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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intta Oct 31. 2018

우주를 가르는 노스탤지어 #06

81일

나는 침대에 누워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 허.... ㅓ.....ㅎ...ㅓ....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온몸에 들어간 힘을 빼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이렇게 죽어도 상관없어>
<이게 모두에게 좋은 결말이야>


나는 죽음에 저항하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그 죽음의 사자는 날 그냥 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석은 하얀 죽음의 손길로 내 가슴에 꾹꾹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뚱뚱한 털뭉치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얀 털뭉치는 비열한 눈빛으로 나를 경멸하고 있었다. 


- 빠~ 앙 -

트럭의 경적소리에 저주는 풀려버렸다.
- 하아... 하아...

한 손으론 그것을 치울 수 없어 두 손으로 그것을 집어 들고 창가에 섰다.
마도가 트럭 앞에 서서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 하얗고, 뚱뚱한 털뭉치를 들어 보였다.

현관문을 열고 마도와 마주했을 때 그녀석은 이미 트럭에 올라타 있었다.
마도는 내게 물었다.

- 아즈라엘과 많이 친해졌나 봐요
- 나를 죽이려 했어요
- 설마요


마도는 웃으며 기분 좋아했다.
분명 그 녀석은 명부에서 내 이름을 지우고 싶었던 거다.

마치 나의 과거를 알고 있는 듯이.



85일 

나는 띵한 머리를 움켜쥐고 잠에서 일어났다.
그녀석은 보이지 않았지만 털은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오늘은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날이었다.
이 마을의 공식적인 휴일이라 마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1층으로 내려가 보니 보누치 씨가 준비해둔 요리들이 보였다.
으깬 감자와 빵, 커피, 우유 잔은 비어 있었다.
커피를 데우고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그때 보누치 씨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나는 그에게 포크를 들어 인사했다.
그는 부스스한 내 몰골을 보더니 말했다.


- 오늘은 평소보다 더 늦었군요
- 예 뭐....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집 여기저기를 청소하는 동안 나는 내 방의 털들을 제거했다.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쫓아 창고로 내려가니 보누치 씨가
낡은 수레와 씨름하고 있었다.
나는 보누치 씨를 도와 수레를 구석으로 옮겼다.
꽤나 힘에 부쳤는지 보누치 씨는 땀이 흥건했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셨다.
- 탈영병이라고 하던데
- 예 
- 어느 쪽?


- 탈영병은 어느 쪽도 아니죠
- 그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지
- ....

- 내 아들도 군인이었소
- 사진으로 봤습니다

- 장교라 전쟁 초기에 참전해서 전사했지
- 벌써 3년 전 일이오

- 만약에 살아 돌아왔다면 당신처럼 매일 밤 악몽을 꿨을까?
- .....

보누치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새벽마다 아즈라엘을 방에 넣어두었소
- 아즈라엘이 악몽을 깨우는데 효과가 있더군
- 아....

- 저... 왜 이름이 아즈라엘이죠? 

- 아즈라엘의 의미를 알고 있나?

- 예.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 아랍 신화에 등장하는 천사죠

- 내가 믿는 신은 매우 관대한 분이요
- 그 눈을 보면... 그냥 

- 잘 어울리지 않나?

보누치 씨는 80여 일 만에 웃어 보이곤 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생각했다. 
이 마을에서 보누치 씨와 얘기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이제 내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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