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바꿔야 답이 보인다.

by 호세

해가 바뀌면 어김없이 안전관리 계획서를 작성한다. 표지에는 올해 연도가 선명하게 찍혀 있고, 속을 펼치면 익숙한 문장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교육 시간을 늘리겠다. 캠페인을 강화하겠다. 현장 방문 횟수를 높이겠다. 회의를 더 자주 열겠다. 안전 점검을 빠짐없이 하겠다. 작업자 의견을 더 많이 듣겠다.

매년 빠지지 않는 약속들이다. 작년에도 있었고 재작년에도 있었다. 아마 내년에도 비슷한 문장들이 자리를 채울 것이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다 좋은 이야기다. 모두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사고는 멈추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또 다친 사람이 나온다.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린다. 사고 보고서가 올라온다. 대책 회의가 열린다. 그러면 똑같은 말이 회의실을 맴돈다. "이렇게 많이 했는데, 왜 또 사고가 나는 거지?" 이 물음은 진심이다. 억울하기도 하다. 분명히 노력했다. 시간도 쏟았고 돈도 썼다. 사람들도 고생했다. 그런데 왜. 이 질문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 하나 숨어 있다.


안전은 많이 하면 좋아진다는 생각이다. 여러 가지 활동을 이것저것 쌓아 올리면 전체 수준이 올라간다. 그 힘이 모여서 사고를 막아준다. 평균 점수가 높아지면 위험도 낮아진다. 많이 하면 할수록 안전해진다. 이 믿음은 꽤 그럴듯하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그랬다. 여러 과목을 골고루 열심히 하면 전체 성적이 올랐다. 수학을 잘하면 수학 점수가 오르고, 영어를 열심히 하면 영어 점수가 오른다. 과목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다. 평균도 따라서 올랐다.

안전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열심히 하면 교육 점수가 오르고, 점검을 열심히 하면 점검 점수가 오르고, 캠페인을 열심히 하면 캠페인 점수가 오른다. 이것들이 모이면 전체 안전 점수도 오를 거라고. 하지만 현장은 그 기대를 자꾸 배반한다. 안전은 시험 점수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평균이 높아졌다고 해서 사고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약한 지점에서, 가장 허술한 틈에서 사고가 터진다.


옛날 독일에 유스투스 폰 리비히라는 화학자가 있었다. 180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화학을 연구하면서 농업에도 관심을 가졌다.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땅에서 무엇을 빨아들이는지, 어떤 조건에서 잘 크고 어떤 조건에서 시들어가는지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작물이 얼마나 크게 자라는지는 가장 모자란 영양소가 정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땅에 질소가 넉넉하게 있다고 하자. 칼륨도 충분하다. 물도 잘 주고 있다. 햇빛도 좋다. 그런데 딱 하나, 인이 부족하다. 그러면 식물은 거기서 멈춘다.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인이 모자란 만큼만 자란다. 반대로 인을 왕창 넣어줘도 마그네슘이 부족하면 그만큼밖에 못 큰다. 마그네슘을 채워줘도 칼슘이 모자라면 또 거기서 멈춘다.


결국 식물의 성장은 가장 부족한 한 가지에 의해 제한된다. 다른 모든 것이 넘쳐나도 단 하나가 모자라면 전체가 그 수준에 묶인다. 이것을 사람들은 리비히의 최소량 법칙이라고 부른다. 리비히는 이걸 설명하기 위해 나무통 그림을 그렸다. 통을 이루는 널빤지들의 높이가 제각각이다. 어떤 널빤지는 높고 어떤 널빤지는 낮다. 이 통에 물을 부으면 어떻게 될까. 물은 가장 낮은 널빤지 높이까지만 찬다. 다른 널빤지가 아무리 높아도 소용없다. 낮은 곳으로 물이 새어 나가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원리를 안전에 가져오면 문장이 아주 짧아진다. 회사의 안전 수준은 여러 요소의 평균이 아니다. 가장 취약한 한 가지가 전체를 결정한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전반적으로는 괜찮습니다." 교육도 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했고 이번 달에도 한다. 보호구도 나눠주고 있다. 안전모, 안전화, 보안경, 장갑. 필요한 건 다 지급한다. 회의도 빠지지 않는다. 매주 한 번, 많으면 두 번. 점검도 돌린다. 체크리스트도 채운다. 사진도 찍는다. 보고서만 보면 그럴듯하다. 숫자도 나쁘지 않다. 그래프도 올라가고 있다. 작년보다 나아졌다는 문구가 붙는다.


사고는 전반에서 나오지 않는다. 예외에서 나온다. 한 구역에서 시작된다. 한 공정에서 터진다. 한 팀의 한 번 작업에서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 한 곳을 평균이 막아주지 못한다. 현장 안전은 평균 점수로 움직이지 않는다. 열 번 잘하다가 한 번 실수하면 그 한 번이 사고가 된다. 한 달 내내 규정을 잘 지키던 사람도 단 하루, 단 한순간에 빈틈을 보이면 사고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안전은 비선형이다. 쌓아 올린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 평균이 아무리 높아도 바닥이 뚫리면 끝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공장이 있다. 이 공장은 안전교육을 충분히 하고 있다. 매달 정해진 시간만큼 교육을 진행한다. 출석부도 꼼꼼하게 관리한다. 교육 자료도 새로 만든다. 강사도 초빙한다. 보호구도 빠짐없이 지급된다. 신청하면 바로 나온다. 사이즈도 맞춰준다. 창고에 재고도 넉넉히 쌓아둔다. 안전 회의도 활발하게 돌아간다. 현장 의견을 듣는다. 개선 사항을 기록한다. 회의록을 공유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훌륭하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 그런데 작업허가 제도가 슬그머니 형식으로 변해 있다면 어떨까. 고위험 작업을 할 때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위험성을 검토하고, 안전 조치를 확인하고, 책임자 승인을 받고, 그다음에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게 원래 절차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서류 한 장, 서명 몇 개로 그냥 통과된다. 위험성 검토는 복사 붙여 넣기다. 안전 조치 확인은 눈으로 훑고 끝이다. 책임자는 서명만 하고 현장은 보지 않는다. 절차는 있지만 내용이 없다. 껍데기만 남았다.


전기 작업에서 꼭 지켜야 하는 잠금 절차가 있다. 기계를 끄고, 전원을 차단하고, 자물쇠를 채우고, 표지판을 붙이고, 그다음에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흔히 LOTO라고 부른다. 생명을 지키는 절차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어떨까. "급할 때는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면 어떨까. 바쁘니까, 귀찮으니까, 시간이 없으니까, 이번 한 번만. 자물쇠 안 채우고 작업한다. 표지판 안 붙이고 들어간다. 한두 번은 괜찮았다. 세 번도 괜찮았다. 그래서 계속한다.

이 상태에서 교육 시간을 한 시간 더 늘린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질까. 캠페인 포스터를 한 장 더 붙인다고 해서 사고가 멈출까. 현장 방문을 한 번 더 간다고 해서 그 틈이 메워질까. 답은 이미 알고 있다. 가장 약한 고리가 그대로인데 다른 고리를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도, 사슬은 약한 고리에서 끊어진다. 그래서 안전을 돌아볼 때 물어야 할 것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했는가"가 아니다. "어디가 가장 약한 가"다.


많이 한 것을 세는 대신, 부족한 것을 찾아야 한다. 쌓아 올린 것을 자랑하는 대신, 무너질 곳을 살펴야 한다. 취약점은 보고서보다 현장에서 더 잘 보인다. 문서에는 절차가 깔끔하게 적혀 있다. 흐름도가 그려져 있고, 책임자 이름이 쓰여 있고, 점검 주기가 표로 정리되어 있다. 보기에는 완벽하다. 하지만 작업의 흐름 속에는 날것의 현실이 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 봐야 한다. 어떤 순간에 절차대로 하고, 어떤 순간에 대충 넘어가는지 살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멈추고, 어떤 상황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이는지 알아야 한다.


약점은 거기서 드러난다. 서류에 적힌 글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움직이는 몸짓에서 진실이 보인다. 경영진과 관리자가 현장을 돈다. 좋은 일이다. 중요한 일이다. 현장을 직접 보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다. 하지만 확인만 하고 돌아오면 절반밖에 못 본 것이다. 규정이 지켜지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보호구를 착용했는지, 안전 표지판이 붙어 있는지, 작업 구역이 정리되어 있는지. 이런 것들을 보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 작업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 질문을 던지면 작업자의 눈빛이 달라진다. 자기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그 일을 매일 하는 사람이다. 어디서 위험을 느끼는지, 어떤 순간에 긴장하는지, 그 사람이 안다. "꼭 지켜야 할 규정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지키기 어려운가요?"이 질문을 던지면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규정이 있다는 건 모두 안다. 지켜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안 지켜질까. 무엇이 막고 있을까. 그 벽을 알아야 부술 수 있다.


이 질문들은 누군가를 다그치려는 게 아니다. 잘못을 찾아내서 혼내려는 게 아니다. 안전관리 체계가 현장에서 진짜 작동하는지 점검하려는 것이다. 종이 위의 계획이 땅 위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비슷한 대답들이 모인다. "시간이 부족해서요." “납기가 촉박하다.” “오늘 안에 끝내야 한다.” “절차대로 하면 시간이 모자란다.” 그래서 줄인다. 생략한다. 건너뛴다.

"사람이 모자라서요." 원래 세 명이 해야 할 일을 두 명이 한다. 한 명이 아프면 나머지가 나눠서 한다. 일은 그대로인데 손이 부족하다. 그래서 서두른다. 대충 한다. 눈감는다.

"장비가 안 맞아서요." 필요한 공구가 없다. 있어도 낡았다. 맞는 사이즈가 없다. 그래서 다른 걸로 대신한다. 임시로 쓴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승인받는 절차가 너무 복잡해서요." 허가를 받으려면 서류가 많다. 사인받을 사람이 많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급한 작업인데 허가가 안 나온다. 그래서 먼저 시작한다. 나중에 서류를 맞춘다. 순서가 뒤바뀐다.

"현장에서는 결정할 권한이 없어서요." 문제가 보여도 고칠 수가 없다. 보고하고 기다려야 한다. 결정은 위에서 내린다. 그 사이에 작업은 계속된다. 위험한 상태로 돌아간다.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취약점은 대개 한 사람의 태도 문제가 아니다.

운영 조건과 연결되어 있다. 일정이 너무 빠듯하거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장비가 낡았거나, 절차가 현실과 맞지 않거나, 권한이 현장에 없거나. 그래서 우회가 생긴다. 원래 방법대로 하면 시간이 안 되니까 다른 길을 찾는다. 규정대로 하면 일이 안 돌아가니까 편법을 쓴다. 절차대로 하면 손해를 보니까 건너뛴다. 그 우회 경로가 습관이 된다.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열 번 한다. 아무 일도 안 생긴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우회가 사고의 씨앗이 된다. 사고가 나면 조사를 한다. 원인을 찾는다. 보고서를 쓴다. 그런데 조사 결과를 보면 비슷한 결론이 많다. "작업자 부주의." "안전 수칙 미준수." "개인 보호구 미착용." 틀린 말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사고 직전에 그 사람이 뭔가를 안 했거나 잘못했거나 빠뜨렸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끝일까. 왜 그 사람은 그 순간에 그렇게 했을까. 그 선택을 하게 만든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 우회가 가능했을까. 왜 아무도 막지 못했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면 다른 풍경이 보인다.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인력이 부족했다. 장비가 없었다. 절차가 현실과 맞지 않았다. 지키면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안 지켜도 아무도 모르는 환경이었다.


개인의 실수 뒤에는 조직의 조건이 있다. 한 사람의 잘못 뒤에는 시스템의 빈틈이 있다. 그 빈틈을 메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름만 바뀌고 사고는 계속된다. 리비히의 법칙을 떠올리면, 안전을 위한 질문이 점점 선명해진다.

첫째, 우리 사업장의 안전 수준을 막고 있는 가장 취약한 부분은 무엇인가. 교육이 문제일까, 설비가 문제일까, 절차가 문제일까, 인력이 문제일까, 문화가 문제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낮은 곳은 어디인가. 물이 새는 곳은 어디인가.

둘째, 그 장치는 현장에서 실제로 돌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서류 속에만 있는가. 문서에 적힌 절차와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같은가. 규정이 지켜지고 있는가. 아니면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우회로가 있는가.

셋째, 그 부분을 끌어올리려면 뭐가 필요한가. 교육을 더 해야 하는가. 설비를 보완해야 하는가. 권한을 현장에 줘야 하는가. 인력을 늘려야 하는가. 아니면 일정을 다시 짜고 계약 구조를 손봐야 하는가. 답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돈이 들 수 있다.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누군가는 불편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을 피하면 답도 없다. 질문이 바뀌면 답도 바뀐다. 시선이 바뀌면 풍경도 바뀐다.


안전활동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열심히 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 열심히 했을 것이다. 밤늦게까지 회의했을 것이다. 주말에도 현장을 돌았을 것이다. 보고서를 수십 장 썼을 것이다. 교육 자료를 새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열심히 한 것과 제대로 한 것은 다르다. 많이 한 것과 필요한 것을 한 것은 다르다. 평균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았는지, 바닥을 올리는 데 힘을 쏟았는지가 중요하다.

"가장 약한 부분을 고쳤습니다." 이 말이 나와야 한다. “어디가 문제였는지 알았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바꿨습니다.” 이 말이 나올 때 비로소 안전은 한 걸음 나아간다. 한 가지를 고친다고 다 좋아지지는 않는다. 물론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가장 약한 부분을 고쳤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나를 메우면 다른 곳이 드러난다. 그다음으로 약한 곳이 새로운 바닥이 된다. 끝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게 안전관리다.

완벽한 상태란 없다.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건 계속 바닥을 올리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곳을 찾아서 조금씩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면 전체가 조금씩 올라간다. 반대로 확실한 것도 있다. 치명적인 약점을 그대로 둔 채 다른 것을 아무리 쌓아 올려도, 안전은 그 지점에서 멈춘다. 교육을 백 시간 해도, 캠페인을 열 개 해도, 회의를 천 번 해도, LOTO 절차가 무너져 있으면 전기 사고는 막을 수 없다. 작업허가가 형식뿐이면 고위험 작업에서 사고는 반복된다. 평균 점수가 올라도 바닥이 그대로면 소용없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새어 나간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가장 약한 곳을 어떻게 찾습니까?" 좋은 질문이다.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일단 숫자만 보면 안 된다. 보고서에 적힌 숫자는 대개 잘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교육 이수율, 점검 완료율, 회의 참석율. 다 높다. 다 좋아 보인다. 하지만 숫자가 높다고 해서 그 부분이 튼튼하다는 보장은 없다. 교육을 많이 했다고 해서 교육이 잘 되고 있는 건 아니다. 점검을 많이 했다고 해서 점검이 제대로 된 건 아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익명으로 물어봐야 한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이 어렵습니까, 무엇이 불편합니까, 무엇을 지키기 힘듭니까, 무엇이 위험해 보입니까. 사고 보고서를 다시 봐야 한다. 아차 사고 기록을 살펴봐야 한다.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작은 징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징후들이 어느 지점에 몰려 있는지 봐야 한다. 현장을 직접 돌면서 눈으로 봐야 한다. 서류와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확인해야 한다. 절차대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우회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 모든 걸 종합하면 윤곽이 잡힌다. 어디가 가장 낮은지, 어디가 가장 위태로운지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약한 곳을 찾았다고 하자. 그다음이 더 어렵다. 그 약점은 대개 불편한 진실과 연결되어 있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나왔다. 그러면 사람을 뽑아야 한다. 돈이 든다. 예산이 없다. 승인이 안 난다. 일정이 촉박하다고 나왔다. 그러면 일정을 늘려야 한다. 납기가 밀린다. 고객이 싫어한다. 영업이 반대한다. 권한이 없다고 나왔다. 그러면 권한을 줘야 한다. 책임이 따른다. 위험 부담이 생긴다. 누구도 안 받으려 한다. 설비가 낡았다고 나왔다. 그러면 바꿔야 한다. 투자가 필요하다. 회수 기간이 길다. 경영진이 망설인다.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눈을 감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현실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대신 다른 것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교육 한 시간 더 하고, 캠페인 하나 더 붙이고, 보고서 한 장 더 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마주하는 것이다. 불편하더라도 말하는 것이다. 데이터를 모으고, 근거를 만들고, 설득하고, 때로는 싸우는 것이다. 바닥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둘 중에 뭐가 더 어려울까. 둘 중에 뭐가 진짜 안전을 위한 것일까. 안전관리자는 이 사이에서 서 있다. 경영진은 숫자를 원한다. 성과를 원한다. 비용 대비 효과를 원한다. 현장은 현실을 말한다. 어렵다고 말한다.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사이에서 안전관리자는 통역을 해야 한다.


현장의 언어를 경영의 언어로 바꿔야 한다. 불편한 진실을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위험을 숫자로 보여주고, 투자의 필요성을 논리로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다.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안전관리자의 자리다. 평균을 보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닥을 가리키는 사람. 잘하고 있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것을 말하는 사람. 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


결국 안전은 많이 하는 일이 아니다. 부족한 것을 정확히 보는 일이다. 눈을 돌리고 싶은 곳을 똑바로 보는 일이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일이다. 고치기 어려운 것을 고치려고 시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외면하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끌어올리는 일이다. 화려한 숫자 대신,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한 곳을 찾아 고치는 것. 열 개를 잘하는 것보다, 하나의 치명적인 구멍을 메우는 것. 그게 사고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가장 정직한 방법이기도 하다.


다시 리비히의 나무통을 떠올려 본다. 통을 이루는 널빤지들이 제 각각이다. 어떤 건 높고 어떤 건 낮다. 물을 가득 채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높은 널빤지를 더 높이 올리는 게 아니다. 가장 낮은 널빤지를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 물이 더 찬다. 그래야 새는 곳이 줄어든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게 아니다. 못하는 것을 찾아서 끌어올려야 한다. 강한 곳에 힘을 쏟는 게 아니다. 약한 곳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전체가 올라간다. 그래야 사고가 줄어든다. 리비히는 식물을 보며 그걸 알았다. 우리는 현장을 보며 그걸 배운다. 해마다 돌아오는 안전관리 계획서를 펼칠 때, 이 질문을 먼저 던져보면 어떨까.


"우리의 가장 약한 곳은 어디인가." 그 질문에서 시작하면 계획이 달라진다. 초점이 달라진다. 힘을 쏟는 곳이 달라진다. 많이 하는 것보다 정확히 하는 것이 낫다. 평균을 높이는 것보다 바닥을 올리는 것이 낫다. 열심히 했다는 말보다 제대로 고쳤다는 말이 낫다. 그게 사고를 줄이는 길이다. 그게 사람을 지키는 길이다. 가장 낮은 곳을 올리는 것. 거기서부터 안전은 시작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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