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일
마도의 할머니는 창고 곁에 앉아 책을 읽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이 대신 책을 소리 내어 읽어드리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잠든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잠들었는지 아닌지는 오직 흔들의자의 움직임으로만 알 수 있었다.
가끔은 내가 그녀에게 책을 읽어 드렸다.
빨강머리 앤, 허클배리 핀 등 동화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녀의 의자가 멈추면 그녀의 어깨까지 조용히 담요를 덮고 물러났다.
그녀의 잠든 모습은 죽음과 구분되지 않았다.
가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기억은 자동차 와이퍼처럼 오락가락했다.
마도는 그녀의 기억이 돌아왔을 때는 거짓을, 그녀의 기억이 멀어지면 진실을 말했다.
- 마르코는 잘 있어. 빵집 아들 토토가 같이 있다고 편지에 썼어. 그러니까 울지 말고, 빵 드세요
- 사람들이 말했어. 마르코는 우주로 날아가 별이 됐다고. 그러니까 매일매일 볼 수 있다고
어느 날 미구엘이 달려와 말했다.
- 판 씨, 내일 본토에서 섬 시찰을 나올 거예요
- 그러니까 내일은 어디서든 눈에 띄면 안돼요
나는 2층 사무실에서 시찰관의 모습을 훔쳐봤다.
시찰관은 미구엘을 앞세우고 창고로 들어왔다.
제복 차림의 시찰관은 미구엘의 설명을 들으며 창고 구석구석을 살폈다.
- 이 곡선을 보세요. 물의 저항을 줄이려고 미끈한 곡선으로 만들었어요
- 이 날렵한 지느러미는...
- 방향타
마도가 살짝 거들었다.
- 그러니까 이 날렵한 방향타는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구요
- 이 잠수함은 최신형이라 안에 화장실도 있다구요
시찰관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우주선과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 그런데 꼬리 부분이 다른 잠수정 하곤 다르게 프로펠러가 없는 거 같은데?
- 아 프로펠러 그건....
마도가 나섰다.
- 이건 압축공기의 추진력으로 나아가는 방식이에요. 요즘 유행하는 거죠
- 예 요즘 유행이에요~
미구엘이 거들었다.
- 그러니까 물고기를 잡기 위해 만드는 거라고?
시찰관은 미심쩍은 듯 물었다.
- 예 그럼요
- 요즘은 물고기도 씨가 말라서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 한다구요
- 여기 봐요. 이 뚜껑에서 그물이 튀어나와 바닷속에서 끌고 다니는 거죠
- 게다가 물속을 볼 수도 있잖아요. 이건 엄청난 거라구요
마도와 미구엘은 씨익 웃었다.
- 근데 이걸 정말 니 아버지가 의뢰한 거라고?
- 예 그럼요. 이것 때문에 배하고 집도 저당 잡혔어요
시찰관은 미구엘을 빤히 쳐다보더니 손가락으로 미구엘을 불렀다.
그리고 둘은 창고 구석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놨다.
잠시 후 시찰관이 창고 밖으로 향했고, 미구엘은 그의 뒤를 좇았다.
시찰관은 나가던 중에 잠시 멈춰 서서 마을 사람들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했다.
토티 씨 등 사람들도 정중히 인사했다.
사람들은 모두 시찰관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마도는 문틈으로 엿보던 나에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손짓을 했다.
나는 오후 내내 사무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사무실에 있던 사진들을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었다.
비행기 앞에서 찍은 사진, 자동차, 알지 못할 기계들,
그리고 마도와 마르코, 그들의 친구들.
왠지 서글퍼 보이는 사진도 한 장 있었다.
- 입대한 날 찍은 사진이에요. 모두 18명이죠
어느 틈에 나타난 마도가 뒤에서 설명해 주었다.
미구엘도 함께 들어왔다.
- 중간에 앉아있는 2명이 우리 형들이에요
- 디노, 치로
- 디노, 치로
나는 그들의 이름을 되뇌었다.
- 자 그러니까
미구엘은 마도의 의자에 털석앉으며 말했다.
- 그 시찰관은...
- 또 아이가 생겼대요. 그러니까...
- 돈이 더 필요하다는 거군
미구엘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 잠수함이든 우주선이든 상관없대요. 그래도 일단은 잠수함으로 입을 맞추자고 했어요
- 혹시 모르니까 프로펠러는 하나 준비해 두라고 하더라구요
- 생각보다 눈치 빠른 시찰관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