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부르는 무감각

호세의 '안전하다는 착각'

by 호세

거의 매일 같은 시각, 공장 라인에는 변함없는 벨소리 가 울린다.

거대한 프레스 기계가 다음 공정을 삼키듯 철 판 위로 내려오기 직전 울려 퍼지는 경고음이다. 첫 배치를 받은 신규 직원들은 그 소리에 어김없이 놀라며 손을 멈춘다. 크고 낯선 쇳소리가 귀를 때릴 때마다 고개를 들 고 주변을 둘러보고, 기계에서 몇 걸음 물러나 안전거리를 확보한다. 그들의 눈에는 경계심이 뚜렷하고, 몸짓에 는 긴장이 배어 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그 들의 귀는 경고음을 백색잡음처럼 흘려보낸다. 이제 벨 소리는 작업 템포를 맞추는 메트로놈일 뿐이다. 그들은 기계가 내려앉는 순간에도 손을 멈추지 않는다. 익숙함 이 공포를 잠식했고, 경계심은 무뎌졌다.


처음에는 생생 했던 위험 인식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마침내 의식의 배 경으로 밀려나 버린다. 안전에 대한 무감각은 이렇게 자라난다. 조용히, 그러 나 확실하게. 나는 현장 안전담당자로 첫 공장 순회를 하던 날, 그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구리 원재료를 얇게 만들기 위한 기계에 구리가 깎이는 소리가 고막을 울리 고, 압출기에서 분출되는 연기로 공기가 떨렸지만, 작업 자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리듬을 타듯 움직였다. '경고는 제때 작동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듣지 않을까?' 이 물음 은 그 뒤로도 내 머릿속에서 쉼 없이 울렸다.


현대 제조업 현장에서 안전사고의 대부분은 기술적 결 함이나 시설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인적 요인, 특히 '익숙함으로 인한 무감각' 때문에 발생한다. 통계에 따르면, 산업 재해의 80% 이상이 작업자의 부주의나 안전수칙 미준수로 인해 일어난다. 여기서 '부주의'라는 표현은 단순히 개인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스템적으로 형성된 무감각, 조직적으로 용인된 관행, 그리고 일 상화 된 위험에 대한 집단적 망각을 가리킨다. 안전 표지판이 눈앞에 붙어 있어도, 표시등이 깜빡여 도, 작업자들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매번 그래 왔 고, 지난달에도 사고는 없었고, 오늘도 괜찮을 것이라고 믿는다. 익숙함이 주는 안도감은 그렇게 달콤하다. 하지 만 이 안도감 뒤에는 위험한 착각이 숨어 있다. 과거의 안전이 미래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착각 말이다. 인간의 뇌는 효율성을 추구한다. 반복되는 자극에 대해서는 점차 반응 강도를 줄이고, 마침내 무시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습관화(habituation)'라고 부른다.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초기에는 모든 자극이 예 민하게 감지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극들은 배경으로 밀려나고, 의식적 주의에서 벗어난다. 이는 생존에 유리한 진화적 적응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자극에 항상 같은 수준으로 반응한다면, 정신적 에너지가 금세 고갈 될 것이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는 이 진화적 적응이 역 설 적으로 생존을 위협한다. 경고음, 안전표지, 보호장비 착용 신호 등은 반복될수록 그 효과가 줄어든다.


작업자 들은 의식적으로 안전수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뇌 가 그 신호들을 자동으로 필터링하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이런 실험이 있었다. 평소와 다른 새로운 경 고음을 설치했더니, 작업자들이 다시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주 후에는 그 새로운 소리마저 배경음으로 변해버렸다. 이는 단순히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 메커니즘 자체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 호세의 '안전하다는 착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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