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사 안전 리더 자리를 맡았을 때, 나는 내 숨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책임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익숙한 한국 조직이 아니라, 문화와 언어가 다른 유럽 동료들과 협업을 이끌어야 하는 역할이었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기회'라고 불렀지만, 그때의 나는 '압박'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떠올렸다. 의자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늘 회의실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 실수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나 하나의 판단이 누군가의 하루를 흔들 수 있다는 부담감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다른 사람들은 이 무게를 어떻게 견디는 걸까. 답 없는 질문만 마음속에 쌓여 갔다.
그러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당시, 송승준 선수가 박찬호 선수와 함께 뛰었던 이야기를 전하며 들려준 장면을 봤다. 중요한 경기를 앞둔 날,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시간에 박찬호 선수는 숙소 방 안에서 조용히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베테랑 선수, 이미 수많은 압박을 견뎌 온 사람조차 그 무게를 혼자 감당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도 숨부터 가다듬어 보자고.
흔히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다룬 책을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책 읽기, 운동, 그리고 명상이다. 운동은 과장 조금 보태 이미 삶의 일부가 되었고, 책 읽기도 나름 꾸준히 해 오고 있었다. 남은 건 명상이었다.
'이건 대체 어떤 걸까?' 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명상이 어느덧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 나를 봐 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 일상의 루틴은 단순하다. 출근 후 잠시 명상하고, 책을 읽고, 퇴근해 운동을 한다. 주말에는 세연이와 시간을 보낸다. 특별할 것 없는 반복이지만, 이 단순함이 나를 지탱해 준다.
내 명상의 시작은 어디서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다. '코끼리 명상' 앱을 통해 호흡에 집중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명상이라고 하면 대단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단순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눈에 띄는 변화도 없다. 하지만 며칠, 몇 주 지나며 알게 된다. 어느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릿속이 잠시 비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단 1초라도 생각이 멈추는 순간, 그 짧은 공백이 큰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명상은 꼭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걸어가다가, 운동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도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한 번의 호흡이 지금 이 순간으로 나를 데려온다.
명상이라는 말을 한자 그대로 풀면 '고요히 눈을 감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눈을 감기보다 마음의 눈을 뜨는 일에 가깝다. 끊임없이 자극하는 바깥세상에서 잠시 시선을 거두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마음은 강과 같다.
생각과 감정, 기억과 상상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간다. 기쁨도, 분노도, 불안도 모두 같은 물길 위를 떠다니는 물방울이다. 명상이란 그 강물에 뛰어들어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강가에 조용히 앉아 흐름을 바라보는 일이다.
'아, 이런 생각이 지나가고 있구나.' '지금은 불안이 조금 크네.'
그렇게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정에 끌려가지 않을 여유를 조금씩 되찾는다.
숨을 들이쉬며 내가 숨 쉬고 있음을 안다. 숨을 내쉬며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있음을 안다.
이 단순한 반복이 마음을 느리게 만든다.
치유는 멀리 있는 특별한 과정이 아니다. 숨을 쉬는 바로 그 순간에서 시작된다. 치유에 이르는 길을 따로 찾을 필요도 없다. 치유가 곧 길이기 때문이다.
마음 챙김으로 숨을 들이쉴 때, 흩어져 있던 마음은 다시 몸의 집으로 돌아온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면, 마음은 더 이상 쓸데없이 달리지 않는다.
때로는 단 한 번의 호흡으로도 충분하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리는 햇빛이 사라졌다고 느낀다. 하지만 구름 위에는 여전히 태양이 있다.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오는 순간에도, 그 아래에는 여전히 평온이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잊고 있을 뿐이다.
숨을 따라가다 보면, 그 평온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 사회를 압박(Pressure), 상시 연결(Always on), 정보 과부하(Information overload), 산만함(Distracted)으로 요약해 **'PAID 현실'**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환경 속에서 우리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간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마음은 이미 다음 일정으로 향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 챙김은 흐트러진 주의를 다시 현재로 불러온다. 알아차림이 쌓일수록 집중력은 또렷해지고, 생각은 선명해진다.
명상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일상이 될 수 있다. 세수할 때, 청소할 때, 밥을 먹을 때, 운전할 때도 가능하다.
기분 나쁜 일을 겪었을 때,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흥분은 가라앉고 마음은 차분해진다. 기분이 나빴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생각일 뿐이다.
과거를 붙잡거나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지 않고, 그저 지금 주어진 현재를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비무적(慈悲無敵)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과 싸워 이길 필요는 없다. 막대한 것을 소유할 필요도 없다. 그저 스스로에게 조금 더 온화해지는 것, 숨을 고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단단해진다.
완벽한 리더가 되기보다, 숨을 잊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안전은 대단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렇게 조용한 호흡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조금 더 안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