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이란 자신이 그것을 위험으로 인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 워런 버핏
노동조합 사무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근데 느낌이 싸하다
"네 사무국장님"
"박 팀장님 품질팀 A 씨가 노동조합 사무실로 왔는데 박 팀장님이랑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바꿔 줄 테니깐 통화 한번 해보세요"
"안녕하세요 박 팀장님 품질팀 A입니다." 회사 내에서도 성격이 시원시원하기로 알아주는 A 씨라 목소리도 우렁차다.
"네 어쩐 일로 저랑 통화를 하고 싶다는 거예요? 무섭네?!"
"다른 게 아니라 오늘 건강보험공단에서 제 폰으로 전화가 왔어요.
제가 작년 12월에 회사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식당에서 나오다가 다리를 접질려서 인대가 끊어졌던 적이 있거든요. 병원을 다음 날에 갔는데 검사를 해보니깐 인대가 끊어졌으니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해서 휴직을 하고 수술을 했었죠?! 그리고 며칠 깁스를 하고 다녔던 적이 있어요. 제 개인적으로 다쳤다 생각하고 알아서 처리를 하려고 의료보험으로 병원비를 납부하고 개인 실비 보험도 탔어요. 일단 이렇게 정리가 다 됐어요.
근데 방금 말했듯이 건강보험공단 K팀장이라는 사람이 전화가 와서는 회사에서 다쳤으니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근로복지공단에 문의를 해보니 회사에서 일하다가 다치지 않았더라도 회사에서 걷다가 다친 부상도 산재 승인이 된다고 하니 저보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하라고 하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될지 해서 박 팀장님이랑 통화를 한 거예요."
"아니 작년에 회사에서 걷다가 발을 접질렸다고요? 왜 저한테 얘기 안 한 거예요?!
제가 안전교육시간에 누누이 말했었잖아요. 조금이라도 다치면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다 보고하라고. 왜 말 안 한 거예요?!"
"이게 제가 어찌 됐든 잘못 걷다가 다친 거고 큰일 아니다 생각했어요."
"그건 나중에 일단 얘기하고 그래서 만약에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안 하면 어떻게 한대요?"
"음.. 제가 다친 경위를 토대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하라는 공문을 저한테 보낸다고 하는데, 만약에 제가 요양급여 신청을 안 하면 의료보험으로 처리된 금액을 저한테 청구한다고 하더라고요. 한 200만 원 정도?! 박 팀장님 이거 어떻게 해야 돼요?"
"저도 모르겠어요.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라 근데 건강보험공단에서도 6개월도 지난 일을 이제 와서 무효화하고 금액을 청구한다는 거는 회사에서 A 씨가 다쳤고, 산재 신청을 하면 무조건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한걸 거예요. 건강보험공단에서 나갈 필요가 없는 돈을 쓴 거니 돌려받으려고 하는 거죠. 일단 제가 건강보험공단 K부장이라는 사람이랑 통화 한번 해볼게요. 전화번호 좀 전달해 주세요."
"네 박 팀장님"
전화를 끊었다. 한숨이 나온다.
오늘 저녁에 오랜만에 술 약속이 있어서 기분 좋게 퇴근하려고 컴퓨터 정리 중이었는데, 내 싸한 느낌이 적중했다. 업무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미 모든 일들이 그에 맞는 원인들로 인해 벌여졌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인정하고 초연하게 벌어진 일들을 하나하나 끌어모아 수습하면 된다.
건강보험공단 K부장에게 전화를 하기 전에 A 씨의 일을 내가 다 이해하는 것이 먼저였다.
'왜 다치게 되었는지, 왜 보고를 안 했는지, 조용하게 처리할 거면서 왜 회사에서 다쳤다고 병원에서 이야기를 했는지 등'
일단 품질팀 관리감독자와 팀장에게 이 일을 공유하기 위해 품질팀 사무실로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를 하자마자 모든 것이 품질팀 직장님(관리감독자)때문에 해결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날 A 씨가 통신 공장 옆 뒷 공터에서 작업자들끼리 임의로 만든 족구장에서 족구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가 공이 굴어오길래 그걸 주우러 가다가 발을 접질렸다고 해서 다친 걸로 기억하는데?! 왜냐하면 A 씨가 족구라도 했으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다친걸 너무 억울해했던 기억이 선명하거든"
"직장님..... 감사합니다"
그래 사실은 A가 족구를 하러 준비하다가 공이 오는 걸 보고 가지러 가다가 다친 거다. 노동조합은 당연히 A가 족구 하다가 다친 걸 알고도 모른 척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고 알아서 처리해 주기를 바란 듯이 던지기만 한 것이다. 그저 A와 노동조합의 말만 오로지 믿고 건강관리공단에서 요구한 대로 A 씨를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요양신청서를 제출했다면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바보같이 회사만 아니 나만 당한 것이다.
건강관리공단에 전화를 했다.
사실은 직원 A 씨가 식당에서 나오다가 접질린 게 아니라 회사 외부에 작업자들이 임의로 설치한 족구장에서 족구를 하다가 다쳤는데, 이건 산재에 해당되지 않을 거 같다고 솔직하게 얘기를 하니 그쪽에서도 당황을 적잖이 하더니 사고 경위서를 다시 작성해서 팩스로 보내달라고 한다.
나는 믿음을 존중하지만 사실 우리를 가르치는 것은 의구심이다.
안전에 있어서 특히 그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스스로 이해를 하고 난 다음 사실을 바탕으로 믿어야 한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 '우문현답(愚問賢答)'은 사실 나는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의미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