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AND FORGET(주고 잊어라)

by 호세

요즘 들어 자꾸 일이 꼬인다. 분명히 어제까지는 괜찮았는데, 오늘 아침 회의는 이상하게 삐걱거렸다. 평소라면 웃어넘겼을 농담에 괜히 마음이 상하고, 별것 아닌 이메일 한 통에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는다.

누군가는 이런 걸 "운이 없다"고 말한다. 올해 띠가 안 맞는다느니, 책상 방향이 잘못됐다느니, 사무실 기운이 탁하다느니.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나도 한때 책상 위치를 바꿔 본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면서 우연히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 역술가 박성준 편을 봤다. 유재석이 물었다. "운이 안 좋을 때 가장 좋은 대처법이 뭐예요?" 나는 당연히 뭔가 거창한 답을 기대했다. 명상을 하라든가, 운동을 하라든가, 긍정 확언을 외우라든가.

그런데 돌아온 답은 이것이었다.

"베푸세요. 그리고 잊어버리세요."

커피 한 잔을 사 주고, 술 한 잔을 건네고, 작은 도움을 주고, 그냥 돌아서라는 것이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베풀었으면 반드시 잊어야 한다는 것.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는 순간, 그 행위는 거래가 된다. 거래에는 기대가 붙고, 기대가 어긋나면 분노가 따라온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이름 붙였다.

"Give and Forget." 주고, 잊어라.


내 직책은 현 회사의 아시아 지역 총괄 안전 리더이다. 아시아 지역의 현장들을 오가며, 사람들의 안전을 설계하고 점검하는 일을 한다. 뭐 대단한 일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의 대부분은 아주 소박하다. 현장을 걷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작은 위험 요소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것.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이상한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특별히 뭐가 달라진 것도 없는데, 유난히 사고가 잦아지는 시기가 있다. 설비도 그대로고, 인원도 그대로고, 규정도 바뀐 게 없다. 그런데 아차 사고가 이어지고, 경미한 부상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간다.

그럴 때 안전관리 책임자로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들이다. 교육을 더 해야 하나? 점검 주기를 늘려야 하나? 규정을 더 세밀하게 만들어야 하나?


돌이켜보면, 사고가 많았던 시기에는 늘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메말라 있었다. 서로 여유가 없었다. 말이 줄어들었다. 도움을 주고받는 일조차 계산적이 되었다. "저 사람 도와줬으니까 나중에 뭐 하나 받아야지." 그런 분위기가 현장 전체에 희미하게 퍼져 있었다. 그때 안전은 규정 안에만 존재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없었다.

반대로, 분위기가 좋은 현장에서는 큰 캠페인을 하지 않아도 사고가 줄어들었다. 서로 먼저 말을 걸었다. 위험한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귀찮아도 한 번 더 확인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베풂이라고 하면 왠지 큰일을 떠올리게 된다. 기부를 한다거나, 봉사활동을 한다거나,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거나.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발견한 베풂은 훨씬 작고 조용한 것들이었다.

현장에서 먼저 인사하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안전모를 쓰고 바쁘게 움직이는 작업자에게 "오늘도 수고 많으시네요"라고 먼저 말을 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관리자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괜히 뭔가 지적하러 온 것 같고,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것 같고, 시간을 뺏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말을 아끼게 된다. 필요한 말만 한다. 업무적인 말만 한다. 그런데 그 '업무적인 말'만 오가는 현장은, 서서히 굳어간다.

바쁜 작업자에게 물 한 병을 건네는 것.

한여름 현장은 정말 덥다. 모두가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데, 안전관리자가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서 점검표만 들고 나타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바쁘니까, 점검 항목이 많으니까, 일정이 빠듯하니까. 그렇게 핑계를 대면서 사람보다 서류를 먼저 봤다.

어느 날, 정수기 앞을 지나다가 종이컵에 물을 담아서 현장에 가져가 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더워 보여서. "더우시죠, 물 드세요." 그게 다였다. 작업자분이 잠깐 멈칫하더니 웃으면서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날 점검은 평소보다 훨씬 수월하게 끝났다.

불안전한 행동을 지적하기 전에, 안전하게 하고 있는 행동을 먼저 말해 주는 것.

이건 정말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안전관리자는 직업적으로 '잘못된 것'을 찾도록 훈련받는다. 위험 요소를 발견하고, 지적하고, 시정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래서 현장에 가면 자연스럽게 눈이 그쪽으로 간다. 보호구 미착용, 정리정돈 불량, 통로 적치.

그런데 계속 지적만 받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오늘 정리정돈 잘해 주셨네요." "안전화 제대로 신고 계시네요, 감사합니다." 작은 인정의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얼마나 바꾸는지, 직접 해 보기 전에는 몰랐다. 지적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전에 먼저 인정을 해 주면 상대방의 방어벽이 훨씬 낮아진다.


이런 행동들은 시간이 든다. 에너지가 든다. 그리고 당장 성과로 보이지 않는다. KPI 보고서에 "오늘 작업자에게 물 한 병 건넴"이라고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종종 생략한다. 바쁘니까, 시간이 없으니까,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 작은 베풂이 현장의 긴장을 풀고, 사람의 마음을 연다.


여기서 진짜 어려운 부분이 나온다.

베풂의 핵심은 주는 것이 아니라 잊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커피를 사 줬으니 저 사람이 나를 좋게 볼 거야. 물을 건넸으니 다음 점검 때 협조적이겠지. 안전 대화를 했으니 바로 행동이 바뀌겠지. 그런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기대가 어긋날 때마다 실망했다.

아니, 내가 저렇게 해 줬는데 왜 아직도 저러지? 진짜 사람이 안 바뀌네. 역시 소용없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점점 베풂을 멈추게 되었다. 어차피 안 통하는데 뭐 하러 힘을 쓰나. 그냥 규정대로 하자. 지적하고, 기록하고, 보고하자. 그게 편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현장은 더 굳어갔다.


베풂은 통제 수단이 아니다.

이걸 깨닫는 데 꽤 오래 걸렸다. 내가 커피를 사 줬다고 해서 상대방이 바뀌어야 할 의무는 없다. 안전 대화를 했다고 해서 바로 행동이 바뀌어야 할 이유도 없다. 베풂은 상대를 움직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건 거래다. 거래에는 반드시 기대가 따라오고, 기대가 어긋나면 분노가 온다.

베풂은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내가 건넨 커피 한 잔이 당장 무언가를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그 작은 행위는 공기 중에 남는다. 분위기가 된다. 그리고 그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서서히, 아주 천천히 바뀐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여기는 뭔가 다르다'고. '여기서는 안전 얘기를 해도 괜찮다'고.

환경은 서서히 사람을 바꾼다.


그래서 중요한 건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다. 오늘 내가 한 작은 베풂이 내일 바로 결과로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한 달 뒤에도, 일 년 뒤에도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그렇게 계속 쌓아가는 것이다.

마치 매일 아침 화분에 물을 주듯이. 당장 꽃이 피지 않아도, 그냥 물을 주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풍수를 오해한다. 좋은 자리에 앉으면 운이 좋아진다고 믿는다. 책상 방향을 바꾸면 일이 풀린다고 기대한다. 사무실에 어떤 물건을 놓으면 기운이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나도 한때 그랬다. 인터넷에서 '사무실 풍수'를 검색하고, 책상 위 배치를 이리저리 바꿔 봤다. 효과가 있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풍수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풍수의 본질은 공간이 아니라 흐름이라고. 막힌 것을 흐르게 하고, 날 선 것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 그게 풍수의 진짜 목적이라고. 좋은 자리에 앉는 것보다, 공간 전체의 기운이 막히지 않고 흐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직도 마찬가지다.

말이 흐르고, 감정이 흐르고, 관심이 흐를 때 안전도 흐른다. 아무리 좋은 설비가 있어도, 아무리 완벽한 규정이 있어도, 그 흐름이 막히면 사고는 난다. 서로 말을 하지 않으면 위험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 감정이 막히면 사소한 불안도 말하지 못한다. 관심이 흐르지 않으면 옆에서 위험한 일을 해도 그냥 지나친다.

반대로, 흐름이 좋은 현장은 작은 문제도 빠르게 잡아낸다. 누군가 "저기 좀 위험해 보이는데요"라고 말하면, 다른 누군가가 "그러네, 한번 볼까요?"라고 응답한다. 그 자연스러운 대화가 사고를 막는다.

내가 먼저 건넨 인사, 내가 먼저 건넨 물 한 잔, 내가 먼저 건넨 인정의 말. 그런 것들이 막힌 곳을 뚫고, 날 선 것을 부드럽게 한다.

풍수를 바꾸고 싶다면, 책상을 옮기기 전에 내 태도를 먼저 바꿔 보는 것이 맞다.


현장에서 불안전한 행동을 발견했을 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규정을 들이미는 것이다. "이건 안전수칙 위반입니다. 시정 조치 부탁드립니다." 명확하고, 객관적이고, 기록에 남는다. 관리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증거가 된다.

다른 하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혹시 뭐 불편한 거 있으세요? 왜 그렇게 하시게 됐어요?" 시간이 더 걸리고, 감정 노동이 필요하고, 때로는 상대방의 짜증을 감당해야 한다. 기록에 남기도 애매하다.


정답이 뭘까? 솔직히, 상황마다 다르다. 명백하게 위험한 상황에서는 규정을 들이밀어야 한다.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할 때 감정적 대화를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특히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불안전한 행동에 대해서는, 규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람의 마음이 닫힌 상태에서는 어떤 메시지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아무리 정확한 규정을 인용해도, 상대방이 마음을 닫고 있으면 그 말은 그냥 소음이 된다. "또 잔소리하네." "알겠어요, 알겠어요." 형식적으로 응하고, 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린다. 그리고 똑같은 행동이 반복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말이 아니다. 먼저 건네는 작은 호의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 힘드시겠다." 그 한마디가 상대방의 방어벽을 낮춘다. 그다음에 하는 안전 이야기는 훨씬 더 잘 전달된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나를 '잔소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편인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매번 통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만능 해결책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규정만 들이밀던 시절보다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지금이, 현장이 훨씬 더 나아졌다고 느낀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혹시 이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 뭐가 달라지는데? 베풀어 봤자 상대방이 안 바뀌면 소용없는 거 아냐?

맞다. 상대방은 안 바뀔 수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바로 바뀌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베풀어도, 여전히 불안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있다. 여전히 안전을 귀찮아하는 사람은 있다. 여전히 나를 잔소리꾼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히 바뀌는 게 있다.

나 자신이 바뀐다.

베풂을 시작하면, 현장에 서 있는 내 태도가 달라진다. 예전에는 '위험 요소를 찾아내야 한다'는 긴장감으로 현장을 돌았다면, 지금은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간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크다.

긴장하고 있는 사람과, 편안하게 다가오는 사람. 현장 작업자들은 그 차이를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내 태도가 바뀌면, 상대방의 반응도 서서히 바뀐다. 직접적으로 바꾸려고 하면 안 바뀌지만, 내가 먼저 바뀌면 상대방도 따라서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 태도는 곧 분위기가 된다.

한 사람의 태도 변화는 미미해 보인다. 하지만 그 태도가 반복되면 분위기가 된다. "저 사람은 좀 다르더라." "저 사람은 그냥 지적하러 오는 게 아니더라." 그런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다.

분위기는 습관이 된다. 현장에서 서로 인사하는 게 당연해지고, 위험한 걸 보면 말하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안전 이야기를 해도 불편하지 않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해야 했던 일들이,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습관은 문화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진짜 안전문화다. 벽에 붙어 있는 슬로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들의 총합. 캠페인 한 번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작은 선택들의 결과. 안전문화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운이 안 풀린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흔히 밖을 본다. 환경을 탓한다. 시기를 탓한다. 다른 사람을 탓한다. 그게 더 쉽기 때문이다. 내가 바뀌는 것보다 바깥이 바뀌기를 바라는 게 덜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은 늘 안에서 시작된다.

내가 오늘 어떤 말을 건넸는지. 어떤 표정으로 현장을 지나쳤는지. 어떤 도움을 주고 아무 말 없이 돌아섰는지. 그런 작은 장면들이 모여 내일의 안전을 만든다.


그러니 오늘 하루가 유난히 꼬였다고 느껴진다면, 한 번쯤 이렇게 해 봐도 좋겠다.

이유 없이 커피 한 잔을 사 주고, 아무 말 없이 잊어버리는 것.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든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주고 돌아서는 것. 내일 뭔가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대하지 말고, 그냥 오늘 그렇게 하는 것.

안전도 마찬가지다. 계산 없이 건넨 관심은, 언젠가 꼭 필요한 순간에 조직 전체를 지켜 주는 힘이 된다. 당장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그 작은 베풂들은 어딘가에 쌓이고 있다. 그리고 정말 위험한 순간이 왔을 때,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잠깐, 이거 위험한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한마디가 사고를 막는다. 그 한마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랜 시간 쌓인 신뢰와 관계다.

운을 바꾸고 싶다면, 풍수를 바꾸기 전에 태도를 바꿔 보자. 책상 방향보다 내 시선의 방향이 먼저다. 사무실 배치보다 내 마음의 배치가 먼저다.

환경이 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환경을 만든다.

안전은 언제나 그 지점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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