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공유하기로 했는가

by 호세

요즘 내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는 질문이 하나 있다.

'어떻게 하면 AI와 내 삶을 함께 굴러가게 만들 수 있을까.'

미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건 아주 현실적인, 바로 오늘 내 책상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뉴스에서 떠드는 인공지능의 미래가 아니라, 당장 내일 아침 출근해서 마주할 보고서와 이메일과 회의 자료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요즘 일을 할 때 웬만하면 무조건 AI를 끼워 넣어 본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다들 ChatGPT 이야기를 하니까 나도 한번 써 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이게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잘 쓰면 진짜로 일이 달라지더라. 못 쓰면 시간만 날리더라.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회사에서는 사내 AI 사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퀄리티는 아쉬울 때가 많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AI는 보안 문제 때문에 여러 제약이 있고, 최신 모델을 바로 적용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꿔 보기로 했다. AI를 모든 걸 다 아는 전지전능한 두뇌로 보는 대신, 꽤 유능하지만 아직은 내 손이 좀 가는 개인 하청업체쯤으로 여기기로 한 것이다.

이 비유가 꽤 잘 맞았다. 하청업체에 일을 맡길 때를 생각해 보면 된다. 아무리 실력 좋은 업체라도 내가 뭘 원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엉뚱한 결과물이 나온다. 반대로 요구 사항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중간중간 검토하고, 피드백을 주면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AI도 똑같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쓰느냐, 어떤 맥락을 제공하느냐, 결과물을 어떻게 다듬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 관점이 생기고 나서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내가 하는 일을 아주 잘게 쪼개 보았다. 직무 전체를 뭉뚱그려 보는 게 아니라, 과업 하나하나를 낱개로 펼쳐놓고 살펴보았다.

예를 들어 나는 안전관리 책임자다. 안전관리 책임자의 직무를 통째로 보면 너무 크고 막연하다. 하지만 이걸 과업 단위로 쪼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위험성 평가 보고서 초안 작성하기. 안전 교육 자료 만들기. 사고 사례 분석하기. 해외 본사에 보낼 영문 보고서 번역하기. 현장 점검 체크리스트 정리하기. 월간 안전 통계 데이터 시각화하기. 협력업체에 보낼 안전 가이드라인 문서 작성하기. 이렇게 쪼개 놓고 보니 각각의 과업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이 과업들을 하나씩 따져보았다. 이건 인간이 직접 해야 더 좋은 일인지, 아니면 인공지능에게 맡길수록 내가 더 나아지는 일인지.


생각보다 답은 꽤 명확했다. 판단이 필요한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었다.

예를 들어 현장을 돌면서 작업자의 표정을 읽고, 뭔가 불안해 보이는 기색을 감지하고, "오늘 컨디션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는 일. 이건 AI가 대신할 수 없다. 회의실에서 여러 부서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중간에서 조율하는 일. 이것도 AI가 대신할 수 없다. 사고가 났을 때 현장에 달려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누구를 먼저 대피시킬지, 어떤 조치를 취할지 순간적으로 결정하는 일. 이건 절대로 AI에게 맡길 수 없다.

맥락을 읽어야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현장 반장이 "별일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게 진짜 별일 없다는 건지 아니면 뭔가 숨기고 있는 건지는 그 사람의 눈빛과 목소리 톤과 평소 행동 패턴을 알아야 판단할 수 있다. 이런 건 AI가 읽어낼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일도 인간의 영역이다. 협력업체 사장님과 신뢰를 쌓는 일, 젊은 작업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 선임 기술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안전 수칙을 지키게 하는 일. 이런 건 관계의 결이 필요한 일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이 결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반대로 초안을 쓰는 일, 번역하는 일, 자료를 정리하는 일,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일은 AI를 쓰는 순간 속도와 완성도가 동시에 올라갔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예전에는 위험성 평가 보고서 초안을 쓰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문서로 옮기는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뭐부터 써야 할지 막막해서 빈 화면만 바라보는 시간,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서 고치고 또 고치는 시간, 빠뜨린 항목이 없나 체크하는 시간. 이런 것들이 쌓여서 반나절이 됐다.

지금은 다르다. AI에게 먼저 큰 틀을 잡아 달라고 한다. "케이블 제조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요 위험 요소를 KOSHA 가이드라인 기준으로 정리해 줘"라고 요청하면 AI가 기본 골격을 만들어 준다. 물론 이 초안을 그대로 쓰지는 않는다. 우리 공장의 특수한 상황에 맞게 수정하고, 최근에 있었던 아차사고 사례를 추가하고, 현장 작업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한다. 하지만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과 초안에서 시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반나절이 걸리던 일이 두 시간으로 줄었다.


우리 회사는 본사가 프랑스에 있다. 그래서 영문 보고서를 자주 써야 한다. 예전에는 한글로 먼저 쓰고, 그걸 영어로 옮기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은 AI에게 먼저 번역을 맡긴다. 그런데 그냥 번역만 시키지는 않는다. "이 문서는 프랑스 본사 임원진이 읽을 거야. 기술적인 내용이지만 너무 딱딱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전문성은 유지해 줘. 영국식 영어보다는 미국식 영어로 써 줘"라고 구체적인 맥락을 준다. 그러면 결과물의 퀄리티가 확 달라진다. 물론 최종 검토는 내가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끙끙대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편해졌다.

자료 정리도 마찬가지다. 한 달 동안 쌓인 안전 점검 데이터를 정리해서 월간 보고서를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예전에는 엑셀 파일을 열어서 일일이 분류하고, 그래프를 만들고,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NotebookLM에 데이터를 업로드하고 "지난 한 달간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위험 유형 세 가지를 찾아 줘. 그리고 전월 대비 변화 추이도 분석해 줘"라고 요청한다. AI가 1차 분석을 해 주면 나는 그 위에서 해석을 더하고, 맥락을 붙이고, 개선 방안을 제안한다. 데이터를 정리하는 노동에서 해방되니까, 정작 중요한 해석과 판단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


여기서 깨달은 게 있다. 중요한 건 내 직무에 AI를 억지로 붙이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수행하는 과업 하나하나를 AI와 어떻게 결합할지 설계하는 일이 핵심이라는 것. 직무가 아니라 과업이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안전관리 업무에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으면 답이 막연해진다. 안전관리라는 직무는 너무 넓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성 평가 보고서 초안 작성에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으면 답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과업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AI를 쓰고 싶으면 먼저 자기 일을 쪼개 보라고. 가장 작은 단위까지 쪼개 보라고. 그리고 각각의 조각을 들여다보면서 물어보라고. 이건 내가 직접 해야 더 좋은 일인가, 아니면 AI에게 맡기면 내가 더 나아지는 일인가.


나는 GPT 하나만 쓰지 않는다. GPT, 제미나이, 젠스파크, Claude를 동시에 구독하고 있다. 사진 작업에는 나노바나나를 쓰고, 영상에는 FLOW를 쓴다. 웹앱 작업에는 Google AI Studio를 열고, 자료 분석에는 NotebookLM을 돌린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거 돈 낭비 아니에요? 하나만 제대로 쓰면 되지 왜 그렇게 여러 개를 구독해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써 보니까 알겠더라. 각각의 AI가 잘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걸.

GPT는 글쓰기에 강하다. 특히 한국어 문장의 결을 살리는 데 탁월하다.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쓰거나, 딱딱한 문서를 부드럽게 다듬을 때 GPT를 쓴다. 제미나이는 최신 정보를 찾아오는 데 유용하다. 구글 검색과 연동되어 있어서 최근 발표된 안전 규정이나 해외 사례를 조사할 때 제미나이를 쓴다. 젠스파크는 PPT 만들기에 특화되어 있다. 내 자료를 업로드하고 "이 내용으로 10장짜리 발표 자료 만들어 줘"라고 하면, 정말로 발표 자료가 나온다. 디자인까지 어느 정도 신경 써서. 처음 이걸 봤을 때 진심으로 탄식이 나왔다.

'아, 이건 혼자 알기엔 너무 아깝다.'


내가 안전 교육 자료를 만들 때 겪었던 일을 예로 들어 보겠다. 신규 입사자를 위한 안전 교육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예전 같으면 파워포인트를 열고, 빈 슬라이드를 앞에 두고, 뭐부터 넣을지 고민하면서 시작했을 것이다.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편도 아니어서, 템플릿을 찾아 헤매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이번에는 다르게 했다. 먼저 GPT에게 신규 입사자 안전 교육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을 정리해 달라고 했다. AI가 목차와 핵심 포인트를 뽑아 줬다. 그다음 NotebookLM에 우리 회사의 기존 안전 교육 자료와 최근 사고 사례를 업로드하고, 신규 입사자가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을 분석해 달라고 했다. AI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사이트를 뽑아 줬다. 마지막으로 이 내용을 젠스파크에 넣고 발표 자료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10분 만에 15장짜리 교육 자료 초안이 나왔다.

물론 이 초안을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우리 현장 사진으로 바꾸고, 어색한 문장을 다듬고, 실제 사례를 더 생생하게 추가했다. 하지만 전체 작업 시간이 예전의 3분의 1로 줄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줄어든 시간 덕분에 내용의 질을 높이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AI를 하이브리드로 엮어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을 때, 그 가치는 구독료를 훌쩍 넘는다. 월 몇만 원의 구독료로 몇 시간의 시간을 벌고, 그 시간에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건 투자지 낭비가 아니다.


나는 이 탄식을 나 혼자만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수준이 고작 3 정도라고 치자. 그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그 사람의 경험과 섞이면, 그 수준은 어느새 100이 될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지식은 혼자 쥐고 있으면 말라 버리지만, 나누는 순간 물을 만난 씨앗처럼 자라난다.

내가 AI로 보고서 작성 시간을 줄인 노하우를 후배에게 알려줬다고 하자. 그 후배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 노하우를 응용한다. 예를 들어 협력업체 관리에 적용한다든가, 고객 클레임 대응에 활용한다든가. 그러면 후배가 발견한 새로운 활용법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이렇게 지식은 순환하면서 점점 커진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내서 내가 실제 업무에 적용하고 있는 AI 사례들을 후배들 앞에서 공유하곤 한다. 점심시간을 활용하기도 하고, 업무가 한가한 금요일 오후를 잡기도 한다. 우리 회사가 대기업이 아니다 보니 이런 교육이 따로 있지 않다. AI 활용 교육 프로그램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나선다.

누군가는 잘난 척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설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바쁜데 뭘 또 가르치겠다고 나서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의도는 아주 단순하다. 내가 조금 편해진 만큼, 누군가의 일도 조금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 그게 전부다.

AI 활용법을 나누는 일은 결국 일을 덜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다. 반복 작업에 지친 상태에서 실수가 나온다. 야근에 시달리면서 집중력이 떨어진다. AI가 반복 작업을 대신해 주면 그만큼 사람은 덜 지친다. 덜 지친 사람은 덜 실수한다. 이건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고, 실수를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보고서 쓰느라 밤을 새우던 후배가 AI 덕분에 제시간에 퇴근하게 됐다면, 그 후배의 내일은 더 안전해진다. 피곤한 몸으로 출근해서 기계를 다루는 것과 충분히 쉬고 출근해서 기계를 다루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

그 작은 변화들이 하나둘 쌓이면, 조직의 공기는 분명히 달라진다.


나는 안전이 결코 기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 알고 있는 안전 정보란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이게 무슨 말인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어떤 공장에서 특정 기계의 특정 부위가 위험하다는 걸 베테랑 작업자 한 명만 알고 있다고 치자. 그 작업자는 수십 년 경력 동안 체득한 감으로 그 부위를 조심한다. 하지만 그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내가 알아서 조심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그 베테랑이 휴가를 간다. 대신 그 기계를 맡은 신입이 다친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위험, 내가 배운 실수, 내가 겪었던 아찔한 순간들을 숨기는 순간, 그 정보는 나의 경쟁력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고 가능성이 된다.


우리 공장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몇 년 전, 케이블 권취 작업 중에 아차사고가 있었다. 드럼이 갑자기 회전하면서 작업자 손이 끼일 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 작업자는 순간적으로 손을 뺐고,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 사건은 조용히 묻혔을 수도 있다. "뭐, 다친 것도 아닌데 굳이 보고해서 일 키울 필요 있나" 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사례를 전 공장에 공유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는지, 비슷한 작업을 하는 다른 라인에서는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정리해서 교육 자료로 만들었다.

공유하고 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른 라인에서도 비슷한 위험 요소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저희 쪽은 이런 상황이 있었어요", "저희는 이렇게 해서 예방하고 있어요"라는 정보가 모이기 시작했다. 하나의 아차사고 공유가 공장 전체의 위험 지도를 다시 그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안전은 독점할수록 약해지고, 공유할수록 강해진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나눌 때, 내 동료는 오늘도 무사히 퇴근할 수 있다. 그 동료의 가족은 안심하며 저녁 식탁에 앉을 수 있다. 나는 그 장면을 지키기 위해 이 일을 한다. 아침에 출근할 때의 그 얼굴 그대로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나는 그 평범한 장면이 기적처럼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안전관리자가 뭘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해요? 그냥 규정 지키고 점검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규정을 지키고 점검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안전관리자는 그냥 체크리스트를 들고 다니는 사람에 불과하다. 나는 안전관리자의 진짜 역할이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위험을 보이게 만드는 것. 말하지 못하는 불안을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것. 혼자 알고 있던 정보를 모두가 알게 만드는 것. 그게 안전관리자가 해야 할 일이다.


조직을 보면 곧잘 이런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거야." "아직 공유하기엔 이르지 않아." "이 정도는 굳이 말 안 해도 되잖아."

이런 말들이 하나둘 쌓이면 조직은 조용히 굳어 간다. 나는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나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자기만의 전문성을 지키고 싶은 마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함부로 퍼뜨리면 안 된다는 신중함, 사소한 일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다는 배려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 선한 의도가 쌓이면 조직은 서서히 굳어 간다. 정보가 흐르지 않으면 조직은 마치 피가 돌지 않는 몸처럼 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에서는 서서히 괴사가 진행된다.


예를 들어 보겠다. A 부서에서 특정 설비의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고 하자.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공유하지 않는다. "좀 더 지켜보고 확실해지면 말하지 뭐"라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 B 부서에서도 같은 설비의 다른 이상 징후를 발견한다. 역시 확실하지 않아서 공유하지 않는다. 결국 두 부서 모두 각자의 조각만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그 설비가 고장 나면서 큰 사고로 이어진다. 만약 처음에 작은 이상 징후라도 공유했다면, 두 조각을 합쳐서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건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산업 현장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사고 조사를 해 보면 대부분 사전에 징후가 있었다. 그 징후를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유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고가 났다.


현금이 돌지 않으면 기업이 말라 가듯, 생각과 지식이 흐르지 않으면 조직은 서서히 침몰한다. 나는 현금 흐름만큼이나 지식 흐름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평가할 때 현금흐름표를 보듯이, 조직의 안전 건전성을 평가할 때는 지식 흐름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보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조직은 위험하다. 현장의 목소리가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의사결정권자는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하게 된다. 정보가 부서 간에 흐르지 않는 조직도 위험하다. 각자의 사일로 안에 갇혀서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사고가 터진다.

안전 역시 마찬가지다. 정보가 막힌 조직에서 안전은 그저 표어로만 남는다. 벽에 붙은 문구로만 존재한다. "안전제일"이라는 현수막은 휘날리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각자가 자기만의 섬이 된다. 그리고 각자의 섬은 언젠가 반드시 가라앉는다. 파도가 높아지면 혼자서는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연결되지 않은 섬은 고립된 섬이고, 고립된 섬에서는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한다. 나만 아는 정보가 나의 경쟁력이 될 거라고.

이 생각이 어디서 오는지 이해는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경쟁의 논리 속에서 살아왔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줄을 세웠고, 회사에서는 성과로 서열을 매긴다. 이런 환경에서 "내가 가진 정보가 곧 내 무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안전 영역에서 이 착각은 특히 위험하다. 나만 알고 있는 점검 포인트가 있다고 하자. 특정 설비를 점검할 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고 하자. 그 노하우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보다 점검을 더 잘한다. 그래서 상사에게 인정받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아프거나, 휴가를 가거나, 퇴사를 한다. 내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은 그 노하우를 모른다. 그 사람이 점검을 하다가 내가 알고 있던 위험 요소를 놓친다. 사고가 난다. 그때 내 노하우는 나의 경쟁력이었을까, 아니면 조직의 약점이었을까.

나만 기억하는 사고의 전조가 있다고 하자. 몇 년 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아차사고가 있었는데, 그 기억이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다고 하자. 문서로 기록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했을 때, 나만 "어, 이거 위험한데"라고 느낀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그 자리에 없다면? 아무도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나만 오랜 시간 축적한 경험이 있다고 하자.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일하면서 몸으로 익힌 감각이 있다고 하자. 그 경험은 정말 귀중한 것이다. 하지만 그 경험이 나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다면, 그건 조직의 자산이 아니라 조직의 리스크다. 결코 나 혼자만의 자산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의 생존 자원이다.

공유되지 않은 안전 지식은 썩은 물과 같다. 겉보기엔 고요하고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이미 위험이 자라고 있다. 냄새도 없고 소리도 없이, 조용히 곪아 가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터질 때까지.


혁신이 늘 경계 밖에서 태어나듯, 안전도 낯선 질문과 타인의 시선이 만날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신입 사원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해요?"라는 신입의 질문이 베테랑의 맹점을 찔러내는 경우가 많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라는 대답 뒤에는 종종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위험이 숨어 있다.

다른 부서 사람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제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는 위험이, 처음 방문한 인사관리팀 직원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저거 위험해 보이는데요?"라는 한마디가 수년간 방치된 위험을 드러내기도 한다.

익숙한 방식만 반복하는 조직은 결국 익숙한 사고를 반복하게 된다. 같은 실수가 다른 이름으로 돌아온다. 그때서야 후회해도 이미 늦다. "그때 들었어야 했는데", "그때 공유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는 이미 일어난 사고를 되돌리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지식의 겸손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식의 겸손함이란 무엇일까.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다. 아무리 오래 일했어도, 아무리 많이 공부했어도, 내가 모르는 것은 언제나 있다. 그걸 인정하는 게 지식의 겸손함이다. 그리고 내 전문 영역이 아닌 이야기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자세다. 나는 안전 전문가지만, 안전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제조 공정을 나보다 더 잘 아는 현장 작업자가 있다. 설비 특성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정비 기술자가 있다. 인간 심리를 나보다 더 잘 아는 HR 담당자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지식의 겸손함이다.


이 겸손함이 왜 중요할까. 문제를 다시 정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겠다. 어떤 공장에서 추락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고 하자. 안전관리 책임자로서 나는 이 문제를 "작업자들이 안전 수칙을 안 지켜서"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면 해결책은 "안전 교육을 더 강화하고, 규정 위반자를 더 엄하게 처벌하자"가 된다.

하지만 현장 작업자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듣는다면, 문제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 "안전대가 너무 불편해서 작업 효율이 떨어져요." "작업 발판이 좁아서 안전대를 걸 데가 마땅치 않아요." "납기 압박 때문에 안전 절차를 생략하게 돼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문제는 "작업자의 안전 의식 부족"이 아니라 "안전과 효율이 충돌하는 작업 환경"으로 재정의된다. 그러면 해결책도 달라진다. 더 편한 안전 장비를 도입하자, 작업 발판을 재설계하자, 납기 산정 시 안전 절차 시간을 반영하자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온다.

그 겸손함이 아무도 보지 못했던 위험을 드러낸다.


찰스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똑똑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안전도 같다. 변화하는 위험에 적응하려면, 혼자서 버티는 강함보다 함께 배우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강철처럼 단단한 것보다 갈대처럼 흔들리되 부러지지 않는 것이 더 오래간다.

위험은 계속 변한다.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면 새로운 위험이 생긴다. 작업 방식이 바뀌면 위험의 양상도 바뀐다. 계절이 바뀌면 위험 요소도 달라진다. 이렇게 계속 변하는 위험에 대응하려면, 과거의 지식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고,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은 남과 겨뤄 앞서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아니다. 개방과 공유, 그리고 융합의 시대다.

이건 조직 단위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혼자 안전 전문가로서 경쟁력을 키우려고 지식을 숨기면, 단기적으로는 내 가치가 높아 보일 수 있다. "이건 저만 알아요"라고 하면 마치 대단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건 나를 고립시키는 길이다.

내가 가진 걸 나누면 다른 사람도 자기가 가진 걸 나눠 준다. 그렇게 서로 주고받으면서 모두가 더 성장한다. 혼자 쥐고 있으면 내 것은 그대로인데, 나눠 주면 돌고 돌아 더 커져서 돌아온다.

남을 이기려 애쓰는 조직보다, 서로를 살리는 조직이 오래 살아남는다. 현장에서의 안전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의 요령이 아니라 팀의 관계 위에서 지켜질 때, 사고는 줄고 신뢰는 쌓인다.

내가 아무리 안전 수칙을 잘 지켜도, 옆에서 일하는 동료가 위험하게 행동하면 나도 위험해진다. 내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이전 교대조가 장비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았으면 사고가 날 수 있다. 안전은 절대로 혼자만의 노력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팀 전체가, 조직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러려면 관계가 좋아야 한다. 서로 신뢰해야 한다. "저 사람이 말하는 건 믿어도 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위험 정보가 빠르게 전달된다. "내가 실수를 말해도 비난받지 않을 거야"라는 심리적 안전감이 있어야 숨겨진 위험이 드러난다.


안전은 성과 이전에 관계 위에 세워진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자라난다. 안전 지표가 아무리 좋아도 현장에서 서로 말을 안 하면 그건 가짜 안전이다. 지표가 조금 부족해도 현장에서 활발하게 소통하면 그게 진짜 안전이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안전 활동 하나가 다른 회사에서는 문화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한 공장에서 시작된 경험이 다른 현장의 기준이 되고, 한 사람의 공유가 산업 전체의 관행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연결된 지식은 회사의 담을 넘어 사회로 흐른다. 강물이 바다로 가듯,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큰 흐름을 만든다. 한 회사의 안전 노하우가 다른 회사로, 그 회사에서 또 다른 회사로, 그러다 산업 전체의 표준이 되기도 한다. 나는 우리가 나누는 이 작은 이야기들이 결국 우리나라 전체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는다.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씨앗이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 씨앗이 언젠가 숲이 될 거라고 믿는다.


마거릿 미드는 말했다. "사려 깊은 소수의 시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라. 실제로 세상을 바꿔 온 것은 언제나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아니, 이 말대로 살고 싶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아니라, 내 주변부터 조금씩 바꿔 가겠다는 작은 다짐이다.


내가 바라는 건 간단하다. 내 동료들이 웃으며 출근해서, 다치지 않고 일하고, 그 모습 그대로 퇴근하는 것. 아침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간 사람이, 저녁에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며 돌아오는 것.

이게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당연한 일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한 순간의 방심으로, 한 가지 정보의 부재로, 한 번의 소통 실패로.

그래서 이 단순한 목표가 내게는 가장 중요한 목표다. 무재해 며칠 달성이나, 안전 지표 몇 퍼센트 개선이나, 이런 숫자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오늘 아침에 출근한 그 사람이, 오늘 저녁에 무사히 퇴근하는 것. 그게 전부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어디 있을까.


그 단순한 목표를 이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식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다.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게 두는 것이다.

높은 곳에 고여 있는 물은 고이면 썩는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계속 움직이며 깨끗하게 유지된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지식을 움켜쥐고 있으면, 그 지식은 나 한 사람만 보호한다. 그것도 불완전하게. 하지만 그 지식을 흘려보내면, 그 지식은 닿는 모든 사람을 보호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면, 결국 조직 전체가 보호받는다.


안전은 나 혼자 잘 지키는 비밀이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약속이다.

비밀은 혼자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약속은 혼자 지킬 수 없다. 약속은 상대가 있어야 하고, 서로가 함께 지켜야 의미가 있다. 안전도 그렇다. "나는 안전하게 일하겠다"는 건 혼자만의 다짐이다. "우리는 서로를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건 함께하는 약속이다. 전자만으로는 부족하다. 후자가 있어야 진짜 안전해진다.

오늘 내가 꺼내 놓은 한 줄의 경험이 누군가의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한 이야기가 한 사람이라도 기억해서, 위험한 순간에 "아, 그때 그 얘기"라고 떠올리고, 사고를 피한다면. 그거면 충분하다. 그 한 사람이 다치지 않고 집에 돌아간다면. 그 한 사람의 가족이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다면. 내가 공유한 지식의 가치는 이미 무한해진 것이다.

안전은 그렇게, 말속에서 자라고,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침묵 속에서 안전은 자라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불편한 이야기라도 해야 하고, 사소한 걱정이라도 말해야 하고, 실수한 경험이라도 공유해야 한다. 그 말들이 쌓여서 안전이 된다. 그리고 그 말들은 관계가 있어야 오간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 실수를 말하지 않는다. 무시당할 것 같은 환경에서 내 걱정을 꺼내지 않는다. 관계가 좋아야 말이 나오고, 말이 나와야 안전이 자란다.


오늘도 나는 출근한다. 현장을 돌고, 작업자들과 이야기하고, 위험을 찾아내고, 그 정보를 공유한다. AI를 활용해 보고서를 쓰고, 교육 자료를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노하우를 동료들에게 나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작은 일들이 쌓여서 누군가의 무사한 퇴근이 된다. 누군가의 저녁 식탁이 된다.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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