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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intta Oct 24. 2018

우주를 가르는 노스탤지어 #04

36 일

토티 씨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오늘 출근한 사람은 토티 씨뿐이었다.
알레그로 씨, 피를로 씨, 모니카 할머니 모두 보이지 않았다.
마도는 트럭에서부터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평소와 다름없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토티 씨는 평소 같지 않은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설명했다.
이 동네 젊은이들은 모두 동부의 한 지역에 배치되었다.
6개월 전 밤에 어제처럼 폭발이 일어나고, 그들로부터 모든 소식이 끊겼다.
토티 씨의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마을의 침묵은 아이들이 깨웠다.
이틀이 지나 아이들은 다시 공을 찼다.
평소처럼 열심히 공을 쫓으며 아우성쳤다.
하지만 무거운 분위기는 남아있었다.
그들은 어딘가에 웃음을 두고 온 것 같았다.

미구엘은 말했다.
- 정부에서는 그들을 행방불명자로 분류했지만 그저 위로금 떼먹기 위한 꼼수예요
-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죠. 그들이 돌아올 수 없다는 걸
- 하지만 그게 휩쓴 곳은 유품 같은 것도 남지 않으니 행방불명과 다를 게 없죠
- 판 씨, 가끔은 말이죠. 형들과 지냈던 게 내 상상이 아닌가 하고 헷갈릴 때가 있어요
- 원래 없었던 일인 것처럼요


52일


언제부턴가 마도의 트럭이 집 앞에 서면 그 하얀 녀석은 육중한 몸을 날려 짐칸에 올라탔다.
사람들은 그 고양이를 아즈라엘이라고 불렀다.
집주인 보누치 씨가 그렇게 불렀기 때문인데 사람들은 그 이름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랍 신화에서 아즈라엘은 죽음의 천사로, 항상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며 태어나는 이의 이름을 적고, 죽는 이의 이름은 책에서 지워버린다.
이 녀석의 눈은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사람의 삶과 죽음을 판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멋들어진 이름을 가졌지만 나는 그냥 -그녀석- 이라고 불렀다.
내게는 그저 털 날리는 털뭉치에 불과했으니까.


마도의 트럭이 마을에 도착하면 짐칸에서 뛰어내려 마을을 순찰하듯 같은 코스로 돌아다녔다.
집에서는 우유 한잔 주는 게 고작이었지만 마을로 내려오면 사람들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주었다.
부둣가에선 생선을, 빵집에선 갖 구운 빵을, 과일 가게에서는 감귤을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던 모든 것을 건네주었다.
보누치 씨는 의아했을 것이다. 
자신이 준 건 고작 우유 한잔인데 이 녀석은 이렇게 비대해졌으니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녀석은 트럭 짐칸에 서서 털을 휘날리며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녀석에게 아즈라엘이란 이름을 붙인 주인이 궁금해졌다.

- 보누치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마도는 말했다.

- 당신 같은 사람이죠
- 예?
- 비밀스럽고 말이 없는....
- 예전에는 고기를 잡는 어부였죠
- 미구엘의 아버지와 같이 일했는데 얼마 전부터 본토를 오간다고 하더군요
-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보누치 씨는 내가 일어나기 전에 집을 나서고 내가 돌아온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건 그가 교회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왜 교회를 다니는 그가 녀석에게 이슬람 천사의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물어보진 못했다.
마도의 말처럼 말 수가 적고, 비밀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 내게 질문을 할 것 같아서였다. 
나는 거짓말에 서툰 타입이었다.


75 일

섬의 조그만 부두는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
돈을 벌기 위해 섬을 떠났던 여인들 중 몇이 돌아왔다.
일손이 모자라다며 마도가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서로 반가워하며 눈물 흘렸다.
이 마을에서의 재회는 뭔가 각별한 느낌이었다.

마도를 따라 부두에 나간 나는 그녀들의 소개를 받았다.


- 여기는 과일가게 딸 소피아, 수선집 며느리 지나,  과수원집 이사벨라, 그리고 사촌동생 안젤리니

- 이쪽은 비밀스러운 우리의 고용주 판 씨
그녀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히죽대며 인사했고, 나도 적당한 표정을 골라 인사했다.


그녀들은 본토의 군수공장에서 일했다.
형편없는 보수를 받았지만 그나마 안정적인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재회의 기쁨을 거두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녀들은 수다스러웠지만 또한 능숙한 일꾼이었다.
이미 경험이 있는 듯 모두 익숙하게 각자의 일을 처리했다.
가끔 나를 보며 낄낄대는 것을 빼곤 모든 움직임이 효율적이었다.

마도는 이제 직접 일을 맡기보다 지시하고 가르치는데 열중했다.
그녀는 나에게 연료탱크와 냉각장치의 설치를 맡겼다.
나는 토티 씨와 팀이 되어 장치들을 선체에 연결했다.
나도 어느 틈엔가 그녀의 충직한 일꾼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녀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가 되어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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