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사는동안 행복한 순간들 중 손에꼽는 하나가 바로 한국에서 날아온 택배를 받는 것이다. 이민 초기엔 음식할 때 사용하는 비닐장갑부터 아이들 속옷까지 구지 한국에서 주문해 받았는데 이젠 웬만한건 이곳에서 다 구할 수 있고, 어디가면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는지 알기에 한국에서 택배주문을 넣을 일이 별로 없다. 두 달에 한번정도, 내가 한국에서 주문을 할 때는 아이들이 읽을 한글 책이나, 한국 온라인쇼핑몰에서 구입한 옷들이 전부이다.
내가 스스로 주문해서 받는건 이정도이지만 간혹 우리 시어머니는 짧게는 한 달에 두번, 길게는 두 달에 한번정도 우리에게 택배를 보내신다. 어떤 때는 사은품으로 받으셨는데 쓸 데가 없는 후라이팬 세트나 냄비세트, 어떤 때는 겨울이불, 여름이불, 가끔씩 건어물, 그리고 옷이다. 아이들 옷은 아무래도 한국과 이곳의 스타일이 많이 다르기도 하고, 사이즈를 몰라 이제 더는 사서 보내지 않으신다. 문제는 남편과 나의 옷이다.
"찐주야~ 이번에 내가 너랑 아들거 옷 좀 보냈다."
"어머 어머니~ 감사합니다. 잘 입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남편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이번엔 또 어떤 옷이 오려나..
꽃무늬? 50대 아저씨같은 옷?
한국에서 보내주신 어머니의 택배에는 어머니의 정성이 한가득이다. 남편과 나는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있다. 옷을 보내실 때도 결코 하나씩 보내시는 법이 없고 내 것 3~4벌, 남편 것 3~4벌. 가격표가 붙어있는 옷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가격에 이렇게 많은 옷을 사기위해 돈을 지불하셨을텐데 우리가 입을 만한 옷이 없네.. 남편의 겉옷은 팔길이가 짧고, 내 옷은 50대 아주머니가 입을실 수 있을 것 같은 스타일 등등이다. 한번 입어서 사진을 찍어 어머니께 보내드리고나면 그 많은 옷들은 가격표가 붙은 채로 내가 따로 어머니께 받은 옷을 모아두는 큰 상자 안으로 곱게 접어 들어갈 예정이다. 그렇게 쌓인 커다란 상자만 가득 2상자가 되었다.
건어물은 또 어떤가.
"찐주야~ 이번에 내가 말린 멸치랑 새우랑 이것저것 쪼끔 사서 보낸다~"
"어머니~ 그럼 혹시 삼각김밥김도 구할 수 있을까요? 저희 그거 한봉지만 보내주세요."
"삼각김밥김? 오케이 보내줄게"
"어머니~ 감사해요. 잘먹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나는 말한다. 이번엔 또 얼마나 보내실까?
절대 선박택배를 이용하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택배는 그 비싼 비행기를 타고 1주일 안에 우리집에 도착한다.
상자를 열자 5개들이 김봉지가 나란히 보인다. 그걸 꺼내자 또 보이는 5개들이 김봉지 2개. 그걸 꺼내자 또 보이는 5개들이 김봉지 2개. 모두 10봉지. 낱개로 50개가 왔다.
5개 들이 김봉지가 끝나자 그 아래 깔려있는 삼각김밥김 20봉지. 와우.
건어물은 멸치를 크기별로 2종류 각각 3묶음씩. 말린새우 3묶음. 미역도 종류별로 돌미역, 무슨 미역, 무슨 미역 커다란거 3봉지. 다시마 2봉지. 와우.
상자에서 꺼내는 내내 나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다참다 푸하하하하 웃고 만다.
이걸 다 어떻게 하라는건지.. 나도 모르게 어머니께 바로 전화를 건다.
"어머니! 이거 정말 너무너무 많아요..."
"아이구 너희 가족이 5명인데 그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니?"
그렇게 생각하셨구나.... 나눠먹으라는게 아니고 이정도 필요하실 거라고 생각하신거구나..
이걸 다 어쩐담..
결국 나는 어머니께 또한번 감사히 잘 먹겠다고, 냉동실에 두었다가 두고두고 열심히 먹겠다고 말씀드리며 전화를 끊고 다급히 쇼핑백 여러개에 어머니께 받은 물건들을 남아담는다.
이건 누구주고, 이건 누구주고, 이건 누구줘야지.
어머니가 보내주시는 택배의 문제점은 너무도 고급지다는 것이다. 옷도 고급지고, 건어물도 하나하나 비싼걸로만 사서 보내신다. 가끔은 스카프와 손거울, 정장에 입는 양말도 보내시는데 매일 후드티만 입고사는 나와 남편은 정말이지 쓸래도 쓰지 않는 물건들이다. 멀리 떨어져사는 하나뿐인 아들네에 가장 좋은걸 보내주시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라 항상 감사하다. 하지만 그 감사함을 넘어서 실제로 우리가 먹고 입는 것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창고에 쳐박혀 있는 옷들을 가끔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민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중고로 팔 수도 없고, 그냥 지인들에게 나눔을 하자니 나눠 줄 사람도 없고.. 먹는건 어떻게든 나눠 먹겠는데 쌓여만 가는 이 수많은 물건들을 어쩐담..
두려운 것은, 지금은 어딘가에 쌓아두고 있지만 언젠가 짐들을 정리해야 할 때, 이 모든 물건들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까봐. 그것이 가장 두렵다.
어머니의 기쁨인 택배보시는 일에 좋다 싫다 말할 수 없으니, 감사하게 받되 어머니 모르게, 그리고 남편이 상처받지 않을 방식으로 주변에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생각해봐야겠다. 캐나다는 이미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준비에 한창이다. 특히나 도네이션을 많이 받고 있고, 학교나 교회에서도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에 한창인 모습이다. 우리집에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손색없는, 상자에 곱게 쌓여진 고급진 선물들이 많으니 이 물건들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