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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intta Nov 10. 2018

우주를 가르는 노스탤지어 #09

135일

안젤리니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마도가 옮길 짐이 있다고 풍차에서 기다린다고.
나는 그녀의 냉대를 무신경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이발소 알레그로 씨의 자전거를 빌려 풍차로 향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조금 남은 푸른빛 사이로 풍차의 실루엣이 보였다.
곧 마도의 트럭도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살폈지만 마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위에서 불빛이 보였다.
그녀가 던져준 손전등을 받아 들었을 때 마도는 내게 말했다.
- 올라와요

손전등 불빛에 드러난 풍차 안은 나무들과 밧줄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었다.
마치 거인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계단을 따라 올랐을 때 마도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검은 숲 사이로 가라앉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사벨라가 내가 기다린다고 했나요?
- 예 풍차에서
- 미안해요. 여자애들은 가끔 이상한 장난을 치거든요
- 그럼 당신은 어떻게?
- 당신이 풍차에서 기다린다고 하던데요
- 우리 둘 다 속은 거네요


- 글쎄요...
마도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손전등 좀 꺼줄래요?

마도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니 불을 밝혔다.
자그마한 등불,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

- 이사벨라가 준비한 거예요
- 남기지 말고 다 먹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는 와인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 이 와인은 내가 준비한 거예요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나의 시선을 흘려보내곤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서로 마주 앉았다.
잔에 채워진 와인은 등불로 인해 더욱 붉게 보였다.

- 이 풍차는 우리들의 비밀장소예요
- 여기에 숨어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곤 했죠
- 다락방 귀신이라던지, 유령선을 타고 다니는 해적들....
- 누군가의 연애 얘기와 바람핀 남자에 대한 복수
- 마르코가 없을 때는 그의 험담도 많이 했어요
- 바람기가 많다거나 바지에 손을 집어넣는다거나....


그들의 지난 시간이 먼지처럼 이곳에 쌓여 있었다. 
나는 이 풍차 안에서 그들이 보냈을 시간을 생각했다.
꼬마가 어른이 되어가는 그 시간을 간직한 채, 풍차는 타임캡슐처럼 변함없이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시간의 주인이 돌아오면 다시 꺼내 볼 수 있도록.

그녀는 말없이 풍차 안의 어둠을 바라봤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어떤 기억을 건져내고 있을까?>

그녀는 웃으며 물었다.
- 무슨 생각해요? 
- 당신이 떠올리는 그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
- 풋 


그녀는 엄지와 검지의 좁은 간격을 보여주며 말했다.
- 그는 이 곳에서 아주 작은 추억일 뿐이에요

그녀는 잔을 비우고 말을 이어갔다.
- 그 남자는 다른 곳에서 왔어요
- 당신처럼


마도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저 흔한 여행자였죠
- 갑자기 나타났다 어느 순간 떠나버리는....


그녀는 등불을 껐다.
노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도의 옆모습만 어렴풋이 구분할 수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내 시선을 빼앗았다. 
왠지 그녀의 형태가 기억하던 것과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어떤 말로 지금의 우리를 규정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마도는 얼굴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 이제 잘 보이죠?


그녀의 얼굴은 칼륨에 반응하듯 미세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 저 별들... 이요
- 아...


그녀는 다시 창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 별들은 죽은 자들의 무덤이라고 하죠
- 그들은 별이 되어 산 자의 길을 인도한다고


별들은 점점 또렷해졌다.

- 당신도 누군가의 인도를 받고 있나요?

- .....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은 감시하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저들은 나를 과거로부터 달아나지 못하게 하죠

- 나는.....


<당신은 날 용서할 수 없을 거야>




마도는 내 볼을 닦아주며 말했다.

- 나도 당신과 함께 우주로 가고 싶어요

나의 볼을 덮은 마도의 손, 그 위에 내 손을 포갰다.
<어쩌면 그들이 나를 마도에게 인도한 걸지도 몰라> 

그녀의 눈은 물기를 담고 있었다. 
<마도의 곁에 남아주길 바랄지도 몰라>



나는 그녀의 손을 내 볼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그녀 앞에 펜던트를 꺼내 놓았다.

녹아내리고, 뜯긴 채로 남겨진
- 12개의 펜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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