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며, 그녀는 말했다.
- 기계에 익숙한 손은 아니네요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대답도 없이 종이를 건네는 나를 그녀는 미심쩍은 듯이 바라봤다.
하지만 곧 그 종이를 받아 펼쳐보았다.
그녀는 한참 동안 종이에 그려진 도면을 확인했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다 물었다.
- 언제까지 가능하죠?
마도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대답했다.
- 이거 꽤 비싸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 사람도 여럿 필요하고요
- 그리고?
- 왜 우주선이 필요한 거죠?
-그것도 견적에 필요한가요?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구하기 어려운 부품들이 있어요
- 까다로운 부분들도 여럿 있고....
- 150일, 어때요?
나는 재차 일정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 음.....
- 좋아요
- 다만, 조건이 있어요
- 당신도 도와야 할 거예요
- 이 마을에 젊은 남자는 당신뿐이니까
그녀는 일어나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일어나 그녀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4일
전쟁은 길어지고 있었다.
이 마을의 청년들도 몇 해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한가로운 마을이지만 어딘가 무거운 공기가 깔려 있었다.
아무도 그 청년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탈영병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그들은 내게 어느 편이었냐고 묻지 않았다.
난 그들에게 '판'으로 불러달라고 말했다.
- 빠~ 앙 -
- 빠~ 앙 -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힘겹게 일어났다.
오랜 시간을 누워있었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이 곳에 온 이후에도 종종 악몽을 꿨다.
그리고 그때마다 잠옷 여기저기에 흰 털이 들러붙어 있었다.
나는 창가로 다가갔다.
마도가 트럭 앞에서 크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보일 리 없겠지만.
파란 하늘, 들판, 나무들, 그 풍경을 비추는 호수.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혹시 이곳은 시간이 멈춘 게 아닐까>
- 빠~ 앙 -
- 아직도 자고 있는 건 아니죠?
그녀는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
- 요즘 같은 때에 돈은 휴지조각에 불과해요
- 그리고 이런 시골이라도 무허가 우주선을 만드는 건 보통일이 아니죠
- 부품값만 필요한 게 아니라고요
- 돈이 더 필요하단 얘긴가요?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 지금 금액으론 뜨게 할 수는 있어도 착륙하게 할 수는 없어요
- 돌아오고 싶지 않다면 상관없지만요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 쫌생이
나는 그녀의 단어가 트럭 뒤로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봤다.
노인 몇이 마도의 창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여기 이발사 알레그로 씨, 제빵사 피를로 씨, 바느질의 대가 모니카 할머니, 조수 토티 씨
노인들이 모자를 벗으며 내게 인사했다.
나도 모자를 벗어 인사했다.
- 이쪽은 우리의 고용주예요
트럭에 실려 있던 짐의 대부분은 내가 운반해야 했다.
우리는 창고 여기저기서 각자의 몫에 몰두했다.
시간이 되면 노인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우고, 그 자리를 다른 노인들이 대신했다.
해가 질 때쯤 우리는 일을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마도는 나를 언덕 위의 집으로 바래다주었다.
- 요즘 같은 때에는 본업만으로는 생활하기 힘들어요
- 마을 사람들 모두 당신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 그러면서도 고마워하고 있어요
-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 간만에 찾아온 물주니까요
- 혹시 잠수함 같은 건 필요 없나요?
나는 그녀의 문장이 트럭 뒤로 떠내려가는 것을 바라봤다.
마도는 짧은 길을 가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말들은 트럭의 긴 꼬리가 되어 우리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하늘은 점점 별들이 채워갔다.
15일
언제부턴가 마도의 창고는 마을 사람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다.
한편에선 아이들의 뛰어다니고, 어떤 이들은 체스를 두고 있었다.
몇몇 노인은 책을 읽거나, 둔탁한 소리를 연주삼아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고용인들은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그만큼 마을 사람들은 내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참 선형적인 방식의 관계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