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배움으로 바꾸는 안전 문화 혁신이야기

호세의 '안전하다는 착각'

by 호세

새벽 두 시를 조금 넘겼을까. 야간조 근무가 한창이던 신선라인에서 금속이 비명을 질렀다. 고속으로 회전하던 드럼이 갑자기 멈추며 끼익— 하고 스파크를 튕겼다. 불 꽃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생산라인 전체가 멈춰 섰다. 비상등이 붉게 번쩍이고, 작업자들은 얼음처럼 굳어 섰 다.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었다. 하지만 멈춘 기계보다 사 람들의 마음이 먼저 식어 갔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또 사고야…." 그 목소리에는 체념과 익숙함이 묻어 있었다.


이런 일은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패턴은 정해져 있었다. 현장 책임 자가 호출되고, 사고 조사가 시작되며, 누군가는 문책을 받았다. 교육장에서는 두툼한 재발 방지 서약서를 작성 하고 결재를 받았다. 하지만 서약서는 늘 서랍 안에서 먼 지만 쌓여 갔고, 같은 유형의 사고는 다른 이름과 장소로되돌아왔다. 그날 새벽의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9시, 비상 회 의가 소집됐다. 생산·안전팀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였고, 현장 관리자는 이미 예측 가능한 보고서를 준비했다. "작 업자의 부주의로 인한 설비 이상"이라는 결론이 기다리 고 있었다. 몇 차례 형식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가고, 책임 소재가 정리된 후 회의는 30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회의실 문이 열리며 새로 부 임한 생산 총괄 임원 김본부장이 들어왔다. 그는 책상 위 에 놓인 보고서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참석자들을 돌아 보며 조용히 물었다. "여러분, 이 보고서에서 우리가 실제로 배운 것은 무엇 인가요?"


몇 주 뒤, 김본부장은 첫 번째 전사 안전 회의를 소집했 다. 회의실 한복판에는 지난 3년간의 사고 보고서와 조사 표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두께만 해도 30센티미터는 족 히 됐다. 김본부장은 그 더미에서 A4 한 장을 무작위로 집어 올려 참석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보고서 첫 줄에는 어김없이 '작업자의 부주의'라는 네 글자가 찍혀 있었다. 두 번째 장을 넘겨도, 세 번째 장을 넘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러분, 부주의란 대체 무엇인가요? 우리는 이 네 글 자로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 건가요?" 막연한 침묵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누군가는 시선 을 바닥에 떨궜고, 누군가는 연신 볼펜을 돌렸다. 오랜 침 묵 끝에 한 과장이 입을 열었다. "작업자가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뜻 아 닙니까?" 김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왜 안전 수칙 을 지키지 않았을까요? 그 작업자는 원래 부주의한 사람 인가요? 아니면 그날따라 특별히 부주의했던 건가요?" 질문은 계속됐다. "사람이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렇게 놀라운가요? 왜 우리는 같은 프레임에 갇혀 개인에 게만 책임을 돌리고 있을까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 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날 회의는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어 두 시간 반 동 안 이어졌다. 김본부장은 '부주의'라는 단어로 가려진 진 짜 원인들을 하나씩 해부했다. 새벽 사고의 경우를 다시 들여다보니, 숨겨진 요인들이 줄줄이 드러났다. 교대 간 인수인계가 허술했던 점이 첫 번째였다. 전날 저녁 야간조로 넘어오면서 장비 이상 징후가 제대로 전 달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장비 유지보수 일정이 생산 목 표에 밀려 계속 미뤄져 온 점이었다. 해당 드럼은 이미 권 장 교체 주기를 두 달이나 넘긴 상태였다. 세 번째는 야간 조의 숙련도 문제였다. 경력 3년 미만의 신입 작업자가 70%를 차지하는데도, 교육 시간은 생산성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계속 단축되어 왔다. 김본부장은 화이트보드에 나가서 세 개의 문장을 적었다. "실패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정은 시스템을 바꾼다." "시스템은 다시 사람을 보호한다."

- 호세의 '안전하다는 착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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