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면 무소식으로만 살고싶은 딸
나에겐 엄마와 아빠가 있다.
엄마와 아빠가 있다는건 딸인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종종 생각한다.
반대로 엄마와 아빠에게 딸이 있다는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도 종종 생각한다.
내 나이가 36살이고, 부모님이 이제 막 환갑이 지나셨으니 우리모두 아직은 젊다.
60세 엄마아빠와, 타지에서 아이를 셋 키우고있는 딸.
누가 누구를 더 위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종종 생긴다.
나는 관심이 고프다. 단 한번만이라도 받아봤으면.
준 적도 없는데 나에게 관심 많다는 엄마아빠. 이젠 받은적도 없는 관심을 받은 것처럼 보여야 하는건가 싶다.
아이들 키우는데 힘들진 않은지, 외식하기도 어려운 이곳에 살면서 무얼 해먹고 사는지, 아픈덴 없는지, 캐나다에 살기는 요즘 어떤지 등등.. 나에게 물어봐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부모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소식이 희소식
우리 아빠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 말 따라 딸이 무소식을 보내니, 아빠는 그걸 희소식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이것도 종종 궁금하다.
자주해야 한달에 한번정도, 그것도 마치 해야만 하는 숙제를 하듯 영상통화를 걸면 우리아빠는 늘 언제나 똑같이 이렇게 말한다.
"어~ 안그래도 막 전화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런 거짓말을 전화 할때마다 하면 민망하다는 생각은 안드는걸까? 생각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말하는 아빠.
한참 통화 후 전화를 끊을 땐 "자주 좀 전화해."한다. 아무래도 가장 마지막이 한 말이 진심이겠거니. 한다.
그런데 나는 '전화하고싶지 않은데 전화를 뭐하러해? 여기랑 한국이랑 시차때문에 나도 내 스케쥴대로 살다보면 시간 놓치는 날이 다반산데, 내가 한국에 전화할 시간까지 따로 빼놔야 하나?' 싶다.
마음이 가지 않는 전화. 시간도 아깝고 노력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한국을 방문하는 동생네를 통해 구지 마음에도 없는 엄마아빠의 선물을 하나씩 샀다.
마음에도 없는데 선물을 사느라 쓰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이 선물은 엄마아빠를 위한게 아니라 나를 위한거라 생각하며 샀다.
나도 할만큼 했다고 언젠가 말하기 위해.
마음은 없어도 나중에 너가 엄마아빠위해 한게 뭐있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보여주기식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철저하게 나를 위한 선물이었고, 역시나 고맙다는 인사는 받지 못했다.
나를 위한 선물이었기때문에 고맙다는 인사를 못받았어도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데 사람 마음이 또 그렇지가 않다.
그럼 그렇지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이, 엄마아빠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받고도 선물 잘 받았다는 문자한통 남기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언젠가 내가 또다시 밀린 숙제를 하기위해 전화를 걸면 분명 이렇게 말하겠지.
'안그래도 막 전화하려고 그랬는데. 아 맞다! 선물 잘 받았다 딸아!' 하고. 무려 선물을 보낸지가 한달인데.
그럼나는 또 못이기는척 아 응.. 잘 받았다니 다행이네. 하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밷겠지.
평소에 엄마아빠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던 내가 동생을 통해 선물을 보낸다니 우리남편은 옆에서 내가 마음이 좀 누그러졌나 했다고 말했다.
"그래보였다면 오해야. 그러게.. 내가 너무 선물을 열심히 고르긴 했네.."
나는 내가 그분들 딸이어서 딸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그런 멍청한 소리는 하고싶지않다.
엄마아빠가 먼저였어야지. 내가 딸인데. 나는 모든게 서툴었는데. 엄마아빠가 먼저 연락하고 도와줬어야지. 시종일관 방관만 했는데, 그런데 내가 딸이란 이유로 나는 다 해줘야해? 이해해줘야해? 내가 먼저 이해받고싶어. 내가 딸이니까. 내가 우리 딸을 낳아보니까 그렇던데! 딸이 먼저지!
어린애 같다고 생각해도 별 수 없다.
다 큰 어른이 징징댄다고 해도 별 수 없다.
그 정도의 관심은 보여줘야 나도 엄마아빠의 남은 인생을 한번쯤 신경써줄텐데 말이다.
서운함이 서운함을 안고 무관심에 이른 지금에도 무관심하지 않은척 코스프레하고 있는 그대들과 나의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서로 할 이야기만 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지금이.
우스운 가족.
나에게 받은 선물에 고맙다고 말한마디 안하는 부모에 대한 실망이 내 마음에 또 한 칸 자리잡았다.
우리딸은 이해할거라며, 지금것 스스로 저렇게 잘 살았으니 우리딸은 앞으로도 잘 할거라며. 나를 그런식으로 응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응원이 아니라 방관이라는걸 알았으면 좋겠다.
부모에게 먼저 왔으면 좋았을, '선물 고맙다'는 이 다섯 글자가 안와서 나는 오늘도 내 부모의 딸이 아닌 내 아이의 엄마로 살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