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by 호세

세상이 거칠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말은 날카로워지고, 표정은 굳어지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여유는 점점 사라진다. 일을 하다 보면 더 그렇다. 빨리, 정확히, 효율적으로. 이 세 가지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회의에서는 결론만 말하라고 재촉받고, 현장에서는 속도를 높이라는 압박이 이어진다. 느리면 뒤처지고, 뒤처지면 도태된다는 불안이 공기처럼 퍼져 있다.

현장을 지켜보는 것이 내 일이다. 수많은 사고 보고서를 읽었고, 수많은 사례를 분석했다. 그리고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사고는 속도가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빨리 하려다 다치는 것이 아니다. 빨리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주변을 살피지 못하게 만들고, 그 순간 사고가 찾아온다.


최근에 이사를 했다. 결혼하고 신혼집에서 10년 넘게 살다가 새 아파트로 옮겼다.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르다는 건 누구나 안다. 같은 업종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서면 느껴지는 공기가 다르다. 어떤 곳은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고, 어떤 곳은 햇볕 아래 놓인 벤치 같다. 그런데 아파트도 그렇다는 걸 나는 이사하고 나서야 알았다. 건물마다 저마다의 공기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 그것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하루를 조용히 물들인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조용했다. 함께 타는 사람이 있어도 각자의 휴대폰만 바라보거나 층수 표시등만 올려다보았다. 누가 먼저 말을 거는 일은 드물었다. 그게 자연스러웠다. 나 역시 그랬다. 굳이 불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새 아파트로 이사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한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나는 습관대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휴대폰을 꺼내려했다. 그 순간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짧은 한마디였다. 특별할 것 없는 인사였다. 그런데 그 말이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를 바꿨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고 대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층에서 내렸다. 그게 전부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화가 이어지지도 않았고, 연락처를 주고받지도 않았다. 그냥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데 기분이 좋았다.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가벼움이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다.

그 '아주 조금'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세연이와 이야기하면서도 그 잔여감이 어디선가 맴돌았다.

나는 그 '아주 조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왜 그토록 사소한 인사 하나가 하루의 기분을 바꾸었을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시간은 30초도 채 되지 않았다. 나눈 말은 고작 두 마디였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이 집에 돌아온 후에도 남았다.

생각해 보니 그것은 예상치 못한 친절이었다. 아무도 인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먼저 건네진 따뜻함이었다. 의무가 아니었기에 더 귀했다. 누군가 나를 이웃으로 인식해 주었다는 느낌. 이 건물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신호. 그것이 마음 어딘가를 살짝 건드렸다.


기분이 조금 좋은 상태에서는 아내에게 건네는 말이 달라진다. "밥 먹었어?"가 "오늘 뭐 먹었어? 맛있었어?"가 된다. 같은 질문인 것 같지만 온도가 다르다. 세연이에게도 마찬가지다. 피곤할 때는 "숙제했어?"라고 확인하듯 묻는다. 기분이 좋을 때는 "오늘 학교에서 뭐 재밌는 일 있었어?"라고 묻게 된다. 질문의 방향이 바뀐다.

말투가 바뀌면 선택이 바뀐다. 느슨해진 마음으로는 작은 것에 짜증을 내지 않는다. 참을성이 조금 더 생긴다.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피곤함을 핑계로 미루던 일들을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선택이 바뀌면 하루의 태도가 바뀐다. 하루의 태도가 바뀌면 그 하루를 기억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다정함은 그렇게 시작된다.

눈에 띄지 않게, 소리 없이 시작해서 하루 전체를 조용히 움직인다. 큰 소리로 외치지 않는다. 대단한 선언도 하지 않는다. 그저 스며들 뿐이다. 물이 종이에 스며들듯, 햇살이 방 안에 스며들듯.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그 다정함 속에서 숨 쉬고 있다.


나는 다정함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정함을 그저 감정의 문제로만 생각했다. 성격이 따뜻한 사람이 다정한 것이고, 원래 그런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고 여겼다. 타고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별로 다정한 편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그래서 인사를 먼저 건네는 일에 인색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의 그 경험이 생각을 바꿨다.

다정함은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감정에서 시작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있다. 그 기분이 생각을 느슨하게 풀어 준다. 느슨해진 생각은 선택의 폭을 넓힌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행동의 방향이 달라진다.


브라이언 헤어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이 책은 내가 막연히 느끼던 것들에 언어를 붙여 주었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보다, 함께 살아남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강함이나 공격성이 아니라 다정함이 진화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관점.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는 너무 오래 "착하면 손해"라는 말에 익숙해져 왔으니까.

하지만 책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이 바뀐다. 다정함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설계하는 능력에 가깝다. 서로의 신호를 읽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갈등이 커지기 전에 방향을 바꾸는 힘. 이런 능력은 진화의 과정에서 분명한 이점으로 작동했다. 공격적인 개체보다, 협력할 줄 아는 개체가 더 오래 살아남았다는 사례들이 그걸 증명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다정함과 안전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안전이라는 단어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 아침에 집을 나선 사람이 저녁에 멀쩡히 돌아오는 것. 그것이 안전이다.

오래 일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규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아무리 좋은 규칙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규칙을 따르게 만드는 것은 규칙 자체가 아니다. 분위기다. 공기다. 그 공간에 흐르는 무언가다.

안전 규정은 종이 위에 있을 때보다 사람 사이에 있을 때 힘을 가진다. 보호구 착용 지침이라는 문서보다, "이거 쓰고 가자"라는 동료의 한마디가 더 강하게 작동할 때가 많다.

다정함은 규정을 일상으로 옮기는 번역기 같은 역할을 한다. 어렵고 딱딱한 안전을, 살아 있는 행동으로 바꾼다.


기분이 좋아지면 무엇이 달라질까.

일단 말투가 느슨해진다. 빳빳하게 곤두섰던 것들이 풀어진다.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표정이 편안해진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 날카로운 끝이 사라진다.

숨이 깊어진다. 급하게 내쉬던 호흡이 천천히 들이쉬는 호흡으로 바뀐다. 가슴까지만 오던 공기가 배 아래까지 내려간다. 몸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따라서 편안해진다.

주변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조급할 때는 앞만 본다. 목표만 보고 달린다. 기분이 좋을 때는 옆도 보고, 뒤도 본다. 하늘도 올려다보고, 길가의 꽃도 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넓어진다.

안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조급함이 줄어들면 실수가 줄어든다. 서두르면 빠뜨리는 것이 생긴다. 확인해야 할 것을 확인하지 않는다. 한 단계를 건너뛴다. 그 한 단계가 사고로 이어진다. 기분이 좋으면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면 순서를 지킨다. 확인할 것을 확인한다.

짜증이 가라앉으면 무리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화가 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에이, 이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한다. 짜증이 가라앉으면 위험을 위험으로 본다. 멈춰야 할 때 멈춘다.

성과와 효율이 우선인 세계에서 다정함은 느린 미덕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느림은 때로 가장 빠른 사고 예방 장치다. 잠깐 멈춰 서고, 한 번 더 묻고, 서로의 상태를 살피는 그 짧은 시간이 사고를 막는다. 번아웃과 단절이 반복되는 현장에서, 오래 버티는 힘은 결국 관계에서 나온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기계 옆에 선다. 무거운 것을 옮기고, 날카로운 것을 다루고, 뜨거운 것 옆에서 일한다. 위험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집중해야 한다. 긴장을 풀면 안 된다.

그런데 하루 종일 긴장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너무 오래 긴장하면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피로가 쌓이면 반응이 느려진다. 그래서 적당히 긴장하고, 적당히 풀어야 한다. 그 균형이 중요하다.

다정함은 그 균형을 만든다. 작업 전 잠깐의 여유. 커피 한 잔 마시며 나누는 가벼운 대화. 동료에게 건네는 한마디. "잘 잤어?" "오늘 날씨 좋다." "점심 뭐 먹을까?" 이런 말들이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현장의 긴장을 낮춘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공기가 조금 풀어진다. 풀어진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더 편하게 숨 쉰다. 더 편하게 숨 쉬면 주변을 더 잘 살핀다.


"괜찮아?"

이 짧은 질문 하나가 큰일을 막을 수 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동료를 발견하게 해 준다. 아픈 데를 참고 일하던 사람이 잠깐 쉴 수 있게 해 준다.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지 않게 해 준다.

안전은 혼자 잘해서 지켜지는 영역이 아니다. 아무리 숙련된 작업자라도, 주변과 단절되면 위험해진다. 반대로 다정한 현장에서는 작은 이상 신호가 빨리 공유된다. "이거 좀 이상한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 한마디가 사고를 멈춘다.

긴장이 낮아지면 위험 신호를 알아차릴 여지가 생긴다. 너무 긴장한 상태에서는 눈앞의 일만 보인다. 적당히 편안한 상태에서는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 수 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평소와 다른 냄새가 난다. 기계가 평소와 다르게 돌아간다. 이런 신호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사고가 왜 일어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영화에서처럼 누군가 일부러 나쁜 짓을 해서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사고는 큰 악의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사소한 무시에서 나온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맨날 하던 거니까." "귀찮은데 그냥 넘어가자."

이런 작은 무시가 쌓인다. 안전벨트를 한 번 안 맨다. 안전모를 잠깐 벗는다. 확인 절차를 한 번 건너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또 건너뛴다. 그러다 어느 날, 일이 터진다.

조급함에서 나오기도 한다. 빨리 끝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다른 일도 해야 한다. 이런 마음이 절차를 간소화한다. 원래 열 단계로 해야 할 것을 다섯 단계로 줄인다. 대부분은 괜찮다. 하지만 가끔, 그 줄인 다섯 단계 중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

피곤함에서 나오기도 한다. 잠을 못 잤다. 몸이 무겁다. 눈이 침침하다. 이런 상태에서 정밀한 작업을 한다. 손이 덜덜 떨린다.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오늘따라 실수한다. 작은 실수가 큰 사고가 된다.

그래서 사고 예방은 규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규정은 중요하다.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규정을 지키려면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고, 몸의 컨디션이 받쳐 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살펴 줄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구나 느낀다. 어떤 곳에 들어가면 편하게 말할 수 있고, 어떤 곳에서는 입을 다물게 된다. 같은 사람이라도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경쟁 중심의 환경에서 우리는 종종 날카로워진다. 실수는 곧 평가로 이어지고, 평가는 곧 책임으로 연결된다. 그러다 보니 침묵이 늘어난다. 괜히 말했다가 불이익을 받을까 봐, 그냥 지나친다.

사고는 바로 그 침묵 속에서 자란다.

다정함이 중요한 이유는, 그 침묵을 깨는 힘이기 때문이다.


다정함이 흐르는 공간에서는 위험이 말로 올라온다. 작업하다 보면 이상한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기계가 평소와 다르게 움직인다.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바닥에 물이 고여 있다.

이런 것들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딱딱한 분위기에서는 말을 안 한다. "내가 괜히 말했다가 일만 커지면 어쩌지." "별거 아닌 걸로 호들갑 떤다고 하면 어쩌지." "그냥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거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나중에 일이 터진다.

다정한 분위기에서는 다르다. "이거 좀 이상해요." 이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설령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괜찮아, 말해 줘서 고마워"라는 반응이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예요." 이 말도 마찬가지다. 딱딱한 곳에서는 이 말을 하지 못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평가가 나빠질까 봐 걱정된다. 그래서 참는다. 참고 일하다가 실수한다.

다정한 곳에서는 이 말이 나온다. "오늘 좀 힘들어." "어젯밤에 잠을 못 잤어." "몸이 안 좋아서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러면 동료가 "오늘은 내가 더 신경 쓸게"라고 답한다. 서로를 살핀다. 위험이 줄어든다.

말이 나오면 조치가 가능해진다. 이상한 것을 발견하면 점검할 수 있다. 컨디션이 안 좋은 사람이 있으면 업무를 조정할 수 있다. 조치가 가능해지면 사고는 한 발 뒤로 물러선다.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토크쇼 진행자인 코넌 오브라이언이 한 말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진행하던 《투나잇 쇼》의 마지막 방송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제발 냉소적으로 살지 마세요. 저는 냉소가 싫습니다. 가장 안 좋아하는 능력이죠. 냉소는 어디로도 이끌어 주지 않아요. 인생에선 그 누구도 예상한 것을 정확히 얻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친절하다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 어딘가가 울렸다. 냉소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나도 냉소적인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 봤자 안 바뀐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안 들어"라고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주었는가. 어디로도 데려다주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멈춰 있게 했을 뿐이다.

이 말은 안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냉소적인 태도는 위험을 줄이지 못한다. "말해 봤자 소용없어"라는 생각은 침묵을 만든다. "해 봤자 안 바뀐다"는 생각은 행동을 멈추게 만든다. 그리고 행동이 멈추면 사고는 가까워진다.

반대로 친절은 움직이게 한다. 한 번 더 확인하게 하고, 한 번 더 말을 걸게 한다. "혹시 괜찮아요?"라고 묻게 한다. "이것 좀 봐주실래요?"라고 부탁하게 한다. 그 사소한 선택들이 하루를 무사히 지나가게 만든다.


그렇다면 다정함은 어디서 오는가. 아무나 다정할 수 있는가. 다정함을 만들 수 있는가.

첫 번째는 방향이다.

다정함은 거창하지 않다. 큰 결심이나 비용이 들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꽃을 사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선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없다. 대신 방향이 필요하다. 기분 좋게 살겠다는 선택. 좋음과 좋지 않음의 갈림길에서 좋음을 택하는 연습. 이것이 방향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오늘도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일어날 수 있다. 또는 오늘도 새 하루가 시작됐다고 생각하며 일어날 수 있다. 둘 다 사실이다. 피곤한 것도 맞고, 새 하루인 것도 맞다.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느냐가 방향이다.

기분 좋음은 감정의 결과가 아니다. 생각의 방향에서 나온다. 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선택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방향은 습관이 된다. 처음에는 일부러 생각해야 한다. 오늘은 좋은 방향을 택하자.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반복하다 보면 자동이 된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그 방향으로 가게 된다. 습관은 태도가 된다. 태도가 되면 그것이 그 사람이 된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다.

불만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늘 억울함을 이야기한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나만 힘들다고 말한다. 누구는 쉽게 살고 나는 어렵게 산다고 말한다. 그 억울함이 진짜인 경우도 있다. 정말로 불공평한 일을 겪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억울함을 삶의 중심에 두면 문제가 생긴다. 그 억울함이 생각을 좁힌다. 다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내 상황만 보인다. 시야가 흐려진다. 좋은 것이 와도 좋은 줄 모른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상황을 단번에 바꾸지 못해도 자신을 단단히 세운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안다.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대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선택을 점검한다. 오늘 내가 어떻게 반응했지? 다르게 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오늘의 태도를 스스로 결정한다. 상황이 어떻든 내 태도는 내가 정한다. 이것이 단단함이다.

다정함은 그 단단함 위에서 자란다. 나를 아끼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오래 다정하게 대하기 어렵다. 잠깐은 가능하다. 하루 이틀은 착한 척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속이 비어 있으면 줄 것이 없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면서 남에게 다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존감에서 비롯된 다정함만이 지속된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남에게도 괜찮게 대할 수 있다. 나를 소중히 여겨야 남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그래서 다정함의 시작은 결국 나 자신이다.


다정함은 타인을 위한 태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덜 소모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날을 세우며 사는 것은 피곤하다. 매번 경계하고, 매번 방어하고, 매번 공격 자세를 취하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든다. 다정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힘이 덜 든다. 오래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인생은 거대한 순간보다 사소한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에서는 인생을 바꾸는 극적인 순간이 나온다. 중요한 면접, 운명적인 만남, 결정적인 고백. 그런 장면들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삶은 다르다. 대부분의 시간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다. 그리고 그 일상 속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서 우리를 만든다.


아침에 어떤 표정으로 문을 나서는지. 눈을 비비며 찡그린 얼굴로 나서는지, 아니면 한 번 심호흡하고 나서는지. 출근길에 누군가와 부딪혔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혀를 차며 지나가는지, 아니면 가볍게 고개 숙이고 지나가는지. 회사에서 동료를 만났을 때 어떤 첫마디를 건네는지.

퇴근 후 어떤 생각을 반복하는지도 중요하다. 오늘 있었던 짜증 나는 일을 계속 곱씹는지, 아니면 잘된 일을 떠올리는지. 내일 해야 할 걱정거리를 밤새 뒤척이며 생각하는지, 아니면 내일의 일은 내일에 맡기고 오늘은 쉬는지.

짜증이 밀려올 때 어떻게 숨을 고르는 지도 선택이다. 그 짜증을 그대로 밖으로 내보내는지, 아니면 잠깐 멈추고 한숨 쉬고 다시 시작하는지. 화가 날 때 바로 말을 내뱉는지, 아니면 3초만 참는지. 급하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날을 세우진 않았는지.


나는 오늘 얼마나 다정했을까.

그 작고 자주 반복되는 선택들이 삶의 결을 만든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물결의 무늬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보인다.

안전 역시 같다. 한 번의 대책보다 매일의 태도가 더 큰 영향을 준다.


안전관리 책임자로 일하면서 나는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웠다. 새 안전장비를 도입하고, 교육을 강화하고, 점검 횟수를 늘렸다.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분명히 효과가 있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매일의 태도다.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제대로 쓰지 않으면 소용없다.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아도 현장에서 적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결국 사람이다. 사람의 태도다.


좋은 하루가 쌓이면 좋은 일주일이 된다. 월요일에 웃으며 출근하고, 화요일에 동료를 챙기고, 수요일에 실수 없이 일하고, 목요일에 후배를 가르치고, 금요일에 무사히 퇴근한다. 그런 하루들이 모이면 좋은 일주일이 된다. 좋은 일주일이 쌓이면 좋은 한 달이 된다. 좋은 한 달이 쌓이면 좋은 일 년이 된다. 좋은 일상이 쌓이면 좋은 삶이 된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하루의 안전이 쌓여 일 년의 안전이 된다. 일 년의 안전이 쌓여 평생의 안전이 된다.


하루의 태도가 일상의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이 문화가 된다. 문화는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라는 것이다. 새로 온 사람이 "여기서는 이렇게 하나 보다"라고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문화다.

문화는 사고를 줄이는 가장 오래된 기술이다. 규칙보다 오래됐다. 장비보다 오래됐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있었다. "우리 부족은 이렇게 하지 않아." "우리 마을에서는 원래 이렇게 해." 이런 것이 문화다. 안전문화도 마찬가지다.

오늘 하루를 내가 주도하겠다는 결심. 이것이 출발점이다.

하루가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짜증 나는 일이 생긴다. 힘든 일이 생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일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내가 정한다.

상황은 주어지지만 태도는 선택한다. 그 선택을 내가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태도는 내가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심이 다정함으로 표현될 때 조직은 조금씩 안전해진다. 한 사람이 다정해지면 옆 사람에게 전해진다. 두 사람이 다정해지면 팀 전체에 퍼진다. 팀이 다정해지면 조직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느리지만 확실하다. 조금씩, 조금씩.


마하트마 간디는 "당신이 세상에서 보고 싶은 변화가 돼라"라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세상에게 바꾸라고 요구하지 말고 내가 먼저 바뀌라는 것이다. 다정한 세상에서 살고 싶으면 내가 먼저 다정해지라는 것이다. 안전한 곳에서 일하고 싶으면 내가 먼저 안전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다정함은 가장 현실적인 변화의 시작이다. 거창한 운동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 시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부터, 지금부터, 내가 다정해지면 된다.

레프 톨스토이는 "행복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데서 온다"라고 했다. 이 말이 오해되기도 한다.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위해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읽는다. 다정함은 나를 소모시키는 친절이 아니다. 나와 타인을 동시에 살리는 선택이다. 내가 다정하면 상대방이 기분 좋아지고, 상대방이 기분 좋아지면 나에게도 좋게 대한다. 선순환이 생긴다. 주는 것 같지만 받는 것이다. 소모되는 것 같지만 채워지는 것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작은 선행은 큰 계획보다 낫다"라고 말했다. 대단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않는 것보다, 작은 것이라도 지금 당장 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현장에서의 작은 다정함 하나가 큰 사고 하나를 막는다. 동료에게 건네는 한마디가 동료의 컨디션을 확인하게 해 주고, 그것이 실수를 막고, 그 실수가 사고였을 수도 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막는다. 그래서 작은 것이 중요하다.


나는 안전관리 책임자로서 거창한 영웅담을 믿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영웅이 위기의 순간에 등장한다. 모든 것이 불타오르고 있을 때 영웅이 뛰어들어 사람들을 구한다. 멋있다. 감동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영웅이 아니다.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위기가 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불이 나기 전에 불씨를 끄는 것이다. 사고가 나기 전에 사고의 싹을 자르는 것이다. 그것은 화려하지 않다. 영화로 만들면 재미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안전이다.

대신 나는 매일 반복되는 태도를 믿는다. 웃으며 출근하는 것. 현장에 도착해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는 것. 동료를 만나면 인사하는 것. 서로를 살피며 일하는 것. 이상한 것이 있으면 말하는 것. 컨디션이 안 좋으면 조심하는 것. 그리고 저녁에 무사히 퇴근하는 것.

이것이 영웅담인가? 아니다. 이것은 그냥 평범한 하루다. 하지만 이 평범함을 지키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일이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함 속에 안전이 있다.


그 평범함을 지키는 힘이 다정함이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서로를 살피고, 서로를 챙기는 것. 대단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저 방향을 정하고 실천하면 된다.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그 한마디가 그 사람의 기분을 조금 좋게 만들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랬을 수도 있다. 나처럼 그 사람도 기분이 좋아졌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 후배에게 "오늘 얼굴이 밝아 보인다"라고 했다. 그 말이 후배의 하루를 조금 바꿨을까. 모른다. 하지만 그랬을 수도 있다. 그 한마디가 후배의 자신감을 조금 높였을 수도 있다.

현장에서 작업자에게 "오늘 컨디션 어때요?"라고 물었다. 그 질문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누군가 나를 살펴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 기분이 다음 선택을 바꾸고, 그 선택이 결국 사고를 예방한다면. 내가 건넨 한마디가 그 연쇄의 시작이 된다면.

이보다 현실적인 안전 대책이 있을까. 거창한 것이 아니다. 비싼 것이 아니다.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저 한마디다. 그 한마디가 모여서 문화가 되고, 문화가 안전을 만든다.


다정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동시에 전략이기도 하다. 안전은 기술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갖추고,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어도, 결국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의 태도로 유지된다. 다정함은 그 태도를 만드는 선택이다.


매 순간 우리 앞에는 선택지가 있다. 다정하게 대할 것인가, 무심하게 지나갈 것인가. 인사를 건넬 것인가, 눈을 피할 것인가. 관심을 가질 것인가, 신경 끌 것인가.

어느 쪽을 택해도 당장 큰 차이는 없다.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큰일이 나지 않는다. 무심하게 지나간다고 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작은 선택들이 쌓인다. 쌓여서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여서 태도가 되고, 태도가 쌓여서 그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여서 조직이 되고, 조직의 태도가 문화가 된다.


다정한 사람으로 살 것인지, 무심한 사람으로 살 것인지. 결국 선택의 문제다. 오늘 하루,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은 연습으로 단단해진다. 처음에는 어색하다. 평소에 인사를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인사하기 어렵다. 관심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관심을 갖기 어렵다. 하지만 연습하면 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하면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면 자연스러워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도 좋은 방향으로 살겠다고 생각한다. 출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한다. 회사에서 동료들을 살핀다. 현장에서 작업자들의 안부를 묻는다. 퇴근하면서 오늘 잘된 일을 떠올린다.

쉽지 않은 날도 있다. 짜증 나는 일이 생긴다.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런 날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연습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다정하게.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방향만 맞으면 된다.

하루의 연습이 쌓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쌓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쌓여 일 년이 된다. 그 사이에 나는 조금씩 달라진다. 더 다정한 사람이 된다. 더 좋은 기분으로 사는 사람이 된다.

그 연습이 쌓여, 우리를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을 나는 믿는다. 나 혼자만이 아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 우리 모두를.


오늘 하루, 조금 더 부드러운 말 한마디를 건네도 괜찮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말은, 생각보다 현장에 잘 어울리는 문장이다.

다정함은 선택이다. 오늘, 그 선택을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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