 씨앗이 숨어 있었다. 리슨은 단순한 차익거래를 넘어서 점점 더 큰 포지션을 잡기 시작했다. 시장이 자신의 예상 대로 움직일 때의 짜릿함은 마약과 같았다. 그리고 더 중 요하게는, 그는 거래 업무와 결제 업무를 동시에 담당하 고 있었다. 이는 금융업계의 기본 원칙인 프런트 오피스와 백 오피스의 분리를 위반하는 것이었지만, 싱가포르 지점의 인력 부족을 이유로 묵인되었다. 이 치명적인 구 조적 결함이 훗날 거대한 재앙의 씨앗이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처음 손실이 생겼을 때, 리슨은 당황했다. 1992년 여름, 한 동료의 실수로 발생한 20,000파운드의 손실. 숫자 한 21 익숙함이 부른 침묵을 깨우다 줄이 붉게 물들자 심장이 내려앉았다. 지금까지의 완벽 한 실적에 오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상사에게 보고하 면 질책을 받을 것이고, 동료는 처벌을 받을 것이었다. 그날 밤, 리슨은 장부 앞에서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컴퓨터 시스템에 '88888'이라는 비밀 계좌를 만들었다. 중국에서 '8'은 행운의 숫자 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행운의 계좌'는 훗날 베어링스 은행의 무덤이 되었다.
리슨은 손실 금액을 이 계좌로 옮 겨 적었다. '내일 만회하면 돼.' 이 미세한 왜곡은 사무실 저편 형광등이 깜빡이는 것만큼 사소해 보였다. 처음 장부를 조작한 후, 리슨은 며칠간 불안해했다. 혹 시 발각되지는 않을까? 감사에서 드러나지는 않을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불안은 줄어들었다. 88888 계좌는 내부 시스템에서만 보이는 허상이었고, 런던 본 사로 전송되는 보고서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베어링스 은행의 복잡한 보고 체계와 지역 간 시차는 이런 조작을 숨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손실은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의 변동성 속에서 더 커져서 돌아왔다. 리슨은 다시 장부를 고쳤다. 두 번째 수정은 첫 번째보다 훨씬 쉽게 느껴졌다. 세 번째는 더욱 자연스러웠다. 숨길수록 마 음은 가벼워졌다. 그는 자신만의 평행 우주를 만들어가 고 있었다. 실제 거래 장부에는 손실이, 공식 보고서에는 이익이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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