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논하느라 기술패권은 뒷전
21대 대통령 선거는 단순 권력 교체를 넘어 헌정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와 새로운 질서 재편이라는 기대감이 뒤엉켜 있다. 우려 중 하나는 삼권분립의 위기다. 현재 대선 후보이자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주도하는 입법권의 사법부 개입 시도, 그리고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내란죄 재판과 맞물려 국민적 혼란과 정치적 격량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죄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 있다. 그는 형법 제87조, 헌법 91조에 따라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강압으로 봉쇄하거나 전복하려 한 국헌문란 행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하여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압박 또는 무력화하려고 했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이는 문민정부 이후로 대통령 권한을 남용한 극단적인 시도이자,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기소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인 함의를 단순하게 볼 수 없다. 윤석열 지지층은 정적 제거로 간주하여, 사법기관의 정치화로 바라보고 있다. 다시 말해, 법의 이름을 빌린 정치적 암살극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반대 진영은 팝콘을 들고 "드디어 정의가 실현되는구나."라고 외칠 뿐이다. 그렇게 사법적 판단조차 진영 논리에 의하여 국민 분열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는 데 말이다.
이재명 후보의 사법 개혁, 민주주의 회복일까 사법독립성 약화일까
이 혼란스러운 시국에 누군가 드럼ㅌ,, 아니 기름통을 들고 등장했다. 좌우통합을 외친 이재명 후보다. 그와 민주당은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대법원장 특검법, 대법관 증원법을 내세우고 있다.
우선 대법원장 특검법부터 보자면 취지는 고상하다. 핵심은 고위 사법기관장도 일반 형사 사건과 동일한 기준으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사법부의 수장이 특권 지위에 기대 책임을 회피하는 걸 예방하고, 고위 사법 관료에게도 동일하게 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다시 말해 대법원장이라고 하여 수사에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기에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책임 있는 사법부를 위한 것이지만, 현실 정치의 문법으로 들여다보면 대법원장 흔들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은 헌법상 임기를 보장받는 자리다. 그런데 특검이라는 정치적 압박이 가해진다면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버스에서 줄넘기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지게 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말하면서 타이밍은 이재명과 민주당이 정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상황이다. 고로 사법부 독립 침해라는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만약 대법원장 특검법이 그렇게 가치 있다고 판단되었다면 1년 전에는 왜 조용했을까? 무엇보다 공정함을 추구한다면 시기와 맥락이 공정해야 한다.
대법관 증원법은 현재 14명으로 구성된 대법관 정원을 두 배 이상인 30명으로 확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그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복잡한 법률 분쟁인 노동과 환경, 디지털 권리 등을 보다 전문적이고 다원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하여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확장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아주 단적인 예로 디지털 권리에 정통한 대법관 한 명만 있어도 국민을 가볍게 여기는 IT 대기업, 특히 SKT를 혼쭐 내줄 것 같다. 상상만 해도 통쾌하네.
사실 이 이야기는 갑자기 나온 말은 아니다. 비슷한 이유로 이미 학계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상고법원 설치 또는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대법관의 수를 5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경우 대법관 1명당 인구수가 약 65만 명으로 배정되어 있으나 한국은 370만 명에 달한다. 그만큼 한국의 대법관 수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대법관 정원을 현재 14명에서 100명까지 단계적으로 증원하자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1~3년에 걸쳐서 28명, 29명, 29명을 차례로 충원하겠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 구상은 긴 시간 동안 학계에서 주장한 맥락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왜 지금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따라온다. 상고심 과부하 문제는 이미 10년을 훌쩍 넘겨버린 숙제였다. 1990년 상고허가제가 폐지되면서 누구나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게 되었고, 대법원은 사실상 법률민원 접수처가 되어버렸다. 현재는 심리불속행이라는 제도로 사건 10건 중 7건이 "이건 보지 않아도 되겠다." 같은 방향으로 정리되는데, 문제는 그 결정은 대법관이 하는 게 아니라, 재판연구관의 보고서가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억울할 수 있다.
고로 이러한 맥락에서 대법관 수를 늘리자는 제안은 타당하다. 그런데 왜 지금이냐는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계속 피어난다. ?????!?!?!?!?!?!? 공교롭게도 이 시점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재판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며 유죄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시기와 겹친다는 데 있다. 대법관이 확 늘어나고, 그 절반 이상이 여당 또는 특정 정치 성향에 우호적인 인물로 채워진다면? 결국 대법원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대법관 대규모 증원을 통해 정치적 코드인사를 가능케 하고, 사법 판단의 독립성은 훼손될 위험이 있다.
사법부는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통하여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특정 정당이 주도하는 사법구성원의 재설계는 사법부의 독립적 판단 기능을 약화시킬뿐더러 정치권력에 종속된 구조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이는 법조계와 학계를 포함하여 정치권에서도 이를 놓고 강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 매우 간단한 악순환이 이어진다. "정권이 바뀜 -> 대법관 구성이 바뀜 -> 대법원 판결 성향도 바뀜" 고로, 대법원이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게 아니라 현 정권의 정책적 필요에 따라 기류를 바꾸는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국민들의 사법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고 정치 분열은 극에 달할 것이다.
나아가 대법관 증원이 전원합의체의 기능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 전체 사건의 99% 이상이 4인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처리되고 있다. 전원합의체, 다시 말해 대법관 전원이 모여서 판례의 기준을 설정하고 큰 사건을 처리하는 시스템은 생각보다 자주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법관 30명이 된다면? 회의 하나 열기도 전에 점심시간이 오고, 의견이 모이기도 전에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대법관들의 표정이 일그러질 것이다. 나아가 대법관 수가 많아진다면 일관된 판례 유지가 어렵다는 문제도 함께 따라온다. 물론 이는 기우에 가깝다고 바라볼 수도 있다. 독일처럼 연합부를 설치하여 판단 충돌을 조정하는 방식을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법개혁이라는 말은 참 듣기 좋다. 마치 유기농 탈탄소 무설탕 초콜렛처럼 말만 들어도 건강하고 정의로워 보이거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민주당은 대법관 수를 늘리고, 재판소원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그 취지는 국민의 재판청구권 확대를 위한 것이다. 듣기에는 정말 좋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가치였다면, 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에 추진하지 않았는가? 마치 삽겹살 파티가 끝나고 나서 "저 이제 다이어트 할겁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처럼 늦어도 너무 늦었다. 물론 개혁이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개혁이란 요가를 하듯이 신중함, 균형 그리고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이건 트램펄린 위에서 스트레칭을 시도하는 꼴이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내놓으면서 뚜렷한 후속 로드멥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숫자를 늘리겠다고 했을 뿐이다. 이쯤되면 개혁안을 읽는 게 아니라, 사법개혁을 1차 방정식처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십 명의 대법관이 쏟아지는 구조 속에서 사법 신뢰라는 가치가 제대로 담겨져 있지 않은 것이다. 사법부의 인적 구성과 운영 권한을 입법부가 장악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비쳐지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대법원의 판결이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정치적으로 손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입법권을 동원하여 사법부의 판결자체를 변경하거나 제도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입법권력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 또한 제대로 보장받기 어려울 뿐더러,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 체제가 훼손될 위험도 있다.
이재명 후보는 민주주의 수호자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임해지는 시도는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정체성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여론조사 상으로 앞서고 있어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재명 후보 입장에서 감사하게도 보수 진영은 김문수 - 이준석 단일화 실패로 전세를 뒤집을 동력도 상실했다. 그러나 사법개혁 이슈부터 개인 논란은 중도 지지층 사이에서 불안의 불씨로 남아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는 경기 승리를 앞둔 상황에서 주지 않아도 될 코너킥을 상대팀에게 준 꼴이다.
많은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을 단순 여야 싸움으로 보지 않고 있다. 이번 선거는 사법 독립성과 삼권분립을 어디까지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권력 분립 원칙은 새로운 방향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기존의 질서를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법개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자주 들리는 단어가 사법개혁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마치 대법원 인테리어를 해야 민생이 회복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사법보다 기술패권에 앞장서고 있다. 그들은 대법원 이야기를 딱히 하지 않는다. AI, 로봇, 드론, 차세대 반도체, 전기차 같은 것들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은 로봇팔 구경은 커녕 사법개혁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중국은 두 발로 걷는 로봇에게 도로 면허를 줄 궁리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핵심은 2015년 중국 정부가 야심 차게 발표한 Made in China 2025라는 포르젝트다. 슬로건 같지만 기술로 세상을 씹어먹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전기차, 차세대 반도체, 바이오, 항공우주, 로봇 등 온갖 산업군에 국가가 화끈하게 투자하고, 세금을 덜어주고, 규제는 미뤄주고, 인재는 밀어주고 있다. 그렇게 만든 생태계에서 BYD, DJI, CATL, 딥시크 같은 괴물 기업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만큼 무섭게 성장 중이다.
놀라운 점은 중국식 정부 주도에 의한 관저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 기반 민간 산업들이 14억의 내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통해 글로벌 무대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14억이라는 거대한 인구를 가진 내수시장이 곧 기술친화와 성장 동력 장치로 작용한 셈이다. 그렇게 로보택시는 광저우에서 이미 정식 운행 중임 ,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는 미국의 논문과 겨룰 정도다. 그렇게 중국은 일방적 밀어주기가 아니라 생태계를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각 산업군에 적합한 규제와 지원을 제공했다.
물론 욕심쟁이 미국이 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트럼프가 화웨이를 제재하면서 시작된 기술전쟁은 칩4 동맹, AI 수출 통제 등 강도 높은 기술 봉쇄에 앞장섰다. 그런데 이는 중국을 무너트리는 게 아닌, 중국의 자립기술을 키우는 촉매가 되어버렸다. 화웨이는 2023년에 미국이 막으려고 했던 그 기술, 7나노 칩이 들어간 5G 스마트폰을 뚝딱 만들어버렸다. 마치 부모님이 아이의 스마트폰을 빼앗아버리자, 아이가 스스로 스마트폰을 만들어버린 꼴이다.
이제 중국은 기술 강국을 넘어 과학 강국을 향하고 있다. 이미 네이처 인덱스 기준으로 중국은 2023년 기준으로 세계 최상위 학술지 게재 논문 수에서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 물론 중국은 인구수가 많기 때문에 논문 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다만 제조와 응용 기술에서 벗어나 이론과 기초과학 분야까지 서구를 추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일회성 성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중국은 이미 초등학생 2천만 명을 대상으로 하여 영재 선발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 중 최상위권에게는 국가 지원의 엘리트 교육으로 이공계 집중 육성 프로그램을 밟고 있다. 여기서 배출한 인재들은 세계 유수 대학으로 진학하고, 일부는 귀국하여 화웨이나 딥시크, 바이두와 같은 기업의 핵심 인력이 된다.
한국은 이런 흐름을 외면한 상태로 정치적 분열과 사법개혁이라는 말만 뱉어내고 있다. 한국은 과거 디스플레이, 배터리, 반도체, 조선 등에서 세계를 주도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리마저도 위협받고 있다. 특히 AI와 차세대 통신,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는 기술력과 더불어 산업화 속도에서 중국에게 한참 뒤처져 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방향성과 전략 그리고 인재 시스템, 국가적 일관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얻어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중국의 기술 굴기를 단순한 위험 그리고 모방의 대상으로 삼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는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디지털 전환 그리고 AI 경쟁, 인재 육성, 과학기술 자립이라는 과제 앞에서 명확한 전략과 제도적 연속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보다 한참 앞서 있는 일본과 중국을 무시하면서 홀로 뒤처지게 될지도 모른다. 사법개혁이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잘 모르겠다.