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대통령 후보 3차 토론회
정치는 말의 예술이라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서로를 찌르기 위한 무기가 될 때, 그 자리를 토론이라 부르기 어려워진다. 이번 대선 후보 토론은 그런 자리에 가까웠다. 미래를 설계하는 설득의 장은커녕, 과거를 파헤치며 서로를 무너뜨리기 위한 감정의 레슬링에 가까웠다.
정책은 종종 호출되었으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각자의 이야기에 논리보다 결의가 앞섰으며, 자료보다 분노만 앞세울 뿐이었다. 발언의 순서는 주어졌으나, 청자가 있다는 걸 망각한 듯보였다. 국민이 듣고 싶었던 것은 삶의 무게를 덜어줄 현실적 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과거에 대한 공방, 인식에 대한 조롱, 그리고 편 가르기 언어였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번 토론에서 보인 건 다름의 인정은커녕 틀림의 공격이었다. 후보들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할 시간보다 상대가 틀렸음을 드러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사라진 것은 '왜 대통령이 되려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정치는 원래 혼탁하다 말할 수 있으나, 토론은 그 혼탁함 속에서 명료함을 드러내는 도구여야 한다. 이번 토론은 그 도구로서의 기능을 거의 하지 못했다. 국민은 네 명의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볼 뿐, 그 안에서 나라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한 장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암울할 따름이다.
말은 넘쳤으나 의미는 없었고, 선거는 가까워졌지만 비전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이재명, 서사와 정당성으로 버티기
이재명 후보는 이번 토론에서 다소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정치는 기술이고, 토론은 전쟁이며,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는 칼을 뽑고 미끼를 던져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둘을 동시에 하기도 한다. 이재명 후보는 이번 토론회에서 둘 다 시도한 전략을 선보였다.
그는 김문수 후보를 정면으로 겨냥하며, 토론장을 윤석열 대 이재명이라는 구도로 재편했다. 구도를 만들고, 판을 깔고, 상대를 거기로 끌어들인 다음 물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에 동의하나요?" 이는 단순한 질문이 아닌 함정카드다. 대답을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옹호하면 극우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고, 비판하면 자기 진영에 칼을 꽂는 꼴이기 때문이다. 김문수 후보는 "왜 나만 갖고 그래.." 했을지 모르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프레임은 조여졌기 때문이다.
와중에 이재명 후보는 감성 카드를 꺼냈다. 광주 5.18이라는 역사적 키워드를 활용하여 윤석열 정권을 헌정 파괴세력으로, 자신은 그것을 막아서는 민주주의 수호자의 위치를 선점했다. 이쯤 되면 약간 "나는 정의로운 희생자 ㅎㅎ"라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다. 긴장감 넘치는 연기력 매우 좋았다.
하지만 모든 전략이 완벽할 순 없다. 이재명 후보의 개인 비리 의혹과 관련된 대장동 개발 특혜, 측근들의 금전 스캔들, 형수 욕설 파일, 경기도 법인 카드 유용 혐의 등 수년간 제기되었던 논란에 대해 그는 토론 중 거의 메크로처럼 반복했다.
"검찰의 조작입니다."
"정치 보복입니다."
"국민의 눈을 가리려는 프레임입니다."
이쯤 되면 AI도 학습할 것 같다.
그의 진짜 기술이자 문제의 지점은 질문 유도형 방어였다. 자신이 먼저 민감한 주제를 언급하면, 상대가 거기에 덥석 문다. 그리고 이재명 후보는 피해자 코스프레 모드로 전환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패턴이 한두 번이면 기가 막힌 전략이다. 하지만 세 번, 네 번이 반복되면 그저 메크로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정책 면에서는 복지와 개헌 그리고 외교 다자주의를 강조했다. 아쉬운 점은 전달하는 언어가 추상적이었다. 안부 부분에서는 '강군 기반 평화'와 같은 메시지를 던졌으나 이는 원론적이었으며, 김문수 후보의 대북송금 공세에 대응하는 논리는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태도에서는 비교적 절제된 화법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준석 후보와 충돌하는 구간에서는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워하는 순간들이 보였다. 토론자보다는 피고처럼 보이게 만들어진 구조적 한계 속에서 자신의 정당성과 피해자 서사를 끝까지 유지했다.
김문수, 감정 과잉, 논리 빈약
정치 토론을 소위 말싸움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문수 후보는 이번 토론장에서 말싸움을 넘어, 화풀이를 하듯 목소리 톤부터 단어 선택까지 감정의 홍수에 푹 빠져버렸다.
김문수 후보는 초반부터 강하게 나갔다. 그는 이재명 후보를 향해 "괴물 독재자", "국가를 망친 주범" 등 시나리오를 외운 듯한 자극적인 언어를 구사하며 초반 분위기를 휘어잡으려 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들었다. 정책, 통계, 구체적 사례가 없었다. 남은 건 오로지 성난 감정과 휘발성 높은 단정뿐이었다. 그가 펼친 부패 프레임은 마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같은 말로 마무리되었다. 흡사 "우리 엄마가 그랬어." 수준의 증거 제시였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토론이라는 링 위에서 김문수 후보는 상대의 펀치를 피하지도, 자신의 펀치를 정확히 꽂지도 못했다. 이준석이나 권영국 후보에게는 말을 거의 건네지 않았고 모든 에너지를 이재명 하나에 몰빵 했다. 전략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단조롭고, 전술이라고 하기엔 빈약했다. 이준석이 던진 세대교체라는 메시지, 권영국이 말한 기후위기와 불평등 해소 같은 이슈에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단순 무시가 아니라, 논쟁을 피한 정치적 회피일 지도 모른다.
물론 김문수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극단적으로 몰입하는 모습은 보수 핵심 지지층들에게는 일시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다. 하지만 토론회라는 공간은 지지층만을 향한 독백 무대가 아니다. 김문수 후보는 '왜 이재명을 막아야 하는가'에만 집중할 뿐, '왜 김문수를 선택해야 하는가'에는 침묵할 뿐이었다. 그가 제시한 비전은 없었고, 정책적 대안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책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게 아닌, 상대의 무능과 부정을 부각시키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만 기능했다. 사드 재배치와 핵무장, 한미동맹 강화와 같은 안보 중심 발언들은 구체성은 없고 상징성에만 머물러 있엇다. 태도 면에서는 공격성이 도드라졌고, 발언의 상당수는 비난과 재차 언급으로 이어졌다. 논리보다 감정을 앞세운 탓인지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설득력을 잃었고 오히려 반감으로 다가올 소지가 있었다.
정치는 쇼일 수 있다. 하지만 설득 없는 쇼는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 김문수 후보는 쇼를 했다. 하지만 설득은 실패했다. 요란한 빈 그릇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준석, 청문회와 토론회를 헷갈린 듯
토론회를 보고 있으면 가끔 착각하게 된다. "이건 대선 후보 토론이 아니라, 이재명 피의자 청문회 같은데?" 이재명은 이준석의 논리적 십자포화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증이 생길 정도였다. 이준석은 정확했고, 깊었고 무자비했다. 이재명에게 날아간 첫 번째 질문은 이거였다. "HMM의 전신은 뭡니까?" 이건 단순한 퀴즈가 아니라 정책 없는 구호 정치인이라는 프레임을 이재명에게 씌우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대북 송금 - 사법 리스크 - 외교 신뢰 붕괴'라는 콤보는 압권이었다. "이재명 후보, 당신은 정의로운 대북 정책이라 주장하지만, 그 돈이 불법적으로 넘어간 건 알고 있죠?"라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걸 열 줄로 정리해 쪼개 던진 게 이번 토론에서 이준석 후보가 보여준 일이다. 요약하자면, "이재명 후보님 그 말은 참 좋은데, 불법임"
이준석은 토론회장을 마치 본인의 팩트 기반 퀴즈쇼처럼 만들었다. 공산당 발언, 호텔 경제학, 측근 비리 등 이슈를 불쑥 꺼내며, "이 부분 해명해 보시죠?"를 반복했다. 이는 마치 교사 출신의 형사가 "이 부분은 조서와 다르네요" 라며 메모장에 무언가를 따로 적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다. 하지만 냉정함이 과도하면 사람들은 그걸 성격이나 특징으로 보지 않고 결함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준석 후보는 이번 토론회에서 정확했고 준비되어 있었고,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정서적인 유대감? 그건 아직 갖춰지지 않은 듯했다.
물론 이준석 후보의 스타일은 정치판에서 유능한 공격수 정도로 통할 법하다. 하지만 문제는 토론 내내 이준석의 비전과 정책이 어디 갔는지이다. 주도권 토론 시간에는 '내가 대한민국을 이렇게 바꾸겠습니다.' 또는 '내 정책이 너희들보다 더 좋다ㅋㅋ' 같은 메시지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이재명, 당신 이건 왜 그랬죠?'에 집착할 뿐이었다. 물론 전략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준석을 뽑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정책적인 측면에선느 안보부총리 신설, 외교 통일 기능의 이원화 등 조직 개편을 중심으로 한 제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제 실행 구조나 정치적 동의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포비아에 시달렸는지 권영국 후보와 김문수 후보와는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마치, "나는 최종 보스와 싸우고 있으니 미니 보스는 다음에."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치란 모든 상대를 상대로 자신의 강점을 증명할 줄 알아야 한다. 이재명만 찔러댔다는 건, 강력한 한 방으로 보일 수 있으나, 스스로 스팩트럼을 좁힌 셈이다.
권영국, 진지함과 설득력은 별개
권영국 후보는 이번 토론회에서 외계 생명체처럼 다가올 정도였다. 모든 후보가 도덕성, 스캔들, 누구 욕했냐 싸움에 올인할 때 이 사람은 혼자만 책상에 판례집, 헌법, 그리고 국제노동기구 협약문까지 쌓아 놓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다들 감정으로 샤우팅 할 때 혼자서 PPT 프레젠테이션 하는 분위기였다.
권영국 후보의 전략은 간단하다. "싸우지 말고 제도부터 고치자!" 근데 이게 진짜 무서운 전략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싸움은 뇌를 비활성화시킨다면, 제도 이야기는 뇌를 혹사시킨다. 그러니까 청중은 감정싸움에 웃고 박수라도 칠 수 있으나, 권영국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일 아침은 뭐 먹지..?"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고로 진지한 태도는 좋았으나 전달력이 부족했다.
이준석과의 대결은 다소 흥미로울 뻔했다. 권영국 후보는 노동 기준과 국제 협약의 수호자로 빙의하여 이준석의 노동유연화 발언을 해체했다. "그거 ILO 위반이거든요?" 라며 고개 한 번 끄덕이지 않고 근거를 조목조목 들이대는 모습은 토론이 아닌 국제 노동 세미나에 가까웠다. 플랫폼 노동자 권리, 비정규직 보호, 해고 요건 강화 등등.. 듣고 있던 이준석은 "저 사람 너무 진지충이야.."라고 했을지 모른다. 아쉬운 점은 권영국 후보가 말을 계속 끊느라 이준석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등장한 기후 헌법은 이번 토론의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권영국 후보는 기후위기를 물 마시는 거보다 시급한 헌정 질서 문제로 끌어들였다. 감정 호소는 0%, 시스템 비판에는 200%. 어느 정당도 쓰지 않는 용어인 이익균점권까지 꺼내면서 자본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구조 개혁안까지 던졌다. 고로 이건 복지 확대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회사 주식을 넘겨주자.' 정도의 급진적인 선언이었다. 이쯤 되면 이 사람은 진짜 체제를 갈아엎을 준비가 된 사람이다.
정책면에서는 구체성과 방향성이 일치했다. 다만 현실 정치의 흐름과 거리가 먼 이상주의로 비춰질 여지가 분명했다. 아쉬운 점은 토론의 흐름을 주도하기보다 독백에 가까운 순간이 적지 않았다. 태도에서는 가장 일관된 정중함을 유지하려 했다. 주도권 토론에서도 상대를 압박하는 게 아닌 질문 중심의 구조로 배려와 논의를 병행했다.
권영국 후보는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메시지가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했으나 딱 하나의 멜로디도 기억나지 않았다. 모든 말이 진실되고 그럴싸하지만, 핵심이 흐려진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의 레토릭과 유머 기술이 부족한 탓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