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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intta Oct 20. 2018

우주를 가르는 노스탤지어 #03

25 일

이 마을 사람 중 가장 젊은 청년은 14살의 미구엘이었다.
그의 부모가 징집관에게 뇌물을 주어 간신히 징집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이미 2명의 형이 군에 있던 것도 징집관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가장 젊은 만큼 미구엘은 이 마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새벽에는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오후에는 집들을 수리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로 본토에서 물건과 소식을 전해주는 일을 도맡았다.

미구엘은 우주선의 부품 조달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와 마주칠 때면 미구엘은 유압기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둥, 

관료들이 깐깐하게 군다는 등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때마다 나는 돈을 얹어 주었다.

그렇게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미구엘이 빼놓지 않는 일과는 점심에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것이었다.
미구엘은 이 마을에서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축구에 있어서는 정말 젬병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는 컸지만 느리고, 발기술이 서툴러 수비의 한 구석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편이 골을 넣었을 땐 가장 격렬하게 세리머니를 즐겼고, 골을 먹히면 가장 분노하며 자책했다.
나는 가끔 마도의 허락을 얻어 아이들의 축구경기에서 심판을 봐주었다.
나의 운동능력도 젬병이라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것만으로 녹초가 되곤 했다.

가끔 미구엘은 내 판정이 공평하지 않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 아~씨 판 씨, 똑바로 좀 보라구요
- 말도 안 돼~ 판 씨, 쟤가 밀었다구요  
- 판 씨, 이 상처 봐요. 내가 피해자라구요


나는 그가 징징댈 때마다 옐로카드를 남발했다.
하지만 이 동네만의 룰이 있었으니, 옐로카드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레드카드는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전에 레드카드를 받았던 사례가 있었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떼창 하듯 소리 질러 대답했다. 
1년 전에 화가 난 미구엘이 축구공을 멀리 걷어찬 적이 있었는데, 결국 공을 찾지 못해 레드카드를 받았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던 축구공을 잃어버렸으니 어차피 축구는 한동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구엘이 본토에서 축구공을 구해올 때까지 아이들은 시합 시간에 축구공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 특이한 룰이 생긴 이유는 당연하게도 모두가 같이 축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재미없으니까- 

라고 아이들은 말했다.



우주선 제작은 더디게 진행됐다.
대부분은 부품을 구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미구엘은 그때마다 앞장서서 본토의 거래처 상인과 관료들에게 욕을 하곤 했다.
미안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나에게 책잡히기 싫어 그러는지 아무튼 능숙한 장사꾼이었다.

일이 멈출 때면 우리는, 
그러니까 고용주인 나와 고용인들인 마을 사람들은 가능한 한 트럭에 몸을 싣고,
근처 해변이나 호수에 가서 피크닉을 즐겼다.
마도와 마을 사람들은 내 주위에 모여 나를 즐겁게 해 주려 애썼다. 
쉬는 날에도 일당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다.
심지어 마도의 조수인 토티 씨는 내 흥미를 끌기 위해 자기 엉덩이에 있는 점이 

내 옆모습을 닮았다며 보여주려 했다.
다른 이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뜯어말렸다. 
이미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점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들과의 일상이 꿈처럼 느껴졌다. 
기억에만 조금 남은 이미 지나간 조각들처럼.
나는 나만이 느끼는 이들과의 거리를 감추기 위해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35일
 
부품이 도착한 이후 작업은 늦게까지 계속됐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 마고는 늦은 밤까지 일에 몰두했다.
선체 일부에 강도가 높은 카르빈 금속을 사용했는데, 공정이 까다로워 마도만이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일을 마칠 때까지 나는 창고 안에서 잡다한 일들을 찾아다녔다.
마도가 작업을 끝내고 다가왔다.

- 기다리게 했네요 
- 야근을 말릴 입장이 아니라서요
- 차 한잔 할래요?
마도는 나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우리는 창고에 딸린 조그만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 당신은 뭐든 거절하는 법이 없네요. 부탁은 모든 들어주고, 불평도 없고
- 거절할 만한 일은 없었으니까요
- 그런가요? 우리가 말리지 않았다면 토티 씨의 엉덩이를 볼 뻔했잖아요
- 그건.... 다행이네요
- 우주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 보통 그런 물주들이 나중에 말을 바꾸곤 하죠
마도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 당신은 비밀이 많은 사람이에요
- 돈 많은 탈영병이 우주선을 원하는 경우는 흔치 않죠

나는 대답을 미룬 채 책상에 올려진 사진을 바라봤다.


어떤 남자와 마도가 함께 있는 사진이었다.
둘은 같은 펜던트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때 미세하게 공기의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그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거대한 불빛이 떠올랐다.
목을 긁는 듯한 소리가 멀리서 다가왔다.
빛은 사무실 안까지 침범해 들어와 우리의 모습을 환하게 드러냈다.
마도 그리고 나도 얼어붙은 듯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마도는 주문을 외듯 말했다.

- 밤의 태양

<실렌티오>
난 속으로 말을 삼켰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나와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 빛은 한동안 머물다 옅게 퍼지며 우주로 흩어졌다. 

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하늘은 다시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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